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지 영화란 무엇인가
    [책소개] 『렌즈 속의 인류』(이기중/ 눌민)
        2014년 09월 07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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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인류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은 인간사회의 가장 다양한 테마를 다루는 학문인 만큼 그 방법론 또한 풍성하다. 특히 영상인류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인류학과 영화가 만나 영상인류학이라는 독특한 분야가 정립된 것은 인간사회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아주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영상인류학의 기초를 다진 선구자 다섯 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책은 인류학적 영화론, 또는 영화적 인류학을 습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이문웅(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렌즈 속의 인류』는 인류학이 “시네마베리테”, “누벨바그”, “네오리얼리즘”, “다이렉트시네마”와 같은 영화 사조와 맺어온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영상인류학의 역사가 영화의 역사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지 알게 됐다. 영화에 좀더 깊은 의미를 담고자 고민하는 분들께 이 새롭고 독특한 세계에 빠져들어 보길 권한다. -문석(전 《씨네21》 편집장)

     민족지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부시맨The Gods Must Be Crazy》(제이미 유이스 감독, 1980)의 소개를 보면 대체로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원시생활을 하며 순수한 인간성을 간직한 부시맨이라는 소수 인종이 콜라병을 처음 접하고 나서 일어난 해프닝들”이라고 나온다.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며 거의 벌거벗고 살며 서구 문명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느 “부시맨” 남자의 시선을 따라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되며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바 있다.

    한편 같은 해에 존 마셜이란 민족지영화 감독도 같은 지역을 배경으로 영화 한 편을 찍었는데 바로 《나이, 쿵 여인의 이야기Nai!, The Story of !Kung Woman》이란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부시맨”들의 삶을 보면 강제보호구역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고, 반나체가 아니라 이미 서구식 복장을 하고 있으며, 종종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화폐 경제 체제가 침투해 있으며, 부족 사람들끼리의 질투와 싸움이 왕왕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해에 같은 사람들을 찍은 영화가 이렇게 정반대의 모습을 그려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존 마셜은 이곳에서 영화를 찍으며 관찰자에서 점차로 실천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장).

    이렇게 민족지영화가 다른 일반 상업 영화와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민족지영화의 목적이 “(보기) 좋은 영화”가 아니라 “민족지적 지식” 또는 “인류학적 지식”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민족지 영화가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찍고 어떤 내용을 담으려 하는지, 우리는 그들을 통해 무엇을 보는지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영상인류학자이자 민족지영화 감독인 이기중 교수가 2004년에서 2013년까지 10년에 걸쳐 차근차근 민족지 영화의 이론적 배경과 여러 논의들, 그리고 민족지영화의 다섯 거장, 장 루시Jean Rouch, 존 마셜John Marshall, 로버트 가드너Robert Gardner, 티머시 애시Timothy Asch, 데이비드 맥두걸David MacDougall의 생애와 인류학적 기반, 그들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고 해설한 것을 묶어 낸 책이다.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특정 사회 집단의 삶의 양태나 문화에 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글을 민족지라고 한다면 민족지영화는 같은 내용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민족지영화를 보면 서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아마존, 인도네시아 발리, 인도, 프랑스 파리 등 전세계의 다양한 민족, 사회 집단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민족지영화는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민족지영화가 만들어지고 민족지영화제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며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장르인 민족지영화의 개념, 이론, 인류학적 방법론, 제작 방법 등에 대해 인류학이나 영화 이론을 잘 아는 사람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는 초심자에 이르기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한다.

    또한 저자가 몇몇 영화 관련 저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란하고 현학적인 수사와 철학적 개념어의 남발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장면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뜯어보고 의미를 찾아내는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렌즈 속 인류

    모든 영화는 민족지영화다?

    “모든 영화는 인류학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등장인물의 복식, 일상적인 의례, 말투, 표정, 그리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건물, 음식, 교통수단, 더 나아가 이야기 구조, 편집된 상태, 미적 감각 등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인류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인류학자인 칼 하이더와 피터 크로퍼드는 민족지영화의 범위를 “사람에 관한 모든 영화”로 보고 있다. 한편 제이 루비는 “전문적인 인류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만을 민족지영화”로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제이 루비의 규정에 기반하고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민족지적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민족지적 영화로 보면서 민족지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제이 루비는 민족지영화를 “글로 된 민족지”와 비교하면서 민족지영화는 “영화 민족지filmic ethnography”로 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렌즈 속의 인류”는 책으로 읽는 인류학이 아니라 영상으로 접하는 인류학이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인류학적인 시각을 체득할 수 있다. 또한 민족지영화의 초기 거장들이 참여하고 논의를 키웠던 “시네마베리테”, “누벨바그”, “네오리얼리즘”, “다이렉트시네마”의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장면들을 접하게 된다.

    민족지영화의 다섯 거장들

    저자는 “작가”로서의 민족지영화 감독이 등장하고 다양한 민족지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950년대를 민족지영화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 많은 민족지영화 감독들이 등장하여 인류학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저자는 장 루시Jean Rouch, 존 마셜John Marshall, 로버트 가드너Robert Gardner, 티머시 애시Timothy Asch, 데이비드 맥두걸David MacDougall의 초기 거장들에 주목하여 일목요연하게 그들의 생애, 학문적 배경, 영화에 대한 철학, 민족지영화 방법론을 살펴보고 민족지 영화 17편을 분석하여 민족지 영화 세계를 조명한다.

    장 루시는 민족지영화가 학문적으로 성립되기 전에 이미 40여 년 동안 서아프리카에서 100편이 넘는 민족지영화를 찍은 선구자다. 그는 프랑스 인류학박물관 민족지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 민족지영화위원회의 설립자이자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프랑스 시네마테크 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미친 사제들》,《재규어》,《나는 흑인 남자》와 같은 영화를 통하여 “참여적 인류학”과 “시네픽션”의 개념을 발전시키기도 했으며, 파리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기록하여 직접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면을 밝힌《어느 여름의 기록》을 통해 “시네마베리테”라는 개념을 만들어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쳐 “고다르보다 중요한 인물”이라는 평을 얻기까지 했다.

    존 마셜은 한평생 서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민족지 영화를 찍은 감독이다. 그의 첫번째 민족지영화《사냥꾼들》은 칼라하리 사막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싼 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를 찍고 나서 나미비아 정부로부터 강제추방당하여 미국에서 다이렉트 시네마 감독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보다 인류학적인 시각이 드러나는 《고기 싸움》, 《나이, 쿵 여인의 이야기》, 《칼라하리 가족》 등 “쿵 부시먼 시리즈”를 찍으면서 영화감독뿐만 아니라 활동가로서 싼 부족 사람들을 위해 활동했다. 또한 참여관찰과 내부적 시각이라는 인류학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리얼리티를 보여주었다.

    로버트 가드너는 미국 하버드대학에 민족지영화 제작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하버드대학 피바디 박물관의 후원을 받아 뉴기니 대니 부족의 “의례 전쟁”을 그린 《죽은 새들》을 만들며 본격적인 민족지영화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에서 《모래의 강들》, 《딥 하츠》, 《축복의 숲》 등 장편 민족지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언어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하여 상징적 의미를 만들어 신비로움과 모호함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티머시 애시는 존 마셜의 “시퀀스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민족지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축제》와 《도끼 싸움》과 같은 유명한 “야노마모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발리의 강신의례》와 《저로가 저로를 말하다》와 같은 “타파칸 시리즈”를 제작했다.

    데이비드 맥두걸은 1960년대 말 UCLA대학원의 “민족지영화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고 대학원 졸업 작품이자 자신의 첫번째 영화인 《가축들과 함께 살기》를 만들며 민족지영화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민족지영화는 “관찰적 시네마”와 “참여적 시네마”라는 두 대비되는 경향을 띠며 제작되었다. 동아프리카 우간다의 지에 유목민을 다룬 《가축들과 함께 살기》는 관찰적 시네마의 방식을 띠었지만, 이후 케냐의 유목민을 주제로 한 《신부대 낙타들》이나 《부인들 가운데 한 부인》은 참여적 시네마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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