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은 총구가 아닌
    역사 교과서에서 나온다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12] 교과서가 정치 쟁점 된 이유
        2014년 09월 02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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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11

    1947년 독립 후 줄곧 집권 여당이던 인도국민회의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야당이 처음 집권을 해 본 것은 1977년 국민당(Janata Party)에 의해서였다.

    국민당은 인도가 독립 투쟁을 하던 당시 힌두 종교공동체주의에 기운 보수 우익 민족주의 세력이 정당의 필요성을 인식해 만든 당이었다. 현재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의 전신이고, 민족의용단이나 의용단일가 등 수구 세력들이 정당체로 결합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1977년 처음 집권 후 2년도 못 가서 권좌에서 물러났고, 그 뒤 발전적으로 당을 해체한 후 인도국민당으로 재창당을 하여 20년 후인 1998년에 다시 집권하였다.

    그들 힌두 민족주의 수구 세력들이 두 번의 집권기 동안 똑같이 한 일이 있다. 역사 교과서 문제를 정치의 중심 이슈로 끌어올린 것이다.

    무엇이 왜 그들로 하여금 교과서 문제를 그만큼 중요하고 절박한 것으로 만들었을까? 그들 정권은 인도국민회의 정권의 역사 교과서를 공산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이라 단호하게 규정하였다. 그리고 검인정 교과서 가운데 최고 권위 있는 교과서로 인정받는 국립교육연수원(NCERT)이 발간한 역사 교과서를 새로 집필하게 하였다.

    인도의 역사 교과서는 검인정 체제 아래에 서 국립교육연수원이 교과서를 발행하고, 그것이 공교육 체제 아래 운영되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채택되기 때문에 그 교과서는 압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국영 기관인 국립교육연수원이 주체가 되어 그 동안 30년 동안 정사(正史)로 배워 온 역사를 폐기하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여 가르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이었다.

    국민당의 모라르지 데사이(Morarji Desai) 정부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인《인도고대사》(Ancient India)의 저자인 샤르마(R.S. Sharma)를 공산주의로 학문을 벌겋게 물들인 자로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역사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8년에 샤르마가 집필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립교육연수원 책 목록에서 퇴출시켜버렸다.

    두 역사학자

    역사교과서 논쟁의 당사자가 된 샤르마와 타빠르

    그리고 중학교 역사 교과서 저자인 타빠르(Romila Thapar)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였다. 타빠르에게는 본격적으로 힌두 종교공동체주의의 색채를 가했다. 정부는 타빠르를 무슬림 왕조인 무갈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신들의 고대 힌두 문명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라면서 왜 적을 이롭게 하는 역사를 기술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저자와 정부를 넘어서서 진영 싸움으로 번진 교과서 논쟁의 중심에는 종교 공동체주의가 있었다. 민족주의 수구 세력은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기 위해 이간질 차원에서 만든, 즉 영국 이전에는 역사적으로 실체가 없는 힌두 공동체와 무슬림 공동체를 역사적으로 만들려 안간힘을 다했다.

    무슬림을 악마로 만들어 힌두를 종교 기준으로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어 그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책략이었다. 힌두와 무슬림 사이를 이간질 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인 무슬림을 희생시키며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애써 민족의 위대함을 무시한다는 논리를 폈다.

    학계에서는 우파 민족주의 의견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파장은 매우 컸다. 그들이 대중화 한 역사 문제는 학문으로서의 역사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도구로서의 역사 문제였고, 그 점에서 수구 세력의 문제 제기는 큰 성공을 가져왔다.

    그들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정권을 잡은 뒤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역사 교과서 문제를 정치와 결부시킨 뒤 본격적으로 종교 공동체 갈등을 일으켰다. 무슬림을 민족이 아닌 세력,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하는 세력, 폭력을 써서라도 복수를 해야 하는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세계 최고의 고대 문명이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고, 농락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줄기찬 역사 왜곡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싸움은 10 여 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매우 집요하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직의 중심은 민족의용단이 잡았다. 영국 식민 지배와의 싸움을 조직적으로 해 본 경험이 있던 그들은 전국의 지부(shakha 샤카)에 이 왜곡된 힌두 민족주의 역사관을 널리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 교과서를 토대로 하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연령의 청소년을 교육하여 의용단원을 양성하였다. 지부는 2004년 이후로 그 세가 줄어 전국 10,000 여 개가 있으나 1990년대에는 6만 개까지 될 정도로 번성하였다.

    지부에서는 이 힌두 중심의 종교 공동체주의적 역사관을 토대로 하여 요가, 의례, 예술 등 광범위한 힌두 문화를 가르치면서 국수주의적 세계관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도록 한다. 그리고 의용단일가에 속하는 교육 중심 조직인 전인도지식교육원(The Vidya Bharati Akhil Bharatiya Shikha Sansthan)이 운영하는 2만 여 개의 학교에서는 전국적으로 2백만 명이 훨씬 웃도는 청소년들이 유치원 나이 때부터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교육을 받는다.

    그 학교는 도시보다는 시골이나 소수 부족 거주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다른 정보와 지식을 접하기 어려운 그들을 왜곡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거기에서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민족의용단과 의용일가의 다양한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충원된다. 매우 잘 짜여 진 체계가 잘 운영된다.

    민족의용단이 자행한 힌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적대적 힌두 종교 공동체주의는 효과를 발휘하여 1990년대 초부터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1977년 이후로 본격화 된 그들의 역사 교육에 의해 자라난 세대가 드디어 힌두 수구 세력의 청년 전위대로 성장한 것이다.

    현대 인도사의 가장 큰 분기점이자 비극의 기점이 된 아요디야 무슬림 사원 파괴는 바로 그들 전위대가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02년 구자라뜨 학살의 난동도 바로 그 힌두 민족주의의 왜곡된 역사 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진 구자라뜨 주에서 일어났다. ‘아요디야’와 ‘구자라뜨’는 역사 왜곡으로 연계된 필연적 사실이다.

    인도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수구 난동의 역사는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우파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인해 촉발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인도 우익의 역사 교과서는 역사가 더 이상 과거를 설명하거나 분석하는 담론이 아니라 정치의 최전선에서 권력을 가져올 수 있는 무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우파는 조직에 강하고 좌파는 논쟁에 강하다. 조직은 사람을 끌어들이지만 논쟁은 사람을 멀리 하게 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좌파는 순수하나 무능하고, 우파는 사악하나 유능하다. 그들의 주장 뒤 종교 공동체 갈등을 일으킨 수구 난동 세력의 성장과 그 10년 뒤 인도국민당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인도국민당은 1977년 정권을 잡은 뒤 절치부심의 20년 후 수구 세력은 다시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들은 1998년 연정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나 1년 만에 연정이 붕괴되어 재선거를 치렀고, 1999년에 다시 정권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다수당이 되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2년 그들은 1977년에 이어 다시 역사 교과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은 국립교육연수원 역사 교과서를 다시 퇴출시키고 새롭게 역사를 기술하도록 하였다. 40년 넘게 정사의 위치를 차지해 온 저자들과 그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크게 반발하였고, 그 파동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2002년은 구자라뜨 주에서 무슬림 학살이 일어나던 해였다.

    국민들은 그들을 ‘빛나는 인도’를 기치로 신자유주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수많은 노동자, 농민, 서민을 죽게 만들고, 구자라뜨 주에서 종교 공동체 분쟁을 주도하여 수많은 무슬림을 학살한 것으로 판단해,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결국 2004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은 정권을 다시 회의당이 이끄는 통합진보연대에게 내주었고, 그 회의당 주도의 정부가 그들 교과서를 다시 개정해 ‘정상화’시켰다.

    역사 교과서 논쟁은 학교 교육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사회 정의와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파의 역사는 힌두교 우월주의를 넘어 무슬림이나 기독교와 같은 다른 종교공동체를 부인하였다.

    그들은 인도인을 오로지 힌두로만 간주했고, 무슬림이나 기독교인은 인도를 침략한 침략자의 자손들이므로 민족의 이름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당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히 다원 사회를 부인하고 신성 국가를 주창하면서 종교 공동체 간의 사회 갈등을 야기 시키게 되어 있다.

    그런데 민족의용단이나 의용단일가와 같은 수구 세력은 전국적으로 매우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데다, 민족주의 역사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관으로 쓰인 비(非)학문적 역사 교과서는 전국에서 매우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었다.

    인도에서의 역사 교과서 논쟁은 우파 민족주의 정치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서 일으킨 정치적 사건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학계에서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 이후 일어난 역사 교과서 파동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얼핏 보면, 역사 교과서가 집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위치를 잡았다는 점에 인도의 경우가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수준과 정도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인도의 경우 그 논쟁이 학계에서 이루어졌으나 한국의 경우는 학문적 논쟁은 없고 오로지 권력의 강압에 의해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수준이 다르다.

    인도의 경우 나름대로의 역사관을 갖는 보수 세력의 문제라면 한국의 경우는 역사관의 논쟁이 아닌 학문 외적의 강압 폭력 문제로 봐야 한다. 인도에서의 역사 교과서 논쟁은 중요한 기준이 있다. 좌파는 역사를 사회과학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우파는 역사를 신화와 동일한 것 즉 문학의 일부로 보고 있다.

    이는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 등의 역사학에서부터 근대 역사학을 거쳐 포스트모던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영원한 논쟁거리다. 인도에서의 역사 교과서 논쟁이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특히 신화와 역사 혹은 민족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파 민족주의 세력은 과학적 역사관에 의해 그 동안 부정되어 온 힌두 신화에 나오는 라마(Rama)나 끄리슈나(Krishna)와 같은 신의 행적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의 이야기가 역사에 편입되면 인도는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문명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들은 세계 최고인 인도 고대 문명이 무슬림, 기독교도 등과 같은 이민족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반목과 갈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도 역사 교과서의 문제는 한국의 ‘교학사’ 문제와 직결되고 ‘일베’ 문제와 넓게 연결된다. 우선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를 먼저 보자. 두 나라 경우 모두 역사학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의 문제다.

    그런데 인도의 경우는 고대사와 신화 그리고 종교 등 역사학계에서 사소하지만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가 해당 분야 전문가의 말과 글을 통해 제기되었다는 사실과 그 논쟁이 비록 정치 집단에 의해 부추겨지고 악용되었다 할지라도 학문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에는 학문적 논쟁의 성격이 전혀 없고, 해당 분야의 전문 역사학자 또한 전혀 연루되지 않았으며 권력이 노린 것은 오로지 친일 행위와 독재 정권에 대한 미화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는 인도에서와 같이 최소한의 전문성도 없고 그래서 권력적 방식 이외에 자발적으로 교과서를 집필하고 채택하는 조직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일베’와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필요가 하나 있다.

    ‘일베’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합리적 의미 부여라는 데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나 그들이 하는 사회적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그들이 보수 수구 난동 세력의 뒷받침을 받는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현재까지 들어난 사실만 놓고 볼 때 국정원 세력은 ‘일베’에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고 그 영향력은 매우 효율적으로 확대재생산 되었다. 인도에서 민족의용단과 의용단일가가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소외당하고, 지식과 정보의 면에서 배제되어 있는 특정 소수 집단을 부추겨 그들의 행동 대원으로 조직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특히 이명박-박근혜의 수구 세력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베’와 종편 차원에서 하나의 틀로 묶어 수구 난동 이데올로기로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면 ‘일베’ 키우기는 한국판 수구 난동 전위대를 양성하는 일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치밀하고, 끈질기다. 그들이 차마 라는 말을 쓰며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그런 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역사 교과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역사 교과서에서 나온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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