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 폭력: 괴물의 이해 ①
        2014년 09월 03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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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한국 인터넷으로 (한국의) 병영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숨이 차고 거의 신체적인 통증 같은 것을 느끼는 듯한 감이 듭니다.

    여러 가지 이유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알거나 만났던, 그 표정이 밝고 궁금한 게 많고 살 의욕이 넘치는 수많은 남자 아이들, 초,중고등학생들이 이런 군대에 끌려가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버틸 것인가 라는 걱정부터 들어서 거의 호흡곤란 비슷한 현상을 겪습니다.

    또 동시에 제 자신의 경험이 기억납니다. 제 외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제게 늘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라. 대입에 실패하면 군대 간다. 군에서 너 성격으로는 아주 힘들 것이다”.

    실제로는 그 시절, 즉 1980년대에는 아프간 침공 등으로 제 할머니가 의식했던 대학생 병역 면제권은 일시 취소된 바 있어 열심히 공부해도 군대 갔어야 했을 터인데 (저로서 운좋게도, 제가 고교 졸업했을 때 아프간 침공이 패배로 완료되고 대학생 군 면제는 부활됐습니다), 할머니는 아마도 모르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녀는 물정에 좀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정에 아무리 어두워도 그녀는 한 가지 확실히 알고 계셨습니다. 저와 같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싸움질을 거의 못하는 성격으로는, 2년간의 병영을 버티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불리한(?) 출신성분이 있어 더더욱 그랬습니다. 학교에서도 맞고 살았다면 군대는 어디 많이 다르겠습니까? 구타의 강도만 쎄질 뿐이죠.

    바로 이거야말로 핵심입니다. 병영은 별세계이긴 하지만, 병영에서는 우주인들이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일상보다 규율이 엄하고 위계가 더 뻔할 뿐, 크게 봐서는 병영은 우리 일상의 축소판이자 반영에 불과합니다. 쏘련 속담으로는 “군은 사회의 거울”이었던 거죠.

    예컨대 제 할머니가 걱정했던 쏘련 군 병영의 폭력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크게 봐서는 제가 실컷 경험한 학교 폭력의 “연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렇듯이, 병영에서는 “공무원”, 즉 장교들이 체벌 권한은 없었습니다. 학교든 병영이든 체벌 폐지는 1917년 10월 혁명의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 중의 하나이었고, 스딸린의 반동에도 불구하고 쏘련 말기까지 지속됐습니다.

    반면 학교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괴롭히듯, 그리고 동급생 중에서는 “주먹 질서”가 잡히듯, 쏘련 말기의 병영에서도 연공/주먹의 질서가 지배했습니다.

    고참들 (деды, 직역하면 “할아버지들”)이 신참들에게 모든 고된 노동을 물론 개인적 심부름까지 시키고 불복종하면 패고, 불복종하지 않아도 재미(?)로 패고 그랬던 거죠. 신참들은 고참이 될 때까지 인내하면서 살고, 일단 고참이 되고 나서 예편 직전의 6개월의 일 안해도 되는 (일을 다 신참들에게 시켜도 되는) “천당 생활”을 늘리려 하고…

    이런 이야기를 군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들으면서 80년대의 어린 제게 들었던 생각은, “글쎄, 만약 우리 학급의 남자 아이들만 따로 2년간 합숙 생활시키고 다소 고된 훈련/노동을 시키면 우리의 소사회도 이 정도 가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군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학교 학급도 – 나이보다 힘과 주먹의 위계긴 하지만 – 비슷한 방식으로 굴러 갔으니까요.

    (쏘련에서) 학교의 폭력화는 60-70년대, 혁명의 이상들이 대중적으로 망각되고, 간부층과 서민층의 격차, 도‧농 격차, 그리고 대도시/소도시 격차 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50년대 초반 군 복무를 했던 제 아버지는 폭력행위를 당한 적은 없었답니다. 80년대 군 내 폭력 행위의 타깃은 농촌/소도시 출신들이 질투/혐오했던 대도시 출신, 그리고 간부층 진입 후보생으로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지식청년이었습니다. 결국 시작 단계의 계급화 등 일반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군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난 셈입니다.

    한국군은 어떤가요? 당연히 일반 사회와 질적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봐서는 역시 일반 “조직 사회”의 원리들은 군에서 가장 역력하게 나타날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군 폭력

    군에서는 상하관계의 언어는 폭력과 폭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과연 상하관계가 아닌 동료관계, 즉 위계질서적 언어가 불필요한 관계로 돌아가는 조직이라고는 어디라도 있나요?

    재벌 따위는 물론이고, NGO에서까지도 명망 높은 명문대 출신의 창립자/실세는 사안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자기에게 불복종하는 활동가를 내밀어버리고 심지어 해고시키기까지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입니다. 반전/평화 NGO에서도 군대와 같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건 슬픈 아이러니 치고도 아주 슬픈데요…

    좌우간, “야, 불가능하다 자꾸 하지 말고 가능하게 하라, 임마!”라고 버럭 화내는 기업 상사와 화내면서 “아랫것”의 몸을 때리는 군 하사관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지, 본질상의 차이는 아닙니다.

    한국 군대는 사회와 “따로” 존재한다기보다는 한국 학교의 연장이며 한국 직장으로의 (남자들을 위한) 통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사회와 함께 변하기도 합니다.

    90년대말 이전까지는 군에서 “연대책임”이 통했던 것은, 즉 한 명의 “고문관”의 실수로 “모두”가 고참들로부터 폭력을 당해야 했던 것은 그 때까지의 한국식 개발국가의 일반 직장문화와 서로 연결돼 있는 관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군에서의 가혹행위, 즉 몇 사람이 한 사람의 약자에게 악질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상당 부분 신자유주의 시대 경쟁주의 학교에서의 폭력 풍경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일단 다음 포스트에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군에서든 어디에서든 도처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사회의 병리적 가혹성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볼까 합니다 (다음 주 계속).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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