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절한' 생채기 남기는 만화
    [책소개] 『엄마 냄새 참 좋다』(유승하/ 창비)
        2014년 08월 30일 02: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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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유승하의 첫 작품집이 출간됐다. 1994년 데뷔해 20년간 만화가로 활동하며 <십시일反> <사이시옷> <내가 살던 용산> <섬과 섬을 잇다>등에 참여해온 유승하는 여성 문제, 소수자 문제, 인권 문제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과 만화적 상상력을 접목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 책에 실린 만화들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회문제와 시대를 종횡하면서 적대적인 사회에서 생존하려 애쓰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용산 철거민, 비혼모, 장애인 인권운동가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한편 나혜석, 허난설헌, 강주룡 같은 시대를 앞서나간 역사 속 여성을 통해 당시와 지금의 여성 문제를 비교하기도 한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여성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각에서 본 사회 문제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엄마 냄새 참 좋다>는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소수자 간의 연대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엄마냄새

    1부 여자라서 행복하니?

    1부에서는 장애인 인권운동가 최옥란씨의 실화를 각색한 <새봄나비>와 고등학생 비혼모를 다룬 <축복>, 그리고 <한겨레21>에 실렸던 한컷 만화들을 골라 실었다.

    12년 전 장애인 인권보장 운동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뇌성마비 장애인 최옥란씨의 가슴 저린 실화를 다룬 <새봄나비>는 따스하면서도 서글픈 색감으로 장애인의 위태로운 생존권을 고발하고, 장애인의 양육권 행사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장애등급제 철폐 농성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다.

    하룻밤의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된 고등학생의 수기를 각색한 <축복>은 비혼모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파하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이 비혼모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점을 잔잔하지만 큰 울림으로 전한다.

    <앞치마 뒷이야기>를 비롯한 한컷 만화들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만화가, 활동가로 사는 일의 고됨과 보람을 솔직하고도 유쾌하게 표현해 공감을 자아낸다.

    2부 여기 이곳에서

    2부에서는 용산과 수원 신계동, 두곳의 철거민 이야기를 다룬다. 현장에서 직접 연대하고 발로 뛰며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결실이다.

    <도둑맞은 고향>은 자신의 지역도 아닌 용산에서 투쟁하다 용산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한대성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역만 다를 뿐 그가 사는 수원 신동 역시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다.

    <지 편한 세상>은 3년간 용산 신계동을 떠나지 않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 철거민 강정희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겹게 더불어 살아가던 동네의 황폐해진 풍경과 철거 용역들의 폭력을 차분한 색채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집이 없다는 것이, 그것도 자식 딸린 엄마에게 집이 없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3부 그때나 지금이나

    3부에서는 강주룡, 허난설헌, 나혜석 등 역사 속에서 당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생각을 올곧게 지켜나간 인물들을 들여다본다.

    <1931 고무공장 큰아기>에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사뭇 익살스러운 필치로 그린다. 강주룡은 평양의 한 고무신 공장 노동자로 어느날 갑자기 발표된 임금 삭감에 항의하며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던 인물이다.

    <신인선과 허초희>에서는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들며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삶을 체험하게 해준다. 작가는 유교 사회에서 재능 있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대비시킨다.

    <혼자 걷는 내일>에서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일대기를 그린다. 불꽃같은 신여성으로만 알려졌던 나혜석도 세아이를 가진 엄마였다. 시대를 앞서나간 사상과 모성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혜석의 모습과 재능과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가까운 이들과 자식들에게서 외면당한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며, 나혜석을 좌절하게 했던 장벽들이 지금의 한국에도 존재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친절한’ 생채기를 남기는 만화!

    여성단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작가의 작품 한가운데에는 항상 여성이 있다. OECD 국가 중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가장 짧고 남녀의 임금 격차는 가장 높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남자처럼’ 일하면서도 동시에 ‘여자처럼’ 가정을 돌보기를 요구받는 세태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유승하의 작품세계를 단순히 ‘여성만화’라고 정리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여자’라는 정해진 틀에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온 마음으로 공감하면서 귀 기울여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그들을 여성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거민, 비혼모, 장애인, 일하는 엄마, 전업주부 엄마 등 각자의 사연을 지닌 개인임을 보여준다. 당대의 사회문제를 직시하며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일종의 르뽀라고도 할 수 있다.

    <엄마 냄새 참 좋다>는 ‘요즘 만화’처럼 세련되지 않다. 오히려 투박하거나 전통적이라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낯설 수도 있는 그림은 들여다볼수록 울림이 배가되고 커진다.

    만화평론가 백정숙은 “유승하의 만화는 두고두고 생각나는 ‘친절한’ 생채기를 낸다”고 평한다. 만화가 준다고 으레 생각하는 극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게 아니고 읽는 이의 마음에 두고두고 되돌아볼 응어리를 남긴다는 말이다. 생존의 현장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는 연대의 메시지를, 상처입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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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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