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중화제국 역사를 담다
[책소개] 『자금성 이야기』(이리에 요코/ 돌베개)
    2014년 09월 07일 12:20 오후

Print Friendly

청나라 최초의 황제 순치제 복림(福臨)이 오문으로 입성하던 순간부터 280년의 세월을 거쳐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溥儀)가 신무문으로 성을 떠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왕조의 역사와 겹쳐 가며 자금성을 거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나의 꿈이었다.

이 책은 천안문에서 출발해 청대 역사의 흐름을 더듬어 가면서 자금성의 주요 건물군을 찾아간다. 그곳을 무대로 전개되었던 왕조의 영고성쇠, 황제를 중심으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대적 시점으로 마주하는 시간 여행이다. 아울러 이 ‘지상 천궁’을 계승해 현대 중국 사회에 이른 권력의 모습도 새로이 생각해 보려 한다. 그러면 1644년의 자금성으로 첫 걸음을 내디뎌 보자. ― ‘서문’ 중에서

알기 쉬운 체계로 구성한, 깊이 있는 자금성 가이드

자금성(紫禁城)은 중국 북경을 방문하는 이들이 첫손에 꼽을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옛 궁전의 장관은 세계적 문화재로서 일찍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금성을 관람하게 된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처음에는 그 대단한 위용에 놀라워하다가도 이내 “비슷비슷한 궁전들뿐이네” 하며 도중에 흥미를 잃고 실망하는 일이 있다. 관광 안내지가 일러주는 정보만을 갖고 둘러보아서는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심장부였던 자금성 곳곳의 다양한 매력과 사연들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장대한 역사의 드라마를 품고 있는 자금성을 그 정도로 지나쳐 버린다는 건 무척 아까운 일이다.

이 책은 자금성에 대한 단순건조한 소개를 나열하는 대신 그 안을 차근차근 누비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문적 가이드서다. 이제는 고궁이 된 자금성에서 관람객의 한걸음 한걸음에 맞추어 각각의 공간들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조성되었으며 실제로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황제를 비롯해 주요한 역사적 인물들은 곳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사건 전개의 동선은 어떠했는지를 어느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서보다 흥미진진하게 살필 수 있다.

‘세계의 중심’ 위에 장대한 권력 장치를 형상화해 낸 자금성의 설계, 황제의 집무 겸 생활 공간이었던 건청궁과 양심전의 간소한 듯 특별한 구조, 황후와 비빈들이 생활한 ‘동서 12궁’에 감돌던 평화 그리고 긴장감…

화려한 색채에 물든 자금성 안의 전각들을 책 속의 참관 코스 순으로 돌아보다 보면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지붕 아래에 감추어진 제국 사상의 정체, 영광과 비감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생 청나라 역사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저자 이리에 요코(入江曜子)는 사람들이 자금성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음미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독자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중국 왕조시대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에 아로새겨진 다양한 의미와 역사를 읽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금성 이야기

‘자금성’과 ‘청 제국’, 시공간의 교차로에서 읽어낸 중국 역사

자금성은 중국 명청 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자금성 이야기』는 자금성이라는 공간축과 중국사라는 시간축을 교차시켜 청 제국사를 읽어내는 입체적인 시야를 펼쳐내고 있다.

청나라 제1대 황제인 소년 순치제를 앞세워 숙부 도르곤이 명조 신하들의 절을 받으며 첫 등장한 천안문에서 시작해, 그 뒤를 이은 강희제·옹정제·건륭제 그리고 서태후의 시대, 폐제 부의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둘러보는 가운데 자금성의 지도가 완성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자금성 여행은 자연스럽게 청 제국의 역사를 하나로 꿰는 여정이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자금성이 왕조의 중심 공간이었던 300여 년 역사의 요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뽑았다.

순치제의 계승자로서 2천여 년의 중국사 가운데서도 명군으로 손꼽히는 강희제의 시대는 그의 명석하고도 근면한 통치를 상징하는 건청궁과 폐태자의 불행한 사연을 담은 함안궁에서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청 제국의 융성기였던 옹정제와 건륭제 시절의 역사도 자금성은 생생히 증언해 준다. 냉혹했으되 합리적인 정치를 펼친 옹정제의 성격은 그가 건청궁을 비우고 따로 거주한 양심전의 실용적이고도 산뜻한 구조에 잘 드러나 있다. 한편 황위를 둘러싼 암투를 최대한 피하고자 그가 고안한 독특한 황위 계승법 ‘비밀건저제’의 핵심은 건청궁에 걸린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에 숨어 있다.

최전성기로 구가되는 건륭 시대는 자금성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자금성을 조성해 놓은 건륭제의 야심작 영수궁에 압축되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강력한 건륭제를 이은 가경제의 육경궁에서는 태평성세가 쇠락으로 꺾여 들던 시대의 정조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난세로 접어든 19세기 이후의 분위기는 천리교도의 침입으로 화살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융종문의 현판이 증언한다. 양심전 동서난각, 그리고 건륭상제로부터 계승한 영수궁에서는 수렴청정을 발판 삼아 수십 년간 사실상의 ‘여제’로 군림한 서태후의 오랜 통치 기간의 시대적 성격을 깊이 파악할 수 있다.

열강의 야심과 인민의 열기가 뒤섞여 있던 근대의 격동 속에서 자금성의 북쪽 절반에 유폐되어 있던 마지막 황제 부의가 자동차를 타고 떠난 자금성 최북단 신무문에 이르게 되면 자금성 여행이 끝나고, 자금성은 중화민국의 ‘고궁박물원’으로 변신한다. 위풍당당하던 등장에서부터 퇴장에 이르기까지, 자금성을 배경으로 펼쳐진 청대 통사의 핵심적 장면이 책 한 권 속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자금성에 살았던 사람들, 그 영고성쇠와 희로애락

자금성은 다양한 성격이 복합된 곳이다. 황제를 정점으로 한 당대의 정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와 만주족의 문화가 응집된 미적 공간이자, 황실 가족과 태감(내시)·궁녀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자금성 이야기』는 이처럼 자금성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다양한 공간을 조명하며 환희와 고통이 공존했던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또한 그 곳곳에 숨겨진 미적·사상적 상징들도 풀어내고 있다.

명조에 처음 지어진 자금성은 본래 음양오행 등 오랜 중화사상에 근거해 설계된 궁전이었다. 그러나 ‘오랑캐’라는 멸시에도 불구하고 역대 중화제국을 계승해 그 판도와 수준을 발전시킨 청조는 자금성의 요체를 유지하는 한편 만주족 왕조로서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녹여 냈다. 청 제국의 멸망 이후 일부가 한족에 의해 철거되기도 했지만 교태전과 곤녕궁, 궁마장인 전정 등에서는 그 흔적을 여전히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동서 각각 6궁씩 배치된 후궁이나, 미로 같은 샛길 끝에 마치 궁중 담벽에 기생하는 애벌레처럼 지어져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태감들의 숙소 ‘탑탑처’는 자금성 안 ‘아랫사람’들의 생활상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 예다. 의식주와 여가 생활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증언을 통해 독자는 황제는 물론이고 태후와 황후비빈, 태감과 궁녀 등 황제의 절대권력 아래 자금성을 살아가던 이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여제나 다름없던 서태후의 시대에는 흥미로운 일화들이 쏟아진다. 황제에게는 마치 동성 친구와도 같은 후궁이었으나 끝내 서태후에게 미움 받아 죽임을 당한 진비의 삶은 그의 거처였던 경인궁과 그가 내던져져 죽임을 당한 ‘진비 우물’을 통해 기억된다. 황실의 담벽 속에서 맴돈 흥미진진하고도 때로 비극적인 일화들을 통해 독자는 자금성의 공간을 다시금 보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정조와 사연이 씨실날실처럼 얽혀 있는 자금성의 곳곳을 거닐며 『자금성 이야기』는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효율적이고 깊이 있는 자금성의 시공간 읽기를 돕는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