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쌀 투쟁, 특별히 중요하다
[에정칼럼] 도시민이 함께하는 갑오 아스팔트농사 짓자
    2014년 09월 02일 0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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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다가오는 9월말을 시한으로 쌀 수입의 관세화, 즉 수입 전면개방을 통보할 것이라 선언함에 따라 농민단체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고조되며 정부와의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의 예고대로 될 경우 1993년 UR 협상 타결 이후 20년 만에 쌀 시장이 완전히 개방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파장도 엄청날 것이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무엇보다 2012년 기준으로 쌀을 포함해도 22.6%, 쌀을 제외하면 3.7%에 그치고 있는 국내 식량 자급률이 더욱 떨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 쌀 재배 면적은 한국 전체 경지의 60%이고 쌀 재배 농가는 전 농가 수의 75% 정도인데, 수입 개방으로 쌀 재배를 통한 수입 전망이 불투명해질 경우 쌀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관세율을 매겨서 단기적인 경쟁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국내 자급률이 떨어지게 된다면 국제 곡물 시장의 요동에 이내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와 국제 곡물 메이저들의 농간이 악영향을 더욱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외국산 GMO쌀, 방부처리된 쌀을 먹지 않을 선택권도 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다. 집에서는 생협 쌀을 사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식당에서 사 먹는 밥, 슈퍼에서 파는 막걸리까지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전농

강원도 농민의 쌀 개방 반대 투쟁 모습(사진=전농)

관세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연간 국내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하는 40만 9천톤을 의무 수입하고 있는 마당에 국제 협상에서 한국이 아무런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듯이 스스로 얘기하며 빗장을 풀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떤 국제 협상이든 ‘협상’이라는 추가적 과정이 필요할뿐더러,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각국의 사정을 이유로 ‘현상유지’를 관철할 수 있는 게 당연지사다.

국내에서의 동의 확보 과정도, 국외에서의 협상도 선행하지 않고 수입 개방을 먼저 선언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스마트폰 하나라도 더 파는 게 능사이고 농업은 어차피 버려야 할 것이라는 신앙적 신념의 발현 이상이 아닌 듯하다.

쌀 개방이 갖는 숱한 문제점들은 많은 전문가들이 더욱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쌀 개방 저지 투쟁이 갖는 더욱 특별한 중요성을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관세화로 인한 완전 개방이라는 절대적 성격 변화와 급격한 이행 계획이라는 객관적인 상황이 있다. 즉 여기서 밀려서는 쌀 뿐만 아니라 농가 붕괴로 인한 국내 농산물 전체 기반의 와해를 막을 수 없을 마지노선이라는 의미가 있다.

둘째, 이제까지와는 다른 투쟁 주체의 형성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점이 있다. 농민단체들은 다른 누구보다 우선 자신들의 일인 만큼 명운을 건 ‘아스팔트 농사’를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인구의 6%가 못되는 농가 인구에 고령화가 진행된 사정을 생각하면, 그들만의 짠한, 그러나 관성적이고 고립된 몇 차례 투쟁으로 머물고 말 수도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지난 몇 년 간 급속히 성장한 생협 운동, 학교급식 조례 운동과 광우병 촛불 운동을 경험한 도시민들의 존재다. 부모를 농민으로 두고 있거나 농업에 대한 간접적 경험을 간직한 도시민들은 쌀 투쟁에 대한 공감의 준비가 이미 되어 있거니와, 이제 쌀은 자신의 문제가 될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도농 연대의, 도시민이 앞장서는 대도시의 쌀 투쟁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며, 예를 들어 서울, 부산, 광주, 대구, 울산의 거리로 도시민, 노동자의 가족들이 밥솥을 들고 나와 농성을 한다면 그것은 무척 의미심장한 장면이 될 것이다.

셋째, 새로운 도농 연대의 운동은 방어가 아닌 공세적 전략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농업이 황폐해지고 있으니 지원을 늘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기후 위기와 자원 위기의 상황 속에서 농업이 안보 차원에서도 국민의 중요한 삶의 기반이 됨을 환기하며 식량자급률 법제화, 농민 기본소득 보장, 공공 농지 확대 같은 정책 요구를 더욱 전면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쌀 개방을 할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농업 기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정치사회적 프레임 전환을 의미한다.

넷째, 이러한 쌀투쟁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정치 지도력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가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을 맞는 갑오년이기도 하거니와, 당시 농민군이 내걸었던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왜양이’의 기치는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면 ‘국민적-민중적’ 헤게모니의 내용을 담보하는 것이기도 했다.

농민군은 조선 민중 전체의 물질적 이해와 대안 사회의 비전을 함께 표방하며 그것이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했기에 승리의 목전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쌀 투쟁이 농민만의 경제적 방어 투쟁이 아니라 녹색사회 전환과 사회적 연대 확장이라는 당위성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것은 국민적-민중적 프로젝트로 상승하게 될 것이며, 이를 지도하는 정치세력이 현실 정치에서도 대안적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쌀 투쟁은 쌀만의 투쟁도 아니고, 농민만의 투쟁도 아니며, 자본주의 국제 시장으로부터 우리 삶의 자율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시작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다가오는 쌀투쟁이 비상한 창조력과 집단적 의지를 모아내는 봉기의 시작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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