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비의 신분 상승,
그를 통해 본 조선시대 일상사
[책소개]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권내현/ 역사비평사)
    2014년 09월 07일 1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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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

① 17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조선에서 양반이 되려고 했던 ‘김수봉’이라는 어느 노비 집안의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한 이야기다. 노비니까 당연히 신분 상승을 꿈꾸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이 아니라, 당시 노비의 삶이 지닌 예속적이고 열악한 인간 조건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제한적이었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② 노비들이 살았던 당대의 ‘호적대장’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꿈꾼 그들의 현실과 실상을 밝혔고, 아울러 조선시대 하천민들의 신분 성장사까지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의 평범한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호적만큼 방대하게 기록된 자료는 없다.

③ 신분제도를 둘러싼 조선의 생활사 이야기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특히 호적에서 관직 기록을 해독하는 방법인 행수법(行守法), 기혼 여성들의 호칭 차이, 노비의 현실과 양반의 집착, 노비에게 붙여진 이름에 담긴 사회적 천대와 멸시, 노비를 소유한 노비, 재혼을 포함한 결혼제도의 변화,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군역의 변질, 성씨와 본관의 획득 과정, 가문의 대를 잇는 일에 가운을 거는 관습으로 생겨난 입양제도의 변화 등 조선시대 일상의 세밀한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양반과 노비

조선시대에 지배계층인 양반은 소수에 불과했고, 인구의 절대 다수는 평민이나 노비 같은 하천민이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장벽, 즉 신분제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대체로 그 방법이 기득권 세력인 양반층을 직접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같이 양반이 되고자 하는 독특하면서도 한계가 있는 길이기는 했다.

양반들이 평생 지향한 것이 관료였다면, 노비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신분 해방을 꿈꾸었고, 평민으로 성장한 뒤에는 불평등한 군역 부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지위를 서서히 상승시켜 나갔던 그들은 훗날 점차 다른 신분과의 구분을 가능하게 했던 양반의 전유물까지도 하나씩 획득해 나갔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들이 자신의 가계를 좀 더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기록의 윤색’을 시도했다면, 하천민들은 자신의 가계를 지우기 위해 ‘기록의 삭제와 변조’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노비양반

노비라는 예속의 삶, 그리고 세 가지 선택지

조선시대에 노비는 신분제의 속박에 따라 대대로 주인 집안에 예속된 소유물이었고, 주인들의 관심은 그들의 인간적 삶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경제적 가치에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노비는 스스로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출생하는 순간에 핏줄로 결정되는 잔인한 전락이었다.

노비로 태어나 끝없이 노동과 착취를 내면화하면서 천시와 멸대 속에서 연명하는 삶을 과연 누가 긍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주인 집안의 소유자가 사망했을 때는 그 주인의 자식들에게 노비가 다시 상속되는데, 이때 가족별로 상속되지 않고 노동력 가치의 효용성에 따라 이른바 ‘균분’되므로 서슴지 않고 노비 가족을 해체시키기도 했다.(이 책 56~57쪽)

조선시대에 살았던 노비들의 이런 비천한 삶에는 대개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하나는, 자신이 처한 신분적 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는 대신, 주인에게 평생토록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까지도 모조리 노비의 삶을 감내해야 한다는 비극적 상황에 놓여진다.

둘은, 비루한 노비의 삶을 벗어던지기 위해 도망을 가거나, 혹은 사회질서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 위해 저항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때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잡혀야 하며, 그나마 주어졌던 일상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랑자나 반역자의 운명을 겪어내야 한다.

셋은,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서 다룬 방식인데, 재물을 모아 경제적 성장을 하거나 전쟁터에 나가 군공을 세우는 방식 등으로 합법적인 면천을 도모하는 길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일부 노비가 다시 노비를 소유할 정도로(86~87쪽) 경제력을 가진 자들도 더러 있었다. 또한 노비가 토지를 소유한 경우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1720년에 경상도 용궁현에서는 전체 토지 가운데 약 10%를 노비가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지역의 고문서에는 노비들이 자신의 토지를 매매한 내용을 담은 문서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경제력을 보유한 노비들은 양인이 되기 위해 속가(贖價)라는 돈을 내고 속량(贖良)할 수 있었다. 또한 왜란과 호란, 두 차례의 전쟁 경험을 통해 부족한 군인을 노비로 채우면서 그에 따른 공훈으로 신분 해방을 시켜주기도 했다.

호적을 통해 복원한 하천민의 성장사

이 책은 그러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양반을 꿈꾸었던 한 노비 가계의 2백 년 이력을 기록한 것이다. 김수봉이라는 노비의 가계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는 데 활용된 주요 자료는 ‘호적대장’이다. 양반이나 국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노비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은 많지만, 그들의 가계를 복원하는 데는 호적만한 자료가 없다.

다만 현존하는 호적의 양이 많지 않고 호적에 전체 인구가 모두 다 들어가 있지 않아서, 완벽하게 가계를 복원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평범한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이만큼 방대하게 기록된 자료는 없다. 각 가계의 호구에 관한 단순 기록들을 최대한 수평, 수직으로 수합해 놓고 살펴보면, 그들의 삶이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 불완전하게나마 되살릴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시대의 호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 역할도 아울러 하고 있다.

노비의 신분 상승사로 살펴본 조선의 일상사

이 책에는 신분제도를 둘러싼 조선의 생활사 이야기가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실제 호적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면서 인구 구성원들의 실제를 보여주며 비교하고 있다. 또한 신분에 따른 직역(職役)의 분포와 명칭, 호적상의 관직 기록을 해독하는 방법인 행수법(行守法) 등도 자세히 소개했다.(30쪽)

조선시대 여성은 노비층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인 문서에 기재하지 않았는데, 결혼한 뒤에는 구분하기 위해 특별한 지칭어가 주어졌다. 양반 여성은 성씨 뒤에 씨(氏), 중인 여성은 성(姓), 평민 여성은 소사(召史)라는 용어를 붙여 신분 또는 계층을 구분했다.(17, 143쪽)

호적뿐 아니라 상속문서나 족보를 통해서 노비 상속, 소유 노비의 수, 노비의 도망 등 현실적 문제들을 밝히고 있다. 노비 상속을 위해 노비 가족을 해체하는 일, 한 양반이 60~70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 도망간 노비를 포기하지 못한 주인들의 집착으로 계속 호적에 올리는 바람에 노비의 나이가 100세를 넘어 200세에 이르는 해프닝 등을 보여준다.(64~65쪽)

또한 노비들에게 고유어로 붙여진 이름들이 담고 있는 사회적 천시와 편견들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돌쇠와 마당쇠뿐 아니라, 강아지, 막동이, 더부사리, 개부리, 소부리, 심지어는 거시기라는 이름까지 노비에게 붙이곤 했다.(71~73쪽) 실로 작명을 통해 발현되는 욕망의 거세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노비를 소유한 노비(86~87쪽), 재혼을 포함한 결혼 풍습(125~131쪽),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군역의 변질(132~142쪽), 급격히 증가하는 양반 주호(主戶)의 비중 변화(157쪽), 가문의 대를 잇는 일에 가운을 거는 관습으로 생겨난 입양제도의 변화(177~184쪽) 등을 통해, 조선의 일상적 생활사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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