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에너지 자립을 꿈꾸며
    [에정칼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시작하자
        2014년 09월 17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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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랫동안 내가 나고 자란 이 서울에서 에너지 자립을 꿈꿔왔다. 20대 중반, 패시브 하우스를 짓고, 한전에서 오는 전기와는 이별하고, 태양광과 소규모 풍력 발전으로 전기를 얻으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그리고 뒤뜰에는 텃밭과 닭 두어 마리가 있는 나의 삶, 나의 미래를 꿈꿨다.

    이를 위해 독립형 전기 시스템이나 에너지 효율화, 소규모 적정기술 등 나름의 연구도 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꿈을 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꿈을 위해 로또 1등이라는 터무니없는 바람을 하게 되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에너지 자립이라는 꿈을 현실화하기에 나는 돈이 너무 없다. 규격화된 집에서 세를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안 쓰는 전기제품의 코드를 뽑아 전기료를 아끼는 수준이다. 이놈의 서울이라는 곳은 쉽사리 에너지 자립이라는 꿈을 꾸게 놔두지 않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서울일까? 물론 서울이라는, 모든 에너지를 편리하고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공간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데 많은 비용과 개인적 수고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땅 어디서든 한전의 고지서를 받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에너지자립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고민이 일상이 되어 익숙해 질 무렵, 나는 햇빛발전협동조합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서울에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즐거움과 함께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여 배당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합원이 되엇다.

    하지만 그렇게 조합원이 되고도 한참동안 조합으로부터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예정대로라면 이미 태양광 발전소가 올라갔어야 할 공공건물 옥상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울과 경기지역의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수는 약 18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대부분은 기존 환경운동, 에너지운동,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기관과 개인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이외에도 마을운동과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이나 원불교, 기독교장로회와 같은 종단에서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햇빛발전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시민사회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노력도 한몫 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가장 먼저 서울형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만들어 50kW 이하 소규모 발전소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더불어 그간 공공부지와 학교 옥상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되었던 임대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냈다.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경기도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경기도형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태양광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태양광 발전만으로 햇빛발전협동조합 운영 자체가 어려운 상태다. 올해 1월 평균 141원대를 유지하던 계통한계가격(SMP)은 지난달 평균 127원까지 떨어졌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은 2011년 하반기 220원대에서 114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과 경기 지역의 대부분의 햇빛발전협동조합들이 REC 시장 입찰에서 떨어졌다. REC 입찰이 되면, 최소 12년 동안 고정가격으로 안정적인 전력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입찰에 떨어지면서 현재는 지자체의 발전차액지원제도와 현물시장에서의 전력판매만으로 수익을 내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지자체의 발전차액지원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 대부분의 조합들이 50kW이상의 발전소 설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차제의 발전차액지원제도 조차 한시적이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기대고 있는 햇빛발전협동조합을 포함한 소규모 태양광발전사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기다리는 신세나 다름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적으로 햇빛발전협동조합 통해 기대했던 재생가능에너지의 저변 확대, 유관한 녹색산업과 녹색일자리의 확산이라는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니, 이러한 기대효과는 고사하고, 지금 당장 한명의 안정적인 활동가조차 고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렇듯 전력가격의 하락은 많은 햇빛발전협동조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변수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성공한 에너지협동조합들을 상상하고 그들의 경로를 따라가 한국 사회에도 안착하길 바란다.

    하지만 독일과 한국의 시스템은 너무나 다르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지만 아무나 팔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막상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는 생산자의 일부가 되어도, 조합에서 보내주는 전력 판매량과 금액에 대한 정보를 받는 것 외에 자신의 삶에서 변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에 맞는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성공을 위한 경로와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최근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실무자들의 고민을 나누면서 한 가지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다.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소비한 만큼을 생산함으로써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는 인식전환에서 시작한다. 다음으로 한전에서 사서 쓰는 전기만큼을 서울 어딘가에 있는 햇빛발전협동조합에 참여해 재생가능 전기를 생산하는 실천이 뒤따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에너지 자립의 꿈을 우회적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상상했던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한 지역의 전환, 그리고 녹색산업과 일자리의 육성 같은 거창한 꿈들은 잠시 접어두자. 도시에서 에너지를 자립하는 방법의 하나로 햇빛발전협동조합, 에너지협동조합들을 만들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가자.

    에너지 자립을 위해 로또를 꿈꾸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햇빛발전협동조합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가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되어주길 바란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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