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전면개방, 왜 문제인가
    2014년 09월 18일 05: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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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쌀 시장 전면 개방 이후 수입쌀에 적용할 관세율을 513%로 확정해 18일 발표한 가운데, 일부 정치권과 농민 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전 쌀 시장을 개방한 국가보다 훨씬 낮은 관세율인데다, 정부가 내놓은 쌀 개방 후 농민을 보호할 대책이 ‘선심쓰기용’일 뿐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이 반발의 이유다.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은 그간 정부의 쌀 시장 전면개방을 강하게 반대하며, 정부, 여야, 농민단체 등 4자협의체를 구성해 쌀 시장 개방 이후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구축, 쌀 관세율 등을 논의한 후 시장을 개방해도 늦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해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대부분의 농민들은 쌀 시장 개방을 찬성하는데 일부 농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라며 독자적 행보를 유지했다. 즉 쌀 시장 전면 개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농민들은 정부의 쌀 시장 개방 문제에서 완전히 도외시됐다는 거다.

정부는 수입쌀에 대해 고율 관세를 책정하더라도 향후 FTA, TPP 협상에서 관세율을 낮추는 등 변동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의식해, 수입물량 급증에 대비,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긴급관세(SSG) 부과 근거를 명시하고,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체결할 모든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축소)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쌀 관세율의 핵심 쟁점은 정부가 내놓은 513%라는 관세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하지만 학계에선 TPP 등에서 쌀을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만으로는 관세율 유지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TPP 자체가 모든 관세의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

이해영 쌀 협의회 공동위원장(한신대 교수)은 17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에서 “50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 쌀시장, 쌀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핵심이인데 우리가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TPP는 모든 관세의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만일 우리가 TPP에 가입하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입 조건을 수락하든지 아니면 하지 않든지 선택의 기로에 몰릴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우리 정부가 설정한 고율 관세가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특별법을 포함한 별도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음에도 정부 측의 가시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정치권에서 DDA 협상(다자간 협상)에서 추가적인 쌀 시장 개방은 없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며 정부의 독주에 맞서고 있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이날 논평에서 “정부는 FTA에서는 쌀을 양허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나 WTO/DDA 협상에 대해서는 확답을 회피하고 있다”며 “DDA 협상은 다자간 협상이라는 특수성으로 추가 관세 감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추가 개방 불가 의지를 내놓지 않는다면 농민 설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민단체는 그간 지속적으로 ‘관세율 법제화’를 요구해왔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선언 혹은 법제화하지 않을 경우, 정부에선 상황에 따라 관세율을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단체는 법제화가 어렵다면 대통령이 앞장서서 ‘관세율 유지’에 대해 강력하게 발표하길 원하고 있지만 장관의 약속에만 머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건강과 생명이 부각되고 있는 지금, 유전자 조작(GMO) 쌀을 포함한 식품안전도 쌀 시장 개방 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거론됐다. 세계적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관련한 어떠한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쌀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기존 의무수입물량인 40만8700t은 5%의 저율 관세율로 계속 수입해야 하고, 밥쌀용 수입비중(30%) 등 쌀 개방 이전에 적용해온 저율 관세물량의 용도 규정도 없어진다는 거다. 이는 수입 밥쌀의 소비가 증진되는 현상을 초래, ‘중복 개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향후 40만톤씩 수입될 의무수입물량의 자율 처분권을 확보하여야 한다”며 “결국 앞으로 식탁에 오를 수입 밥쌀은 더욱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쌀 시장 개방과 함께 의무수입물량 처분권마저 약화시키는 것은 ‘중복 개방’이다. 수입쌀 처분권을 강화시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정책 공간을 넓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언론에 ‘쌀 관세율에 대해 300~500% 대에서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밝혔으나, 예상보다 높은 관세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사전에 낮은 관세율을 언급한 후, 공식 발표에선 그보다 높은 관세율을 불러 농민단체와 정치권, 학계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513%라는 쌀 관세율조차도 결코 높지 않은 관세율이라는 것이 전농의 말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1,066%)이나 대만(563%) 보다도 현저하게 낮다.

특히 일본은 가장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5년 가까운 지루한 협상을 통해 정부가 내놓은 관세율보다 2배가 가량 높은 1,066%라는 고관세율을 얻어내기도 했다.

주변 국가들은 쌀 시장 개방에 앞서 고관세율을 설정하는 데에 이토록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데에 비해 우리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어떠한 진통 과정도 없었다. 전농은 이를 두고 “분명 정부가 적당한 관세율로 편하게 가겠다는 것이며 협상 의지가 없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질타하고 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쌀 농가 보호를 위한 쌀 산업발전대책에, 내년부터 쌀 고정직불금 단가를 ha당 9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조기 인상하고 겨울 논 이모작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쌀값 하락 시 지급하는 변동직불금 제도 유지·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국산쌀과 수입쌀의 혼합 판매와 유통을 금지하는 한편 농업인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및 농지연금 지급 등 쌀 산업 종합발전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전농은 정부의 지원정책이 쌀 시장 개방 후 농민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농민 생존권에 진지한 고민 없이 대책을 내놓았다는 거다.

전농은 “정부 총지출은 5.7% 인상되지만 농업예산은 겨우 3% 인상으로 분야별로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큰 선심을 쓴 것인 양 왜곡하고 있다”며 “더구나 하락하고 있는 식량자급율을 끌어 올려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근본 대책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깊은 성찰과 대책이 없다보니 직불금 쥐꼬리만 하게 올려주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에 머물러 있다”며 “그 외 농업대책은 전농이 주장한 수입쌀 혼합미 금지를 제외하곤 농민 달래기용 단골 메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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