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 폭력 : 괴물의 이해②
        2014년 09월 10일 01: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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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글 링크

    최근 몇 년 동안 약간의 변화가 보이긴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때리는 사회”입니다. 즉 개개인의 신체적 자유 (폭행으로부터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돼 있지 않은 사회죠. 그런 사회가 되고, 계속해서 “때리고 맞는” 관계가 사회에서 유지돼온 이유들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일면으로는 일제 강점기 때에도 일제 이후에도 전근대적인 유습들이 혁명적으로 극복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비 등 천민이나 아이 등이 언제든지 주인, 양민, 어른에게 맞을 수 있었고 고문이 당연시됐던 조선시대의 유습들이 고스란히 대한민국으로 흘러들어간 부분은 컸습니다.

    예컨대 노조를 불허한 삼성의 이병철 같으면 과연 “노동자”와 “머슴”을 어디까지 그 내면 속에서 분리,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었는지 저로서는 의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몸종들을 다스리고 토호 유생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뒤에 노동자들을 다스리게 된 사람인데 그 밑에 있는 피치자에 대한 그 개념과 사고가 크게 바뀌었을까 싶습니다.

    또 일면으로는 전근대성이 강한 기업들을 지켜주는 기둥서방(?)으로서의 대한민국 역대 정권의 공헌이 크고, 특히 군사정권 시절, 전 사회에 대한 군사 문화의 침윤은 아주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일제 경찰로부터 고문기술을 그대로 습득하고, 고문은 아니더라도 일단 지금까지 “잡범”에 대한 “강압수사”를 당연시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경찰들도 “때리는 문화” 유지에 많이 기여한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먹 법”은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여전히 유효한 셈이죠.

    2010년 1월 17일 여러 신문에 한 설문 조사의 결과가 나온 바 있었습니다. 가정 내 체벌에 대한 설문이었는데, 6%의 응답자만이 체벌은 절대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약 26%는 “가급적이면 안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었고, 59%는 “필요 시 가벼운 체벌을 해도 좋다”고 피력했습니다. 8%는 아예 “꼭 필요하다”는 자신감을 보였고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때리지 않으려는 부모는, 대한민국에서는 소수(1할 이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체벌을 “필요악”이나 심지어 “선”으로까지 보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군에 징집돼 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때리는 행위”는 일단 “어른”이 “어린이”에게 – 특별한 상황에 한해서긴 하지만 – 해도 되는 행위로 인식돼 있다는 거죠.

    여러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한국 아동/청소년들이 성장 과정에서 적어도 한 번 내지 간헐적으로 체벌을 당한 바 있습니다. 정기적인 체벌은 그것보다 약간 더 드문 일이지만, 중산층의 약 15%의 가정에서는, 생활이 힘들고 스트레스 수준은 하늘 찌르고 그 결과로 알콜 중독 등이 더 심화된 중산층 이하의 약 26%의 가정에서는 체벌은 거의 관습화돼 있습니다.

    학교에서 같으면 28%의 학생들은 여전히 1년에 적어도 한 번 체벌을 겪거나 목격했으며, 13%는 매일매일 체벌을 보거나 겪는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링크).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참고로, 독일이나 노르웨이 등 모든 체벌이 무조건 금지돼 있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가정 내 체벌의 비율은 3~4% 이상 오르지 않으며 학교 체벌이란 아예 상상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르웨이도 징집제 국가이고 한국도 징집제 국가이지만, 저는 노르웨이에서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이야기한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심적 괴롭힘이나 고립, 배제 등을 경험하는 경우들은 간헐적으로 있지만요. 한 마디로 군대를 인권 친화적으로 바꾸려면, 사회 전체의 탈군사화, 탈폭력화부터 시급합니다. 학교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습니다.

    진보교육감들에 의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학교체벌 금지에의 노력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동에 대한 모든 가혹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아동에 대한 가혹행위 방지법>과 직장에서의 폭언, 기합 등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여 위반 시 고용주의 책임을 명기하는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첨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연 주류 여야 정치세력은 이런 일에 관심이라도 있나요?

    우리의 근본 현실인 진정한 사회혁명을 거치지 못한 “폭력 사회”라는 부분은 군내 폭력 문제의 한 가지 변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수는 오늘날 우리의 사회-경제적 형태에 따르는 대중적 심성의 변화죠.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모범국가로 통합니다. 금융관련 규정이나 고용관련 법률만큼,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대중들의 심성도 바뀌고 가치관도 바뀌었습니다.

    혁명성이 저조하고 순응주의가 주류인 사회에서 대중들은 상당부분 새롭게 부각되는 가치 등을 “학습”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무엇을 학습했을까요? 2014년 “한국인 가치관 조사”의 결과를 보시면 “행복의 요소”로서는 다수가 “자녀”와 “소득/재산”에 같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참고로 “소득/재산”에 비해서는 “친구/문화/직장/종교”의 비중은 낮았습니다.

    상당한 소득이 없는 이상 자녀를 키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공공육아 서비스가 태부족하고 공교육 제도만 가지고 아무 것도 안 되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참 의미심장한 결과입니다.

    아직도 한국인의 가치관의 중심에 여전히 “가정”이 있다지만, 가면 갈수록 개개인의 “소득”이 “가정 내 조화”의 틀을 깨고 가치관 중심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죠. 참, 한 때에 “유사 가족”으로 통했던 직장은 더 이상 한국인한테는 어떤 유의미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엄청난 변화입니다. 가정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직도 68%지만, 직장에 대한 소속감은? 12% 정도입니다 (관련 글 링크).

    비정규직화 시대, 정리해고 시대의 당연한 결과죠. 불안과 불확실성, 이해관계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타산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생존”, 나아가서 “소득 극대화”의 과제를 강요받는, 가족 이외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은 맨날 시달리는 것은 바로 극심한 스트레스입니다. 4분의 1이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학교시절부터 노후까지 늘 그렇고, 이미 각종 불평등이 세습화돼 아무리 “노력”해도 늘 생존마저도 위협 받으니까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고독과 불변한 스트레스 등은, 심적으로 고갈된 개개인에게 늘 폭력이라도 저질러 “원풀이”를 해볼 유혹을 던집니다, 나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짓밟는 순간, 이런 불안과 불확실성 속의 “나”의 흔들리는 위치가 더 든든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청소년 사회의 특징인 극도로 폭력인인 학교 폭력은, 바로 이렇게 해서 최근 더더욱 심화, 악질화됐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는 요즘 군내에서의 가혹행위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보입니다 (다음 주 계속).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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