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가득한
연대와 나눔의 광화문 저잣거리
9월 2일 씨앤앰 태광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 응원 한마당
    2014년 09월 01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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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광화문에 특이한 장이 선다. 1천만 인구가 빼곡하게 모여 사는 삭막한 수도 서울의 4대문 안 도심 대로변이 장터로 탈바꿈한다.

영어 이름이 즐비한 글로벌한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거리에서 모처럼 사람 내음 나는 풍경이 펼쳐진다. 대형 조형물 ‘해머링맨’이 오늘도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부터 길을 따라 동화면세점까지 각양각색의 노점이 판을 벌인다.

불볕더위 여름이 물러가고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건물을 감싸는 도로변에서 책 구경도 할 수 있고 차를 마시면서 사진 전시회와 다채로운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무료노동법률 상담도 받고 간단한 건강 진단은 물론 무료진맥도 받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전도 부치고 막걸리도 한잔 걸치면서 팥빙수와 커피, 음료 등 여러 종류의 먹거리들도 사먹을 수 있다고 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중세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 부산했던 시전처럼 왁자지껄한 저잣거리가 부활되는 셈이다. 마침 한가위를 맞아 긴 세월을 건너뛴 시간 여행처럼 조선 사람의 핏톨 속에 아직 남아 있을 공동체 문화와 인심을 넉넉하게 느낄 수 있는 장터가 열린다니 슬쩍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장사를 해 남는 수익금은 한 푼도 갖지 않고 기부한다고 한다. 제논에 물대기식으로 돈벌이만 되면 다 용납되는 천박한 자본의 논리가 일상에 가감 없이 스며있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기면 그만이고 ‘부자 되세요’가 덕담으로 유명 광고에까지 천연덕스럽게 출몰하는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살벌한 무한 경쟁이 뼛속 깊이 스며있는 비정한 도시에 사람의 온기를 더하는 이 행사가 바로 ‘광화문 저잣거리’다.

옆을 돌아볼 새 없이 채찍질 맞으며 직선주로를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치달려온 서울 시민들에게 잠시 곁을 돌아볼 짬을 내라 부추기는 이 장터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수익금을 한 푼도 갖지 않고 기부하는 이상한 저잣거리

씨앤앰-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광화문 저잣거리’. 장기파업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노동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힘을 보태줄까 고심하던 이들이 불쑥 낸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노조를 아예 죽이겠다고 작심하고 대화를 거부한 채 강경한 버티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투기자본과 노조탄압 악질기업의 횡포를 보다 못한 노동사회 시민단체들이 함께 힘 모아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끝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려 소통하고 교감하며 재미있게 즐기면서 서로 힘 북돋아줄 수 있는 광장. 우리 모두에게, 특히 정당하지만 힘든 투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연대한마당. 뭘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함께 끼어들 수 있는 그런 곳. 저잣거리가 ‘딱’이었다.

사실 대다수의 서울시민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만 쳐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바로 자신의 일터 인근에서 이름 모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을 버려둔 채 두 달 가까이 찬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이유를 잘 모른다면 그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일까.

사회적 약자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석 달째 준법적 수준의 소박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장기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눈 한번 맞추지 못하고 손 한번 잡지 못했다면 얼마나 무심한 야만일까.

광화문 저잣거리

세월호 유족의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요구를 나 몰라라 하며 만나지도 않는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정작 우리 곁의 이웃의 고통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중립을 취할 수는 없다며 세월호 참사 유족 뿐 아니라 용산, 쌍용차, 강정, 밀양의 투쟁하는 당사자들을 선뜻 만난 프란치스코 교종과 불통의 아이콘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삶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불화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장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서울시민들을 보면서 이 익명의 사람들은 누구와 닮았을까 자문해본다.

따지고 보면 내 가족이나 이웃 중 누군가에게 언제든 다가오기 십상인 일상의 문제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그저 남 일처럼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려진 비극이 아닐까.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그런 우리의 일상 속에 이미 잠복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고통 외면하는 우리는 박근혜와 다른가?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교훈이었다. 아무리 자본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라도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돈벌이보다 경시하면 결국 대재앙을 우리 스스로 키우는 꼴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루에 평균 다섯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안전 불감증과 생명 경시는 더 이상 용납되기 힘든 임계점을 넘어섰다. 산재 사망사고 피해자의 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위험한 작업일수록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자본의 탐욕 때문에 위험을 외주화해 사람의 목숨이 매일 경각으로 내몰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악질적인 형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파견, 용역, 도급, 사내하청, 소사장, 특수고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의 현대판 노예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제도다.

삼성, 현대 같은 대재벌에서부터 안산 시화공단 영세업체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쳐 불법, 탈법, 편법의 온상이 돼온 일자리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패가망신하거나 길거리로 나앉기 십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죽하면 투쟁으로 나섰겠는가. 더 이상은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감당하기 힘들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구와 바람으로 합법적 방법인 노조 결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리고 있을 뿐이다.

불법, 탈법, 편법의 온상 간접고용 비정규직

수도권 1위 케이블방송 업체인 씨앤앰과 태광티브로드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직접고용 돼 정규직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일해야 마땅한 상시 지속 업무에 종사해온 노동자들이 외주하청업체로 내쫓겨 온갖 차별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왔다.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근로기준법 위반을 밥 먹듯 하는 열악한 근로조건, 한 달에 이틀 쉬기도 쉽지 않은 장시간 근로에 작업하다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어도 산재 적용조차 되지 않는 기막힌 현실에 이르기까지, 결혼을 꿈꾸기도 어려운 일터에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핵심 업무인 설치와 AS, 철거 업무를 묵묵히 해오며 이윤 창출의 원천이 돼왔다.

견디다 못해 작년에 씨앤앰과 태광티브로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힘찬 단결투쟁으로 원청 사용주를 압박해 의미 있는 근로조건 개선과 노조활동 보장 성과를 쟁취했다. 올해는 같은 일을 해온 통신사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기사들이 함께 합세해 노조를 결성했다.

이런 마당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 충분한 능력이 있으면서도 불법적인 간접고용 하도급 구조를 통해 갈취해온 이윤이 아까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짓밟겠다니 적반하장도 정말 유분수다.

공정하게 대우해야 할 노동자들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아온 씨앤앰의 대주주인 투기자본 MBK 파트너스와 맥쿼리, 그리고 악질 노조탄압 기업으로 악명 높은 태광티브로드의 행태가 기막히다. 1백여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폐업을 통해 부당해고하고 선별적 직장폐쇄로 합법파업을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케이블방송 씨앤앰과 티브로드의 원청사용주들은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

일주일 후면 한가위다. 가장 큰 명절이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지 않았나. 가족친지를 만나고 조상을 찾아뵙고 사라져가고 있는 공동체 문화의 소중함도 되새기는 추석에 노숙농성으로 고향을 바라만 보게 될 수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광화문에서 수백 명이 농성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씨앤앰-티브로드 설치 AS 철거 기사들이다. 이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전하자. 9월 2일 정오부터 저녁 7시까지 펼쳐지는 광화문 저잣거리에서 떡메를 치는 노동자들도 만나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 거리로 가득한 그곳에서 연대하자.

자신들의 집에 있는 좋은 물건 중에서 쓰지 않는 것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건 어떨까? 종이 한 장에 물건에 대해 쓰고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 이 금액을 투쟁기금으로 전달하자는 것이다. ‘쓰지는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이 힘겹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추석 송편처럼 작은 기쁨을 줄 수 있다.

반갑게 인사 나누며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본때 있게 보여주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온몸으로 절규하면서 우리 모두를 깨우쳐 주었듯이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 아닌가.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광화문 저잣거리에서 우리 모두 이윤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자.

필자소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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