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에빙(月饼)과 중국정치
    [중국과 중국인]여전히 '설'에 의존하는 한국언론
        2014년 09월 11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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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온 추석 때문에 온 국민이 여름휴가 후 다시 5일 동안의 비교적 긴 휴가를 맞이하고 있다. 게다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추석의 특성 때문에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 기간 동안 정치 현안에 대한 민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음력 명절이 한국과 거의 똑 같은 중국은 상황이 좀 다르다.

    최근 중국정부가 법정휴일 제도를 정비하면서 추석(中秋节) 당일이 법정휴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중국에서 추석의 위상은 한국과는 좀 다르다.

    여전히 춘지에(春节, 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전통 명절로 불리고 있지만, 최소 5 일(법정 휴일 3일에 주말 포함)의 휴가가 보장된 춘절과는 달리, 중국의 또 다른 기념일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일(国庆节,10월 1일, 통상적으로 1 주일의 휴가가 주어짐)과 맞물리게 되면서 대충대충 넘어가는 운명을 맞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대표 추석 음식인 유에빙(月饼, 월병)이 최근 된서리를 맞고 있다. 한국의 송편처럼 모든 중국인들이 추석을 맞아 즐겨 먹는 유에빙은 시진핑의 강력한 반부패 투쟁의 희생양이 되어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월병

    유에빙은 중국 사회에서 한국의 사과(?) 같은 정치적인 역할을 상당히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 유에빙의 가격 자체가 서민들이 먹는 몇 천원, 몇 만 원짜리부터 수백 만 원 심지어는 수천 만 원이 넘는 고가품 등으로 다양해서, 일반 서민들의 추석 선물뿐 아니라 사업가들이나 당-정 고위 관료들이 주고받는 뇌물로도 종종 사용되어 왔는데, 이 때문에 2년 여 동안 지속되고 있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반부패 강공책의 직격탄을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국의 대표 추석 음식인 유에빙이 맞고 있다고 한다.

    추석 연휴 동안 중국에서는 두 명의 전직 중국공산당 총서기, 쟝쩌민(江泽民)과 후진타오(胡锦涛)에 관한 소식이 언론을 달궜다. 추석 연휴 직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쟝쩌민 사망설은, 지난 9일(화요일) 중국외교부 대변인 화춘잉(华春莹)이 기자 간담회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공식 답변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다.

    13년 동안의 총서기 시절과 10년 동안의 후진타오 재임 시절까지 거의 23년 동안 쟝쩌민이 중국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그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에 많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유력 정치인의 생사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설’만을 근거로 호들갑떠는 한국 언론의 모습이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떵샤오핑 사망과 관련해 한국 언론들의 특보 경쟁으로 인한 국제적 오보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확한 보도보다는 특종과 자극적인 기사에 매달리는 한국 언론들의 태도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JIANG HU

    후진타오(왼쪽)와 장쩌민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이나 지도부의 행보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수준으로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 마오쩌뚱 시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혁명 이후 출생한 지도부들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고 동시에 중국이 정치, 경제, 외교 등 다방면에서 세계체제에 진입하면서 중국정치의 투명성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특히 떵샤오핑(邓小平) 사망 이후 정치국 내부 토론을 거쳐 당과 국가의 지도자급 간부(당 정치국원과 행정부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가 사망할 경우에는 24시간 내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합의 상태이다. 때문에 쟝쩌민 같은 최고위급 지도자가 사망하면 즉시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언론에 공개되고 후속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설’ 수준의 정보를 근거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생사를 논하는 자세가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후진타오 관련 국내 보도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하고자 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한 인사(차오커밍-曹克明, 전 중앙기율검사위원)의 장례식과 관련해 보도된 명단의 순서를 두고 한국 언론들에서 전임 총서기 후진타오의 권력이 약화되었다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단순히 중국관련 인터넷 매체들의 단발성 기사를 번역한 것일 뿐 중국정치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중국정치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실상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보도이다.

    과거 서구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권력 서열을 유력 정치인의 장례식 명단을 통해 파악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런 방식이 유효했던 것도 사실이며, 물론 현재도 어느 정도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다. 그 대상이 현재 권력일 경우에. 다만 떵샤오핑이나 쟝쩌민처럼 정계 은퇴 후에도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이들도 있었고, 현재도 과거의 고문위원회(顾问委员会)처럼 공식적인 기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임 정치국상무위원들에게는 당-정의 중요한 인사문제나 정책결정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은퇴한 그들의 영향력을 구체적인 서열로 표시하는 것이 중국정치를 이해하는 썩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후진타오는 중앙군사위주석직을 2년 더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모든 직책을 후임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정계를 떠났다. 그의 이름이 아니면 또 다른 은퇴한 고위 간부의 이름이 누구 앞에 쓰이고 또는 누구 뒤에 쓰인다고 해서 중국정치의 권력관계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고 달라질 수도 없다.

    한국 언론들의 중국에 대한 보도, 특히 정치관련 보도를 보면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홍콩이나 서구 언론의 시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중 수교 22년, 강산이 2번이나 변했을 시간이다. 변화를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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