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북구의 매력적인 작은 도서관
        2012년 07월 03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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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사회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그저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고 싶은 개인일 뿐인데. 어디에 가서 나를 소개할 때 난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범하지 않은것 같다. 다른 주부들에 비해 잘 하는게 하나도 없다.

    요리도 잘 못 하고, 소심한 성격에 손재주도 별로 없다. 멍때리기는 내 특기고 건망증은 유난히 더 심하고 깔끔하지도 않다. 정말이지 잘 하는게 하나도 없는것 같다.

    난… 슬프고, 절망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내게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너무너무 작은 반지하, 어두컴컴한 곳에 재미난 놀이터라는 아이들 공간이 있었다. 이 작은 곳이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것이 참 안타까웠다.

    내 자신처럼 초라한 그 곳을 다시 살려보고 싶었다. 큰 꿈 같은 것은 없었다. 작은 공간에 무한한 상상력을 줄 수 것은 책이라는 생각에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만들자고 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모여서 반지하가 아닌, 예쁜 골목길 안에 위치한 평범한 건물, 방 두 칸 살림살이 집을 얻을 수 있었고, 도서관을 어떻게 꾸려갈지 회의를 하고 일을 했다.

    '함께 놀자' 도서관의 모습

    버려진 나무들을 주어서 손으로 사포질하여 책장과 책상들을 만들었고, 여기저기 기증받은 책들을 모았고, 도서관 담벼락에 아가들과 엄마들이 벽화를 그려 아기자기한 모습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상근자를 둘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돌아가면서 도서관 지킴이를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엄마들 책모임도 한다. 놀이터에서 책 잔치 행사도하고 마을 단체와 함께하는 축제에도 참여한다. 일이 많아졌다. 처음 생각하던 것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서관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너무나 소중한 실천을 하던 한 분은 이유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도서관을 정리했다.

    성격이나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을 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절감하는 일들이 계속 생겼다. 말이란 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잘 해야 10%정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오해를 풀기 위해 하는 말들은 더 큰 오해를 낳고, 결국 말로 문제를 푸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힘든 일을 함께 해 보면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말이 중요한건지.. 고생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건지..

    도서관 일을 함께 했던 사람은 ‘이념의 과잉’이라고 문제를 진단하던데 그렇게 말하신 분을 난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다. 좀 혼란스러웠지만…

    도서관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한 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다. 지금까지 도서관 만들기에 함께 해 왔던 분이 하는 말씀이, 만들기는 쉽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하시는데 공감한다.

    정리할 이유를 찾는 것은 쉽지만 정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더 소중한것을.

    어려운 고비들이 있었지만 꾸준히 도서관 문을 열다보니 도서관 친구들이 생겼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형도 있고.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꾸준히 찾아주고 있고, 경제적으로 너무 가난한 엄마도 재능 나눔을 제대로 해 주셨고, 도서관의 보석같은 꼬마 친구들, 그리고 프로그램을 해 주시는 가난한 예술가, 지킴이를 해 주시는 분들은 청소와 아이들 간식챙기기, 설겆지등을 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신다.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기도 벅찬데 도서관지킴이로 자원봉사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하고 힘을 얻기도한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 중에 젖먹이 엄마들과 함께하는 그림책 공부모임(책과 수다)에 함께 하는 사람도 도서관의 소중한 친구다. 아이 키우면서 속상한 얘기들 하다 서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큰 아이가 간난이 때 와서 함께 했었는데, 벌써 둘째 아이 젖을 먹이면서 또 함께 하고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한 엄마는 무엇이 그리 속상했는지 삭발을 하고 온 적도 있다. 모두들 그 이유를 이해하기에 더 물어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는 방학동에서 버스를 두 번 타고 애기를 안고 오시는 분이 계신다. 그렇게 멀리서 작은 도서관을 찾아오시는 이유는 작은 도서관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은 도서관의 미래를 고민하다

    이렇게 매력적인 작은 도서관이 기로에 서 있다.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지금처럼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역 사회에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도서관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난 둘 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도서관회의 때 몇 번 얘기가 되었는데 다른 단체와 함께 만나서 얘기해 보기로 했다.

    서울시에서 하는 마을만들기 지원금으로 도서관 상근자도 구하고 나중에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래 문을 열어서 지역의 아이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작은 도서관 함께 놀자는 앞으로 골목을 벗어나 길가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변신할 것이다.

    골목안에서 갖고 있던 아기자기한 성격은 그대로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다.

    작은 도서관이 안정적이고 활발하게 운영이 될 것이라면 이젠 난 도서관을 정리할 것이다. 나보다 잘 하는 누군가가 도서관을 맡아서 잘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난 또 다른 만남을 이미 시작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는 더 멀리 있지만 역시나 이곳까지 와서 함께 해주고 있다. 작은 도서관에서 동네 아이들과 엄마들을 만났듯이, 수유시장에 있는 문화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한다.

    작은 도서관에서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이 곳에서도 서로 얽히고 섥히면서 따뜻하고 재밌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내가 지키는 작은 공간들의 따뜻한 온기가 지역에 멀리 퍼져가길 희망하며, 작은 도서관이 동네 아이들과, 지치고 힘든 영혼들에게 편안한 쉼터로 오래오래 남아주길 기원한다.

    * 이진숙씨는 요즘 작은 도서관 지킴이 활동을 정리하고, 강북구 수유시장에 있는 문화예술공간 다락방을 민중의 집으로 바꾸고 발전시키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하려 한다.(편집자) 

    필자소개
    강북구 작은 도서관 '함께 놀자'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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