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사고와 참사, 왜 반복되나
    [책소개]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사회운동)
        2014년 09월 20일 03: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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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천변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보면 양재 시민의 숲이 나온다. 왼쪽은 경부고속도로에 면하고 오른쪽은 강남대로에 면한 이 숲의 맨 남쪽 끝머리에는 삼풍백화점 사고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서초동 법조타운과 맞닿아 있는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졌는데, 위령탑은 왜 고속도로와 맞닿은 공원 구석에 있을까?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37층짜리 주상복합빌딩이 들어서있다. 백화점이 무너져도 부동산 신화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평당 3천만 원 하는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그냥 두기에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었을 것이고, 그곳에 위령탑을 세우기에는 아파트의 ‘자산 가치’가 떨어질 것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502명이라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사고는 그렇게 외딴 공원 모퉁이의 위령탑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은 삼풍백화점과 다를 수 있을까? 이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에 대한 질문이다. 정부는 묵묵부답이고 국회에서 여야는 현상유지를 위한 줄다리기에 힘을 빼고 있다.

    보다 못해 단원고등학교 생존 학생들이 국회를 향해 행진했고,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6일 간 단식을 했으며, 국민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청원에 서명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둘러싼 힘겨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아직 논란 중이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하나로 꼭 집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대형사고는 항상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고, 독립적으로 봤을 때는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가 겹치면서 커다란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고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정보마저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만으로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했던 조건을 찾는 것은 가능하다.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조건들을 하나씩 찾다보면 사고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했더라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여객선의 선박 연령을 20년으로 계속 규제했다면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한국에 들여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청해진해운이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서 무리한 증축을 하지 않았다면 커다란 여객선이 그렇게 빨리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화물을 과적하고 결박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배를 운행하던 관행이 바로잡아졌다면 4월 16일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평형수와 화물을 적절하게 실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운항관리업무가 여객 기업들의 단체인 한국해운조합에 전적으로 맡겨지지 않았었다면, 그래서 정부가 세월호의 운항관리를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는 4월 15일 밤에 출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을까? 해운업계의 로비에 흔들리지 않고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과 해운산업의 올바른 발전을 생각했다면, 기업이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정부가 안전 감독 업무를 민영화하지 않았다면 세월호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정부가, 기업이 상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

    그렇다면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에 침몰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너나없이 소리 높여 외친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다.

    누구든지 돈을 쫓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합당한 행동이며,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며, 기업가는 제도와 시장의 변화에 따라 사업 기회를 잘 포착하는 ‘기업가 정신’을 최대한 발휘해서 어떻게든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정언명령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명령 속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 자유와 평등, 역사와 문화는 경제적 효율성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고려 대상일 뿐이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건이다.

    이 책은 대형사고의 오래된, 또한 현재 진행형인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책의 중심부인 2, 3장을 구성하고 있는 ‘반복되는 대형사고’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대형사고 사례들을 사회적 관점에서 다시 조명한다. 대형사고라는 사회적 재난이 어떻게 해서 반복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1장은 선박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세월호 참사의 배후로 폭로하고, 마지막 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현재 유가족과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갑남을녀들이 특별법 서명 가판대 앞에 줄을 서고 있다. 비극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사회적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그 길에 이 작은 책이 어떤 쓸모가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대형사고

    각 장별 주요 내용

    1장은 선박 안전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세월호 참사의 배후로 폭로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박손실 사고가 발생한 선박의 평균 연령이 25년이라는 점, 최근에 선주의 법적 책임이 완화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2장은 한국의 대형사고 중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인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태안기름유출 사고를 다룬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매출 감소가 두려워 잠시라도 백화점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경영진들이 만든 참사였다. 삼풍백화점은 사고 한 달 전에 이미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 건물 보수를 취했으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고 당일 고객과 직원들이 붕괴 4~5시간 전부터 천장에서 들리는 파열음과 붕괴의 전조들을 보고했다. 이때 사람들을 대피시켰으면 건물이 붕괴되더라도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 경영진은 현장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위험 신호들을 무시하고 “계속 영업”을 말했을 뿐이었다. 결국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이 울린 것은 붕괴 7분 전이었다.

    대구지하철 화재는 1인 승무제로 인하여 사고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쳐서 피해가 커졌다. 홀로 전동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뒤쪽의 화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차량 운행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만약 열차 뒤쪽에 차장이 타고 있었다면, 승강장에 안전요원이 있었다면 승객들을 제때 대피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대구지하철 사고는 이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사고대책 마련을 위해 집단적인 운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고 후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2인 승무제 도입과 안전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88일이라는 장기 파업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삼성중공업의 예인선단이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운항을 하다가 발생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피해금액의 1%에도 못 미치는 56억 원의 피해배상금을 부과 받았다. 최고의 변호인들을 동원해서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해경과 검찰은 삼성중공업의 조직적 업무지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사를 회피했다.

    자본에게 위험은 수익을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이들은 위험도 경제적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위험이 실제로 발생하면 그 책임은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이익은 사유화, 위험은 사회화’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다.

    3장에서는 해외의 대형사고 사례를 사고 이후의 수습과 대응이 어떠했는지에 주목해 살펴본다.

    1911년 미국 뉴욕의 공장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민들의 운동이 결실을 맺은 사례다.

    사고 열흘 뒤에는 10만 명이 장례행렬에 참가하고, 그 뒤에도 대중 집회가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공장의 위험 요인을 없애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 미국에서 노동법과 산업안전법이 개선되었다. 뉴욕시는 2003년 트라이앵글 공장을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하였다. 1968년 발생한 파밍튼 탄광참사도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탄광 안전 개선을 이끈 사례다.

    1984년 인도 보팔 시에 위치한 미국의 초국적 화학기업에서 유독가스가 퍼져 나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사고 이후 인도의 사회운동과 주민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기업과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특히 사고 기업의 회장은 처벌받지 않고 인도에서 추방되었을 뿐이며, 재판 관할권 문제로 미국과 인도를 오가다 제대로 된 배상 절차도 밟지 않았다.

    1987년 영국에서 발생한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는 기업살인법 제정의 배경이 되었다. 이 사고로 2명의 선원과 5명의 경영진과 기업이 기소되었으나 선원들에게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경영진과 기업이 사고를 일으킨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경영진과 기업의 잘못된 판단이 기업 조직의 행위를 통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가족들과 노동조합은 인명 사고에 대해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을 시작했고 2007년 결실을 맺었다.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이 총피해액의 1%에 해당하는 만큼의 책임만 졌다면 엑슨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해 1년간 총이익금액에 해당하는 50억 달러를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법정 공방은 20여 년간 이어졌고 끝내 연방 대법원에서는 배상액이 5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도 대기업 앞에서는 법이 솜방망이가 되었다.

    2005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기업 내에 형성되어 있는 안전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철도 회사인 JR서일본의 빡빡한 운행 스케줄과 모욕적인 처벌 제도는 과속으로 인한 탈선 사고를 불러왔다.

    안전을 위해 운행 스케줄을 여유 있게 짜고, 작은 실수에 대해서 처벌보다는 원인 규명을 우선시 했다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이 안전을 위해 선구적으로 활동하고 기업 전체의 문화를 바꾼 JR동일본의 사례에 주목할 수 있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붕괴는 저임금을 찾아가는 초국적기업이 제3세계의 안전은 도외시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사례다.

    사망자만 1134명으로 사상 최악의 건물붕괴사고로 기록된 이 사고로 제3세계 의류공장의 열악한 실태가 알려졌다. 초국적기업들은 방글라데시에서 값싸게 생산한 의류를 세계로 수출하며 이윤을 얻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고 기본적인 안전마저 보장받지 못했다.

    4장에서는 대형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현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규제완화, 민영화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안전’까지도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등 시민의 안전이 기업의 이윤창출에 적극적으로 포섭되도록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또다른 대형사고의 원인이 될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멈추어야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위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과적 화물차도 문제다. 과적을 하지 않으면 화물차를 운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화물운송 시장의 부조리이다. 물류비를 아끼기 위해서 기업은 과적을 종용하지만 정작 과적으로 인한 벌금과 사고의 위험은 화물기사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과적의 책임을 기업에게 묻고 이러한 부조리한 관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화물기사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위험물질에 대한 시민들의 알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최근까지도 공장에서 폭발, 유해물질 누출 등의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 화학물질 사고의 교훈은 지역 주민들의 알권리와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지역사회의 알권리가 기업의 이윤논리에 가로막혀 있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행동이 필요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 인력이 부족하면 안전수칙을 지키기 어렵고, 과로로 인한 실수도 늘어난다. 또한 사고대처도 어렵게 된다. 선박, 철도, 버스 등 일반대중을 실어나르는 공공교통수단에서 이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전’ 인력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이다. 이들이 과로하지 않고, 안전수칙을 무시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대중의 안전도 지켜진다.

    기업의 문화도 안전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위험 상황은 현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파악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위험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위급 시에는 노동자가 현장에서 위험 상황에 즉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끼임 사고가 발생해 급하게 컨베이어벨트를 멈춰야 하는 상황에서, 나중의 책임 추궁이 걱정되어 그러지 못한다면 사고는 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안전한 작업장은 노동자의 의견과 현장의 판단이 존중되는 작업장이다. 노동자에게 억압적인 비민주적 기업에서 안전은 확보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전략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산재공화국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사망률은 10만 명 당 7.3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우리나라가 산재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기업 활동에 바치는 필수불가결한 재물로 치부하는 것일까.

    이러한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 솜방망이 처벌, 말단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처벌로는 실효성이 없다. 기업의 경영자와 기업 자체를 산재 사망 사고의 범죄자로 기소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0년 이후에 노동자 안전 운동에서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 산재만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 일반의 안전도 위협한다. 앞선 여러 사례들은 모두 이익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무리한 기업 활동이 낳은 대형 참사였다.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수천억 원 이상의 피해를 끼쳐도 기업이 받는 처벌은 얼마 안 되는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기업 자체를 법의 심판대 위에 올릴 수 있다면, 기업 범죄의 책임을 경영진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일이 영국, 캐나다, 호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업살인법은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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