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제국 몽골에
    당당히 맞섰던 귀주성의 투혼
    [산하의 가전사] 영웅 김경손의 활약과 서글픈 최후
        2014년 09월 09일 1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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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인의 무사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전란이라면 역시 임진왜란과 몽골 침략을 든다. 임진왜란이 7년간의 전면전이었다면 몽골의 침략은 수십년 간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며 나라 전체를 곤죽으로 만들었던 장기전이었지.

    언젠가 김취려 장군을 얘기할 때 잠깐 말한 적이 있지만 우리와 몽골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게 시작했어. 몽골이 어느 나라와도 맺지 않은 ‘형제의 예’를 맺었고 거란족을 멸망시키는 공동작전을 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몽골은 갈수록 무례하게 굴었고 점차 사이가 냉랭해지는 가운데 몽골 사신 저고여가 귀국 도중 피살당하는 일이 벌어져.

    몽골인들은 사신이나 사절의 죽음에 극도로 민감하게 대응했어. 칭기즈칸이 본격적으로 세계 원정을 시작한 계기가 호라즘 왕국의 왕이 몽골 사절단들을 몰살한 사건에서 비롯된 건 우연이 아니지. 이때 칭기즈칸의 군대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고 그 파괴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당시의 상흔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그런데 압록강에서 누군가에게 피살당한 거야. 고려는 여진족들이 그랬다고 주장했고 실제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몽골은 고개를 저었지. “니들이 죽였어. 두고 보자.” 칭기즈칸이 살아 있을 때였으니 아마 그도 이 소식을 들으며 그 고양이 눈을 치켜떴을 거야. “솔롱고스 놈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꼭 이 일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전 세계 정복전쟁을 수행해가던 몽골에게 고려는 지나가는 이정표 중의 하나일 뿐이었겠지만 칭기즈칸의 뒤를 이은 우구데이칸은 마침내 금나라를 공격하는 한편 고려 진격 명령을 내려. 살리타이라는 이가 이끄는 약 3만의 몽골군이 압록강을 건너게 된다. 유럽부터 페르시아와 중국대륙까지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문명국을 덮친 재앙이 고려에도 몰려온 거지.

    의주, 그러니까 최전방 요새인 함신진을 지키던 고려군 지휘관은 조숙창이라는 사람이었어. 몽골과 처음으로 조우했던 강동성 전투, 즉 거란족 소탕전에 고려의 지휘관으로 참전해서 몽골 장수와 의형제를 맺었던 명장 조충의 아들이었지만 그 아버지에 비해서는 많이 못한 아들이었어. 그는 이내 항복하고 성문을 연다. 몽골군과 형제 맹약을 맺은 자기 아버지 빽을 믿었는지도 모르지.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도 강동성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이니까 안면이 있었을 수도 있고.

    몽골군의 특징은 항복한 자에게는 관대하지만 저항하는 자들은 싹쓸이를 해 버리는 것. 조숙창은 국경 방어 책임자 주제에 각 성을 돌아다니며 “진짜 몽골군이다. 나도 항복했다. 같이 살자~”를 부르짖고 다니는 역할을 맡지.

    하지만 철주. 오늘날의 평안북도 철산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벌어져.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 책 봤지? 거기서 일본어 쓰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던 식민지 조선인 기노시다 히데요 (박영세)가 깊숙이 은폐돼 있던 조선 역사의 한 자락을 부여잡는 장면이 등장해. 그 계기가 된 게 고려의 문신 김구가 철주성 전투를 기려 지은 시였어.

    그 해 성난 도둑 국경에 침입하매(當年怒寇闌塞門)
    사십여 개의 성이 불타는 들 같았다(四十餘城如燎原)
    산을 의지한 외로운 성가퀴는 오랑캐의 길목에 당했는데(倚山孤堞當虜蹊)
    만 군사가 입 벌리고 기필코 삼키려 하였네(萬軍鼓吻期一呑)
    백면서생이 이 성을 지킬 때에(白面書生守此城)
    나라에 던진 그 한 몸은 기러기 털처럼 가벼웠다(許國身比鴻毛輕)
    일찍부터 인과 신으로 민심을 복종시켰으매(早推仁信結人心)
    장사들의 고함소리 천지를 진동했다(壯士嚾呼天地傾)
    서로 버티어 반 달 동안 해골을 쪼개어 밥을 지으면서(相持半月折骸炊)
    낮에는 싸우고 밤에 지키기에 용과 호랑이가 피로했다(晝戰夜守龍虎疲)
    형세와 힘이 궁하고 다했으나 오히려 한가함을 보여(勢窮力屈猶示閑)
    누대 위의 관현은 소리 더욱 구슬펐다(樓上管絃聲更悲)
    나라 창고가 하루 저녁에 붉은 불꽃을 뿜으니(官倉一夕紅熖發)
    즐거이 처자와 함께 찬 재로 변하였다(甘與妻孥就灰滅)
    충성스런 혼과 장한 넋은 어디로 향해 갔나(忠魂壯魄向何之)
    천고에 고을 이름이 속절없이 철주라고 기억하네(千古州名空記鐵)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전세가 기울자 시에서 노래하듯 철주방어사 이원정은 가족과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들었고 판관 이희적은 창고에 부녀자와 아이들을 몰아넣고 불을 질러 버린 후 자결한다.

    그들은 몽골군이 저항한 상대를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보름간 격전을 치렀으니 악에 받칠 대로 받친 몽골군들은 어차피 성 안의 생명 하나도 남겨 둘 것 같지 않았지. 불길 속에서 찢어지는 아이들과 부녀자들의 비명을 들으며 이희적은 몽골을 저주하며 칼을 물고 앞으로 엎어진다.

    철주성의 참극은 북도 일대에 공황을 불러 일으켰어. 정주성을 지키던 김경손은 12명의 특공대와 함께 성 밖을 나서 몽골군과 싸우다 돌아왔더니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 버린 황망한 사태에 직면한다. 거기에 몽골군 본대가 들이닥치니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지. 이때 12명의 무사들은 계속 김경손을 따른다.

    장대한 기골에 한 번 성을 내면 머리카락과 수염이 꼿꼿이 서는 카리스마 압권의 무장 김경손과 12명의 무사들은 몽골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고 날고기를 먹어가며 몽골군 적중을 돌파해서 고려군의 거점이었던 귀주성으로 향하지. 이미 청천강 이북, 곽산이나 선천 등은 몽골군에 의해 쑥밭이 됐고 각개격파 당하느니 모여서 항전하자는 각오로 각 수령들이 귀주성으로 집결하고 있었거든.

    귀주성을 지키던 사람은 서북면 병마사 박서. 병력은 약 5천 명 정도로 살아남은 서북면 고려 병력의 거의 전부. 박서는 그나마 정예군이라 할 별초군 250명을 각 성문에 나눠 배치했지만 이 별초군조차 와들와들 떨고 있었어. 사람 고기를 씹으면서 (사실은 말린 말고기겠지만) 질풍같이 말을 달려와 성벽을 기어오르고 포차를 쏘고 성을 함락한 다음에는 사람들의 머리로 탑을 쌓는다는 이 무서운 군대를 고립된 성의 5천 명이 어떻게 막아낸단 말인가. 병마사 박서가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김경손이 호령을 해도 꺾여 버린 사기를 이어붙일 재간은 없었지.

    마침내 9월 3일 몽골군이 성을 포위하고 죄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문을 맡은 김경손은 분위기를 바꿔 놓을 겸 성문을 박차고 나가 몽골군을 기습할 계획을 세워. 당연히 정예부대인 별초 병력들을 집합시켰겠지. 김경손은 계획을 설명하고 호령한다.

    “너희는 목숨을 돌보지 말고 죽어서도 물러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을 듣고 있던 별초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신다. “서…..성문을…. 열고…… 기습?” 다리에 힘이 쭉 빠졌고 일부는 주저앉아 버렸어. 김경손이 칼을 빼서 비겁한 놈들은 목을 치겠다고 성문을 열고 병사들을 내몰았지만 성밖으로 나가자마자 대략난감한 정경이 펼쳐진다.

    “장군. 죽여 주십시오.” “기냥 여기서 죽갔습네다. 못가갔시요 .” 겁에 질린 군상들이 창을 놓고 바닥에 엎드려 버린 거야. 아무리 명필이 붓을 안 가린다고 해도 털 빠진 붓으로는 글을 쓸 수가 없는 법이고, 아무리 용장이라도 겁에 질려 버린 병사들을 강제로 내몰 재간은 없어. 한두 명이 튀면 목이라도 쳐서 본보기로 삼는다지만 이건 수백 명이 동시에 엎드려 죽여 주십시오, 못하갔습네다 엎드려 꼼짝을 안하는 데 뭘 어떻게 하겠어.

    “분노하면 머리털과 수염이 꼿꼿이 섰던” 김경손의 머리칼과 수염은 그 순간 벨 듯이 곤두섰을 거다. 엎드리지 않은 사람은 그와 12명의 부하들. 정주성에서부터 목숨 걸고 적진을 돌파하며 날고기에 생보리 씹으며 여기까지 왔던 12인 뿐이었어. 자포자기였을까. 아니면 어떻게 되겠지 였을까. 김경손은 희한한 명령을 내린다. “모두 일어나 성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자신만 쳐다보던 12명의 부하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 “나하고 너희들만 간다.” 남문 밖 저편 들판에는 몽골군의 선봉대가 이미 천막을 치고 있었어. 그 수만 해도 수백 명은 족히 됐지.

    “저희 12명으로 말입니까?”

    “왜 12명이냐. 나까지 하면 13명이지.”

    머리 복판에 뼈가 용의 발톱처럼 솟아 있었다는 이 특이한 외모의 장군은 투구를 깊이 눌러쓰고 끈을 조이고는 말에 뛰어올랐다. 그게 신호기라도 하듯 12명의 부하들도 튕기듯 말에 올라탔지. “가자~!” 그리고 13명의 미니 기병대는 땅을 울리며 몽골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 어기적어기적 성문으로 들어가던 병사들은 입을 딱 벌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처음에는 애처롭게 쳐다봤지만 점차 눈빛은 자괴감으로 번졌고 나중에는 알 수 없는 욕지기와 분노가 병사들과 백성들 사이를 싸고돌았지.

    귀주성-12인

    드라마 ‘무신’ 중 13인 결사대의 모습

    “썅 우리는 대체 뭐이가. 어차피 포위된 성에서 살문 얼마나 더 살갔다고.” 그리고 아득하게 12명의 기병대가 몽골 진영으로 돌입하는 모습이 귀주성 남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의 기름

    귀주성 남문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김경손과 12인의 결사대를 눈으로 쫓았어. 어느새 서북면 병마사 박서도 달려와 있었고 다른 문을 지키던 장병들도 한데 어울려 추이를 지켜봤지.

    김경손이 공격 명령을 내렸을 때 땅에 엎드려 못가겠다고 버틴 ‘별초’들은 기실 전문 무사 집단이었어. 대충 흙 파다가 창을 잡은 농민군들이 아니라 칼 쓰고 활 쏘는 일에 이력이 난 특수부대였다는 뜻이야. 그들의 얼굴은 무척 화끈거렸을 거야. 자신들의 비겁함에 화도 나고, ‘별초도 별 수 없구마니’ 하면서 힐끔거리는 귀주성 주현군(지방군)들의 눈초리도 가시같고.

    13인의 결사대는 그대로 말을 달려 몽골군 진영에 돌입한다. 몽골군은 원래 기습에 강한 부대야.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 성 마리아성당의 첨탑에서는 지금도 매 시각 정각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데 그 곡조가 갑자기 뚝 끊겨서 관광객을 의아하게 한다고 해. 이건 1241년 4월 몽골군이 폴란드에 쳐들어왔을 때 한 수비병이 몽골군의 기습을 알리는 나팔을 다급하게 불다가 화살이 목에 꽂혀 버린 것을 재연하는 행사라고 해. 기습에 능한 부대는 원래 기습에 대비하는 훈련도 잘 돼 있다. 그런데 13인의 결사대를 맞은 몽골군은 어땠을까.

    내 생각이지만….. 우선 몽골군은 이들이 자신들을 기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 같아. 하다못해 기백 명 대오도 아니고 열 세 명이 불나방처럼 자신들의 모닥불을 덮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무슨 사절단이나 투항하러 오는 이들로 오해한 건 아닐까 싶어. 제대로 싸웠다면 아무리 13명이 터미네이터에 빨래판 복근의 스파르탄의 합체라고 해도 어려웠을 테니까.

    김경손이 말을 달리면서 활을 당긴다. 몽골의 활은 유럽을 떨게 했지만 활이라면 우리도 뒤질 게 없는 처지. 김경손의 화살은 검은 깃발을 높이 들고 있는 기수를 향했어. 쉬익 소리와 함께 퍽 소리가 잇달아 나더니 몽골 기수는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검은 깃발도 땅에 나동그라졌다.

    이 모습을 본 13인의 결사대는 비명 같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온 스피드 그대로 적진에 돌입한다. 얕은 물에 빠져 본 적 있냐? 허리께만도 안 오는 물에 빠졌는데 엄청 깊은 것처럼 착각돼 한참을 허우적거린 기억이 있는지? 경황을 잃고 허둥대다 보면 그 허우적거림은 길어지지. 허리께만도 못한 물이 그렇게 깊을 수가 없고 말이야.

    13인의 결사대 앞에서 몽골군이 그 짝이 났어. 말을 잡아타러 달려가다가 화살꽂이가 됐고 부랴부랴 창을 들고 맞서다가 말 위에서 내리지르는 고려군의 칼에 목이 달아났다. 몇 명이 왔는지 가늠은 안 되는데 화살은 정확했고 칼질은 매서웠어. 정주성에서부터 목숨 버린 셈 쳤던 결사대였다. 수십 명이 시체로 변하자 몽골군은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려.

    다급하게 활을 당기면서도 북을 울리며 독전하던 김경손의 팔뚝에 화살이 꽂힌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몽골군의 반격이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어.

    귀주성 사람들은 철주에서 대학살을 감행했던, 그리고 정주와 선천과 곽산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던 기세 좋은 몽골군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등에 대고 13명의 결사대가 사냥하듯이 화살을 날려 거꾸러뜨리는 것도 눈에 담게 된다.

    아마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와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구라 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칠 거야. 그런데 귀주성 사람들은 그 영화를 실제로 그 볼을 꼬집으면서 목격한 셈이야. 걸음아 날 살려라 엎어지고 넘어지며 도망가는 몽골군을 통쾌하게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여전히 활을 쏘고 있는 고려군의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넷…열 셋… “한 명도 안죽었다!”

    수백 명의 진영에 돌진한 13명은 거짓말처럼 말짱했고 “쌍소금을 불며” 돌아왔어. 이 사실에 귀주성 전체가 들썩거렸을 거야. 김경손 장군 천세 소리도 나왔을 것이고 남녀노소 다 성벽으로 올라와 환호했을 거야. 귀주성 최고위 장수는 서북면 병마사 박서. 성루에 올라 전말을 지켜본 박서는 성문으로 달려가 김경손을 맞아.

    그때 박서는 감정에 북받쳐 있었어. 정주의 분도장군. 즉 정주성 최고 지휘관도 아니었던 김경손 앞에서 박서는 눈물을 쏟으며 큰절을 올린다. 그때까지 박서는 김경손을 우습게 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김경손의 집안은 그렇게 평이 좋지 못한 집안이었거든. 아버지도 평판이 안 좋았고 그 형 김약선은 권력자 최이의 사위에 김경손 자신도 그 가문빨, 즉 음서로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사람을 몰라봤구나……. 할 수도 있었겠지.

    김경손 앞에서 박서는 무슨 말도 나오지 않았을 거야. 고맙다는 말을 하겠어, 수고했다는 말을 하겠어. 끅끅거리며 눈물만 쏟는 박서를 보며 김경손도 화급하게 엎드린다. 그 역시 울고 있었어. 박서와 김경손 두 무장은 연거푸 서로에게 절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한국사에서 손꼽을 명장면 중의 하나…..

    이걸 지켜보는 귀주성 안 백성들과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은 가지만 감당이 안 된다. 얼마나 욱하는 뜨거움들이 가슴 속에서 솟구쳤을지는. 아마 마음속에서 가장 큰 격랑이 일었던 건 앞에 얘기했던 별초들이었을 거야. 그들 역시 눈물을 훔치며 이를 악물었을 거다. “제오마니….. 김경손 저 양반이 사람을 영 값 없이 만드누만. 내 이 빚은 갚고 말갔다.”

     김경손의 결사대는 승리했지만 그건 몽골이라는 코끼리의 코에 난 생채기에 불과했어. 몽골군의 본대가 성큼성큼 귀주성으로 다가들기 시작한다. 그들 앞에 고려의 성은 공략이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중앙아시아의 그 하늘같은 성채들도 중국의 그 높고 튼튼한 성벽들도 모래성 무너뜨리듯 훑어 버렸던 몽골군들이었거든. 성을 어떻게 공략하는지도 알고 그에 필요한 도구도 충분한 제국의 군대였거든.

    9월 4일부터 본격적인 공성전이 시작됐어. 고려군은 김경손의 본을 받아 성문을 박차고 튀어나가 몽골군을 혼내 주기도 하는데 이때 위주의 장군이었던 박문창이 몽골군에게 생포된다. 이 박문창은 몽골군의 사주를 받아 항복을 권하러 성 내에 들어오는데 박서는 단칼에 목을 쳐 버려. 어제까지 함께 싸운 장수를 죽여 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겠지. 몽골군의 군세에 겁이 질려 헛소리를 늘어놨다거나.

    이제는 몽골군도 이를 악문다. 함락시킨 뒤 개와 고양이까지 다 죽여 버리리라. 몽골군은 온갖 무기를 총동원해서 성을 공격하기 시작해.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무기는 포차였어. 몽골군은 평지가 펼쳐져 있는 남문에 포차를 벌려 놓고 큼직한 돌들을 날리기 시작한다. <반지의 제왕> 3편에 등장하는 투석기를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후일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남송의 양양성 (무협작가 김용의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곽정과 그 부인 황용이 여기서 죽지)을 함락할 때 투석기로 성벽을 다 때려 부수게 되는데 그와 비슷한 양상이 전개돼. 포차들이 주로 배치된 남문을 맡은 건 김경손이었어.

    집채만 한 돌들이 날아와 문루를 부수고 성벽을 허무는 가운데 꿈쩍도 않고 지휘하던 김경손에게로 바위가 날아들어. 바위는 김경손의 이마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바로 뒤 병사를 맞춰 산산조각을 낸다. 으악 비명도 못 지르고 부서진 병사를 뒤로 하고 병사들은 김경손에게로 달려간다. 자리를 피하십시오. 다급하게 부르짖는 병사들에게 김경손은 한 마디를 한다. “내가 움직이면 너희들 마음도 움직일 것 아니냐.” 김경손은 문루에 앉아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 그 안전에서 누구라고 비겁할 수 있었을까.

    포차는 성벽을 부수는 도구야. 성벽은 처처에서 무너져 내렸어. 고려군도 방책이 있었지. 우선 포병 잡는 건 포병이라고 고려에도 포차가 있어서 돌을 날려 몽골 포차들을 박살을 내는 한편 무너진 데에는 목책을 엮어서 메웠지. 이건 아득한 옛날 안시성 전투 때에도 있었던 일이야.

    그런데 바로 그 점을 노련한 몽골군들은 노리고 있었어. 목책에 불을 지를 기름을 잔뜩 준비하고는 불을 놔 버린 거야. “蒙人 漬薪人膏厚積 縱火攻城 灌水救之 其火愈熾” 몽고 군사가 또 나무에 사람 기름을 적시어 두껍게 쌓고 불을 놓아 성을 공격하므로 물을 부어 그것을 구하려 하였더니, 그 불이 더욱 성하였다 (고려사절요) 나치 수용소에서는 사람 기름을 짜내 비누를 만들었다더니 몽골군들은 사람 기름을 짜내 목책을 불을 질렀다.

    “사람 기름입니다… 물을 부어도 불이 꺼지질 않고 더 타오릅니다.” 처처에서 병사들이 다급하게 외쳤어. 목책은 기세 좋게 불탔고 몽골군은 목책이 스러지기를 기다리며 칼 쥔 손에 힘을 주고 성 안으로 뛰어들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어.

    귀주성의 현재모습

    귀주성의 현재 모습, 평안북도 구성시 구성읍 위치. 현 북한 보물 60호

    영웅의 최후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보면 귀주성 전투를 다룬 글에서 이런 표현을 한다. “사람 기름으로 붙인 불은 물로 끄면 안 되고 흙으로 덮어야 되니 장수된 자는 알아라” 기실 귀주성 목책을 위기에 빠뜨린 화염의 재료가 정말로 사람 기름이었을까 에는 의문이 있어. 공성 와중에 사람 시신에서 기름 짜내기가 어디 그리 쉬웠겠어. 공장을 차려도 안될 판에.

    하지만 그만큼 몽골군의 대비가 철저했고 그냥 나무에 불 붙여 던진 게 아니라 기름을 준비해서 고려군을 당황케 했다는 것, 그리고 몽골군의 잔인함이 그런 얘기가 나오게 했겠지. 뭐 실제로 사람 기름일 수도 있긴 하겠고.

    하지만 박서와 김경손은 흔들리지 않았어.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은 알지 않느냐. 흙을 뿌려라. 진흙을 개어 덮어라.” 귀주성 백성들은 사방에서 흙을 캐서 물을 뿌리고 자루에 넣고 통에 담아 목책으로 달렸다. 몽골군의 화살에 픽픽 쓰러져 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눈에 핏발이 선 백성들은 기세를 늦추지 않았지. 목책이 쓰러지면 끝이었으니까. 불은 꺼졌지만 처처에서 스러진 목책을 넘어 무너진 성벽을 타고 몽골군이 달려들었어.

    그때 막아서는 고려군의 선봉에는 250명의 별초들이 섰다. 김경손 앞에 땅에 엎디어 돌격 못하겠다고 그냥 죽여 달라고 했던 한때의 겁쟁이들이 그야말로 악귀가 돼서 몽골군에게 달려든 거야. “우리보다 더한 놈들이 있다니!” 몽골군들은 아우성을 치며 물러선다. 이때 몽골 장수가 남긴 한 마디. “이건 하늘이 돕는 거지 사람의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기도 막혔을 거야.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에서 심지어 러시아에서 온갖 성을 공격해 본 그들이었고 안 해본 방법이 없었거든. 포차를 쏴서 성벽을 무너뜨리면 저쪽도 포차를 쏴서 곤죽을 만들었고 성벽에 매달리면 커다란 낫이 달린 대우포가 몽골군을 빗자루 쓸 듯 떨어뜨렸고 땅굴을 팠더니 쇳물을 부어 버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사람 기름(?)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해 내니 이제는 수가 없었거든.

    몽골군은 일단 물러나지만 귀주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 때 안시성을 버려두고 압록강을 건너지 못한 이유와 비슷했지. 몽골군은 물러났다가 포위하고를 반복하면서 고려군을 지치게 하려고 했어.

    한 번은 마음먹고 가능한 모든 포차를 동원해서 돌을 날린다. 요즘 말로 하면 융단폭격을 퍼부은 거야. 너희들이 이제는 목책을 쌓을 나무도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었겠지. 한참의 포격을 퍼부은 다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성을 바라보던 몽골군 장수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한다. “무너지는 데를 쇠사슬로 막고 있어! 오오 텡그리시여. (하늘이시여)”

    그래도 몽골군은 몽골군이었어.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왔다. 몽골 고원의 추위를 감당하던 이들에게 고려의 추위 정도는 별 것이 아니었지. 이번에는 소규모 공격이 아니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루고자 했고 준비와 각오도 철저했어. 이번에는 기어코 귀주성에 몽골군의 깃발을 꽂으리라. “자 포차를 날려라. 쇠사슬도 목책도 저 작은 성에 무한대로 있진 않을 거다.” 몽골병들이 여유만만하게 돌 포탄을 비끄러매는데 갑자기 서문쪽에서 소란이 일어났어. 무슨 소리냐.

    몽골군 사령부에 전령이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온다. “고려군입니다!” “무슨 고려군이냐. 청천강 북쪽, 아니 대동강 이북에 고려군이 어디에 있다고 응원군이 왔다는 거냐.” 그러자 전령의 대답은 천만뜻밖이었어. “고려군이 성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귀주성 안의 고려군이 기습을 해 온 거야. 고려군의 뜻밖의 공세. 당연히 선봉은 전문 무사 집단 별초였지. “나오라 썅. 몽골 놈들 제대로 칼 한 번 섞어 보자우.” 이어서 귀주성의 성문이 다 열렸다. 마치 억눌려 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고려군들이 쏟아져 나왔어.

    전쟁에서건 업무에서건 운동경기에서건 기(氣)라는 게 있잖니. 브라질 축구팀이 어디 독일한테 7대 1로 깨질 전력이냐. 하지만 선빵을 맞거나 예상치 못한 옆구리를 찔렸을 때 사람이건 집단이건 정상 이하로 위축되고 실수를 연발하고 결국은 머리를 감싸 쥐게 되지. 그런데 이 고려군의 출격은 천하의 몽골군을 호랑이 앞에 허둥거리는 야생마 떼로 만들어 놨어. 고려사의 기록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몽골군은 퇴각해 진을 친 다음 목책을 세우고 수비했다.”

    이게 무슨 말이게? 바로 ‘전세역전’. 성을 공격하는 몽골군이 ‘목책을 세우고’ 수비에 급급한 상황이 된 거야. 물론 전력상 몽골군을 섬멸할 역량은 못되었겠지만 목책 안에서 몽골군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을 거야. “우리 몽골군 맞어???”

    성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어. 공성전을 처음부터 지켜봤고, 이 귀주성에 오르기 전 몽골군이 내달은 유라시아 대륙 천지의 전투를 골고루 경험했을, 나이 일흔쯤 됐다면 칭기즈칸이 칸에 오르는 것도 목격했고, 그의 공격 명령에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기도 했을 한 노병은 성을 올려다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

    “吾結髮從軍 歷觀天下城池攻戰之狀 未嘗見被攻如此而終不降者。 城中諸將 他日必皆爲將相…… 내가 성인이 되어 종군하면서 천하의 성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두루 보았지만 이처럼 공격을 당하면서도 끝내 항복하지 않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성 안에 있는 장수들은 훗날 반드시 모두 장군이나 재상이 될 것이다.”

    결국 고려 정부가 강화를 맺었다. 그때까지도 귀주성은 버티고 있었고 급기야 강화의 저해 요소가 됐어. 조정에서는 사자를 파견하여 몽골군에 항복하라고 했지만 서북면 병마사 박서는 완고했다. 아니 완고할 수밖에 없었지.

    무려 넉 달 동안 그렇게 많은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성가퀴 하나하나에 사람 목숨 수십 개가 서렸는데, 기어코 지킨 성문을 자기 손으로 열라니. 몇 달 동안 일로매진하며 추석 연휴 반납하고 일하고 있는 내 친구에게 이사가 “그 동안 고생했네. 그 프로젝트 다른 부장에게 맡기고 자네는 휴가나 가게.”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그 친구는 이사 끌어안고 17층에서 뛰어내릴 기세가 되지 않겠냐고.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면 항복을 요구하는 자도 목숨을 걸어야 했지. 항복 명령을 전달하러 왔던 민희는 목에 칼을 댄다. “장군. 장군이 이러면 어명을 전하지 못한 나는 죽어야 하오.” 귀주성 성문은 열리고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성 안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몽골군은 고려군의 침묵 속에 귀주성 안에 그 말발굽을 찍는다.

    귀주성 전투는 40년 몽골과의 항전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전투고, 알려진 거의 전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 제국 군대를 맞아 싸워 이긴 세계사적으로 몇 안되는 사건이었어.

    유명한 ‘암살자들의 본거지’, 즉 영어 assassination(암살)의 어원이 되는 암살단 아사신이 암약하던 벼랑 위의 성채도 함락했던 몽골군들이었고 귀주성의 몇 배나 높고 튼튼한 성도 부숴 버린 몽골군들이었지만 귀주성의 고려인들 앞에서는 방도가 없었지. 그런데 “이 성을 지키는 장수들은 재상이 되리라.”는 몽골 노병의 예언은 실현됐을까?

    박서는 항복 후 개경으로 돌아와 승진하지만 그에게 원한을 품은 몽골인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간 뒤 그렇게 오래지 않아 죽어. 김경손은 더욱 불행하게 극적이야. 김경손의 이름은 너무나 컸다. 전주에서 “백제 부흥”을 외치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 김경손이 출격하자 반란군 수장 이연년은 그 이름을 높이 사서 부하들에게 “활을 쏘지 말라.”고 명령한 후 김경손을 설득해 보려다가 그만 싱겁게 사로잡히고 말 정도였지. 반란군조차 그 높은 이름에 위압될 정도였으니 일반 백성들에게야 오죽했겠니.

    그렇게 높은 이름도 권력자에게는 귀찮은 걸림돌의 높이에 불과했지. 얘기했지만 김경손의 형은 김약선이라고 최고 권력자 최이의 사위였고 정실 아들이 없는 최이의 사실상 후계자 지위까지 올랐어. 최이는 딸바보였는지 김약선이 바람을 피운다고 하자 그 여자들을 내쫓고 놀이터를 부숴 버릴 정도였어.

    하지만 정작 최이의 딸도 그 집 종과 오랫동안 바람을 피웠고 이게 김약선에게 발각되자 최이의 딸은 남편을 모함하여 죽게 만들어. 그리고 최이가 죽은 뒤 그 서자인 최항이 권력의 지위에 오르자 당연히 한때 최항의 라이벌이었던 김약선의 동생이자 전쟁 영웅 김경손은 눈에 거슬리는 인간일 수밖에 없었지.

    김경손은 백령도로 귀양을 간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귀양살이로 끝날 것이 아니었어. 2년쯤 뒤 최항은 백령도로 사람을 보낸다. 최항은 계모라 할 대씨를 죽이고 그 인척도 죽였는데 김경손이 그와 관련이 있다 하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거지.

    천하의 몽골군의 손발을 묶었던 용장 김경손은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배에 실린 뒤 바다에 던져지고 말아. 귀주성 사람들을 몽골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사리로 만들었던 용장, 열 두 명의 부하들로 수백 명의 적중에 뛰어든 영화 같은 사연의 주인공, 눈앞에서 사람이 박살나도 내가 움직이면 부하들의 마음도 움직이리라 꼿꼿이 섰던 대담한 남자의 최후는 서해 바다 속에서 버르적거리다가 꿀럭꿀럭 숨 막혀 죽어가는 거였지.

    아마 세계사를 통틀어 전쟁 영웅들이 우리나라 같은 대접을 받는 나라는 드물 거야. 임진왜란 때만 해도 의병장은 일찌감치 물세를 알고 숨어 버린 곽재우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비참한 최후를 맞아. 오죽하면 이순신 자살설이 조선 시대에서부터 등장했겠니.

    죽어가면서 김경손의 머리속에는 그 수많았던 죽음 직전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을 거야. 그러면서 통한의 한 마디를 내뱉었겠지.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 다음에라도 죽었어야 했는데.” 고려사에는 “사람들이 애통하게 여겼다.”고만 기록돼 있다. 이 빌어먹을 나라 사람들은 항상 애통해만 한다니까.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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