대한민국, 멋진 신세계?
    2014년 09월 24일 09:46 오전

Print Friendly

이번에 전국을 경악하게 한 “윤 일병 사건”을 보면 물론 종전의 군내 폭행 사건들과 같은 패턴들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유모 하사가 폭행의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일병 관리” 차원에서 사실상 폭행을 묵인, 방조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폭력에 대한 책임을 논할 때에는 이 부분은 물론 핵심적으로 중요합니다.

군처럼 철저한 상하 위계질서 속에서 폭행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폭력을 “사병 관리 방법”으로서 지금도 묵시적으로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하사와 그 위의 장교들의 묵인이 없었다면 폭력 근절은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군은 한국 공장들처럼 “성과주의적인” 성격의 조직입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천편일률적인 “조직관리”지, 그 “관리”의 이면에 그 폭력 피라미드의 맨 밑에 깔려 있는 개개인에게 어떤 부담이 가는가에 대해서는, “윗쪽”에서는 사실 관심 없습니다.

노동자 개개인의 건강권 등을 배려할 것 없이 무리한 잔업, 특근시키는 웬만한 공장과는 논리상 다를 것도 없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리 “군대는 사회의 거울”이라 해도 이런 사건들을 사법처리하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국가 책임”부터 밝혀야 합니다.

국방부가 “그” 부대를 포함하여 모든 부대에서 소원수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력을 했다면 이처럼 참혹한 일은 과연 일어났을까요?

그러나 이 참극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국가의 폭력 피라미드가 한 개인을 압살시킨 것만이 아니었다는 점은 당장에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유모 하사로 대표되었던 군대/국가는 “묵인”했다 하지만, 이모 병장이 장악하여 거의 사조직화시킨 분대에서는 윤 일병에 대한 폭력은 “국가적 규율 확립”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적인 사디즘, 일종의 잔혹무도한 “원풀이” 행위 차원에서 이루어진 듯합니다.

대학 중퇴하고, 늦은 나이 (25세)애 입대하여 이미 군에서 보다 어린 선임병으로부터 모욕을 많이 당해온 이모 병장으로서는, 내성적이고 어늘한 성격의 윤 일병은 말하자면 가학적인 “한풀이”을 해도 좋은 하나의 대상이 된 셈입니다.

약자로 판단되어진,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부하에 대한 가학을 통해서, 이모 병장 등은 군의 비인간적인 현실에서 받아온 상처들을 치유 받는 듯한 환상을 얻을 수 있었던 듯합니다.

실제로 어디까지나 군 내에서도, 군 밖에서의 사회에서도 약자에 불과한 그들은, 윤 일병에 대해서는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으며 그 군림의 순간들을 애호한 것처럼 보입니다.

몇 시간 동안 기마자세를 취하게 한다든가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른다든지 등의 그들의 잔인무도한 행위는,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강자”로서의 입장을 확인하는 유쾌한 “자기 확립 의례”이었습니다. 병리적인 사디즘(가학성 성 도착증)?, 맞습니다. 거의 도착행위에 가까운 거죠. 문제는, 도착된 것이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라는 점입니다.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르는 거야 절대 일반적인 것은 아니죠, 한데, 약자에 대한 강자의 군림 정도는?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기본”입니다.

체질화된 신자유주의랄까요? 출세 경쟁의 승자라고 할 “명문대” 학생들이 과거처럼 약자들을 위해서 데모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자(지방대생 등)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데에 우리는 이미 거의 익숙해진 듯합니다.

그런데 그 명문대 내부를 들여다보면…서울 캠퍼스 학생들이 수도권 내지 지방 캠퍼스 학생들을 멸시, 조롱하고, 타자화시키는 것은 바로 최근의 세태입니다. 고려대 안암 캠퍼스 학생들에게는 조치원 캠퍼스 학생들이 이제 “조려대 학생”들이죠.

신자유주의적 약자/패자에 대한 차별은, 이제 아예 상당부분의 한국인에게 “통념”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혹성의 정도야 다를 수 있지만, 그 행위의 성질로 봐서는 과연 아이를 잃으신 분들 앞에서 “폭식투쟁”하고, 아이를 잃어 인생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을 백주대낮에 모욕, 희롱하는 것하고는 과연 그리 다른 것인가요?

물론 속칭 “일베”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보인 사디즘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국인 다수에게는 반감을 삽니다. 일베는 그래도 아직까지는 유교적 “상례에 대한 존중”이라도 잃지 않은 다수에게는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 일 것입니다.

한데 세월호 여파로 경기가 나빠진다고 하여 유가족들의 현수막을 뜯은 중년의 영세 상인들은 과연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들인가요? 대한민국 전체가 점차 사디즘이 일상화돼가는 집단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요?

궁극적으로는 군대는 그래도 사회의 거울입니다. 사회보다 더 위계적이고 더 엄격하고 더 폭력적이지만, 크게 봐서는 사회의 여러 모순과 갈등들을 더 노골적인 형태로 반영할 뿐이죠. 개발 독재 시대의 군대는, 개발 독재 시절의 군사주의적인 노무 관리 방식과 직결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발 독재 시절의 집합주의 폭력은, 신자유주의 시대인 요즘에 와서는 점차 “강자”가 돼 약자를 괴롭힘으로서 약육강식의 미친 사회에서 자기 확립을 도모하려는 개개인의 사디즘이 막 드러나는 잔학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폭력적인 “조직 관리 문화” 안에서는, 개개인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받아온 상처들을 폭력을 통해 치유 받는 환상을 즐기고, 남에 대한 잔학을 즐기면서 자신의 “강자”임을 과시합니다.

이것은 개개인의 병리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 전체의 병리이기도 합니다. 늘 폭력사회이었지만, 우리는 이제 점차 “집단적 가학 도착증의 사회”로 변해갑니다. 멋진 신세계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