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특별법과 '국가의 세속화'
    [기고] 국민은 '국가'를 조사할 권한 있다. 그게 민주주의!
        2014년 09월 05일 01:29 오후

    Print Friendly

    “특검을 피해자 쪽에 달라는 것은 여당이든 청와대든 막 조사하겠다는 것 아니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여당 정책위원장이 내뱉은 말이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특별법 협상에 임하는 여권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이처럼 정확히 보여주는 말도 없다”고 논평했다.

    우리는 지금, 민간인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 혹은 특검이 국가와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여당 수뇌부가 국민을 상대로 주장하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국가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 ‘민간인에게는 국가를 조사할 권한이 부여되어선 안 된다’, ‘국가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이것이 이런 주장의 근저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국가를 초월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본인들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현 정권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와 의료 등 공공부문을 시장에 민영화하고 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장치들을 풂으로써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시장이라는 사회의 질서를 초월한 곳에 자신들의 존재 위치를 설정하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이러한 초월적인 지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극단화된 국가주의자들, 나아가 국가 숭배자들이다.

    세월호 커리커쳐 홍은아

    ⓒ​이미지 제공 홍은아

    근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역설 중 하나는, 정교분리 이후 신을 몰아낸 자리에 국가 자신이 하나의 숭배 대상으로, 곧 물신(Fetish)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수많은 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국민국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할 것이며 국가의 주권은 전 지구적 시장의 네트워크의 등장 앞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전지전능한 국가를 마주하고 있다. 이 국가는 스스로 민주화되고 국민의 통제를 받는다고 그 구성원들에게 선전하지만, 실상은 헌법을 초월해 지배와 군림을 행사한다. 신자유주의의 역설이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기존에 국가가 담당해왔던 모든 영역들, 교육, 의료, 수송과 통신, 경제계획, 국민통화의 발행, 심지어 국방, 그리고 재난 구조까지 모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국가는 사회의 영역에서 퇴장해왔다. 한국의 경우는 IMF 구제금융 이후 훨씬 극단적인 방식으로 공공부문이 해체되고 시장의 힘이 강화되었다. 국민적 반발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언제나 철도와 의료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우리는 민영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세월호 참사에서도 발견한다. 국가는 침몰 첫날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뒤, 구조작업을 대신할 민간업체가 와주기만을 기다렸다.

    언딘이라는 업체가 해경. 해수부, 해군과 같은 국가기구들을 대신해 실종자들을 수색했고, 국가는 민간업체의 수색작업을 보조하는 보조장치가 되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국민을 구조하는 영웅적인 구조대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다가 해경의 바지선을 언딘의 민간 바지선으로 교체하기 위해 수 시간을 허비하는 국가의 모습만 보였다. 이것이 신자유주의화된 국가의 현주소다. 그들은 사회를 운영하지 않는다. 사회를 운영하는 것은 민간 영역, 곧 자본이다. 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국가의 ‘행위하지 않음’은 국가의 주권권력이 소멸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거꾸로, 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초월적인 권위, 사회의 통치와 관리를 넘어선 초월적인 위치를 확인하고, 이로 인해 군림하며 지배한다.

    통치하지 않고 지배하기. 이것이 오늘날 국가의 현주소다. 국가는 수요와 공급의 관리,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교육과 의료 서비스 제공, 빈민과 실업자의 구제, 재난 구조 등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기능 일반을 시장에 위임하고, 스스로 초월적인 위치로 격상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나기 직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정원 대선 개입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60-70%를 유지해왔는데, 이는 그녀가 훌륭한 정책을 추진했거나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견해표명이나 설득, 추진이 아니라 해외순방, 프랑스어 연설, 중국어 연설과 같이 국가 상징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영역이 스스로 조화롭게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일, 그러면서 자신들은 국가의 고유한 상징적 기능들에 집중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얼마나 초월화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박정희에 대한 종교적인 숭배가 되살아난 데 이어 이제는 국가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국가는 곧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소유물로, 곧 공화국이 아닌 군주국으로 변모(혹은 퇴보)한다. 국가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압하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초월적인 영역으로 고양되어 지배를 행사하는 신성시된 국가권력. 87년 이후 민주화된 사회에서 선거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초월적인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군림하는 국가의 탄생은 87년 체제의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산물이지만, 동시에 87년 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일은 초월적으로 고양된 국가를 사회적 영역으로 ‘내재화’하는 일, 나아가 신성시된 그 권력을 ‘세속화’하는 것이다.

    현 정권은 그 권력의 기반인 주권자를 끝없이 기만해왔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사라진 대통령의 행방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점에서 의문투성이인 사고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있고, 죽음을 방치한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고 있으며, 조문객 위조, 사복경찰 투입 등 유가족들을 상대로한 기만적인 조치들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거대한 재앙을 겪은 이후 그 유가족들이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수사관과 기소권을 보여해달라고 읍소할 때 국가는 민간인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며 그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국가는 언제나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개인신상을 ​조사하며, 집회에 나온 국민들의 얼굴을 일일이 채증하지만, 국민에겐 국가의 잘못된 운영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거꾸로여야 한다. 국가는 무고한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지만, 주권자인 국민은 국가를 조사할 권한을 언제든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민이 국가를 수사하고, 국민이 국가를 기소할 권리, 그 권리를 적어도 국가의 무능함으로 인해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유가족들만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 이것이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이 국가를 초월적 존재로 고양시킴으로써 숭배의 대상으로 신성화시키는 집단에 맞서 국가를 주권자인 국민대중의 민주적 통제 속에 내재화하는, “국가의 세속화”의 출발점이다.

    신성한 힘은 신성한 존재에게만 부여되어야 하며, 세속적인 것은 세속적으로 남아야 한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국민(인민)의 것은 국민(인민)에게.

    필자소개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