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나요
[그림책 이야기] <고 녀석 맛있겠다>(미야니시 타츠야 / 달리)
    2014년 09월 12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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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안킬로사우루스의 아빠엄마는 어디에?

아주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던 어느 날 아기 공룡 안킬로사우루스가 알에서 깨어났어요. 그런데 아무도 아기 안킬로사우루스를 반겨주는 이가 없었어요. 드넓은 벌판에 아기 안킬로사우루스 혼자였어요. 도대체 아기 안킬로사우루스의 부모님은 어디로 간 걸까요?

아기 안킬로사우루스는 외로웠어요. 외롭고 슬퍼서 훌쩍훌쩍 울면서 아빠엄마를 찾아 타달타달 걷고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나 아기 안킬로사우루스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어요.

“헤헤헤, 고 녀석 맛있겠다.”

그러자 아기 안킬로사우루스는 달려가 티라노사우루스를 껴안으며 외쳤어요.

“아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물론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완전히 당황했습니다. 자신이 잡아먹으려던 아기 안킬로사우루스가 오히려 자기를 아빠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설마 티라노사우루스가 아기 안킬로사우루스의 진짜 아빠는 아니겠지요?

고 녀석

미야니시 타츠야의 웃음꽃

미야니시 타츠야의 전설적인 그림책 『고 녀석 맛있겠다』는 이렇게 황당한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잡아먹으려던 아기 공룡이 자기를 아빠라고 부르는, 이 황당한 유머 덕분에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유머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아기 안킬로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특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초식동물 안킬로사우루스와 육식돌물 티라노사우루스는 먹히고 먹는 먹이사슬 안에서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또한 아이와 어른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약자와 강자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어른의 눈으로 보면 둘의 만남은 긴장과 공포로 가득 찬 장면입니다.

그런데 아빠엄마를 찾는, 순진한 아이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요? 아기 안킬로사우루스는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를 보고 ‘아빠’라고 외치더니 달려가 껴안습니다. 그 순간 둘의 만남을 지켜보던 어른들의 긴장과 공포는 ‘피시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듭니다.

외로움에 사무쳐 아빠엄마를 찾아 헤매던 아기 안킬로사우루스의 귀에는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의 ‘고 녀석 맛있겠다!’라는 달콤한(!) 혼잣말이 부모가 자기를 찾아 부르는 이름으로 들립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는 이에게는 먹을 것만 보이고, 외로워서 아빠를 찾는 이에게는 아빠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갓 태어난 아기 안킬로사우루스가 어떻게 티라노사우루스의 공포를 알까요? 하룻강아지가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도 자연의 이치입니다.

자신도 몰랐던 ‘맛있겠다’라는 자기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아기 안킬로사우루스가 티라노사우루스를 자신의 아빠라고 확신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순진한 아기 안킬로사우루스 앞에서 티라노사우루스는 자신이 아빠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무시무시하게만 보이는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따뜻한 부성을 지닌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유머는 단순한 개그처럼 순간적으로 피었다 사라지는 웃음꽃이 아닙니다. 그의 유머는 피식자와 포식자, 아이와 어른이라는 긴장되고 꽁꽁 얼어붙은 관계를 동심과 부성이라는 뜨거운 메시지로 따뜻하게 회복시키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여 미야니시 타츠야의 유머는 독자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웃음꽃이 되었습니다.

유레카!

미야니시 타츠야의 유머러스한 상상은 사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상상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아빠나 엄마라고 외친다면 도대체 무얼 먹어야 할까요? 모든 인간이 베지테리언이 된다면 식물들이라고 가만히 있을까요? 동물들이 말을 하는 세상이 된다면 식물들도 더 이상 침묵하진 않을 것입니다.

다행이 그의 유쾌한 상상도 저의 식욕을 가로막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유쾌한 상상은 제 마음에 남아 생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심오한 유머가 저에게 심오한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유레카!

바로 가족주의를 범우주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형, 누나 등 가족의 호칭으로만 부르는 것입니다. 외계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인종이든 상관없이 가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많은 갈등과 차별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또 다른 ‘맛있겠다’를 찾아서

물론 가족 안에서도 차별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도 있고 불행한 가족도 있겠지요. 당연히 저는 행복한 가족주의를 지향합니다. 저는 가족의 눈으로 온 우주를 보고 싶습니다.

엄마아빠를 찾던 아기 안킬로사우루스의 눈에는 자기를 잡아먹으려던 티라노사우루스도 아빠로 보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배고픈 티라노사우루스에게는 갓 태어난 귀여운 아기 공룡도 한 끼 식사로만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나요? 먹잇감인가요? 아니면 사랑하는 가족인가요?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어른들이 모든 아이들을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고 어여삐 여기며 사랑합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모든 어른들을 자기 부모로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보살핍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세상입니다. 저도 오늘부터 또 다른 ‘맛있겠다’를 찾아야겠습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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