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비싼 가격이 신뢰 낳는다?
    [강남의 속살-1]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
        2012년 07월 02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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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 거대 자본의 대표는 아마도 삼성이고 현대자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속살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고, 그 논리와 셈법과 멘탈이 포장 없이 맨살로 드러나는 곳은 아마도 강남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강남의 논리와 셈법은 강남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곳에서도 더 강한 색깔과 강도로. 레디앙은 한국 자본주의적 삶의 원형질을 찾아 강남의 속살이라는 이름으로 연재 글을 시작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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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로데오 거리 건너편, 신사동 가로수 길 끝에 자리한 A 요가원. 그곳은 내겐 사탕 공장 같은 곳이었다. 다 커서도 사탕 쫓는 아이처럼 오감의 유혹에 팔랑거리는 나 같은 인간들이 낚이는 줄도 모르고 낚인 곳. A 요가원이 내게 던진 미끼는 어쩌면 언제나 사람들을 낚는 데 가장 애용되는 것들(그만큼 강력한 유혹의 수단)이다.

    미끼 1-‘외’모의 유혹

    사람만 외모가 있는 게 아니다. 물건도, 건물도, 심지어 글씨에도 ‘외모’가 있다. 보통의 어설프게 명상 느낌을 주려는 촌스러운 요가원 간판의 글씨체를 나는 무지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면접을 보러 간 압구정 A요가원의 간판을 보자마자 나는 아주 흡족해했었다. 멋스러운 손 글씨체, 그것도 외국 단어로 조합된 A요가원의 간판을 보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조인성의 얼굴을 볼 때처럼 한동안 숨죽인 채 멈춰 있었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야경

    실내에 들어서자, A요가원의 유혹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내 신발을 정리해주며 자기를 이 요가원의 공동 투자자이자 부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엥? 이렇게 젊은 사람이? 옷차림새나 행동이 너무 겉멋 든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굳이 그를 좋게 보려고 애썼다.

    이미 내 발에 기분 좋은 감촉을 주는 새하얀 실내용 실크 슬리퍼가 신겨져 있었고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느낌의 유사 대리석인 에폭시 재질의 실내 바닥에 내 감성은 이미 넋이 나간 후였다.

    로비로 들어서자 프렌치 윈도우를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압구정에서 제일 크다는 교회, 광림 교회의 앞마당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마침 비가 오고 있었고 실내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에디 히긴스의 재즈 연주였고 모든 게 여유로운 외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곳은 바로 해변이 아니어도 선글래스를 쓰는 게 어색하지 않은 동네, 외제차를 끌고 다녀도 긁힐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동네, 압구정이었다.

    한 쪽 벽을 차지한 채 요염하게 드러누운 소파에 기대 앉으며 맞은편에 걸린 제목 미정의 추상화를 보며 나는 점점 마음을 굳혔다. ‘여기가 내가 일하고 싶었던 바로 그런 요가원이야!!’라고. 이유는? ‘있어 보이는 모든 것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강남은 그런 곳이었다. 있어 보이는 모든 것이 있는 곳!

    일주일 뒤, 합격 통보를 받고 A에 출근해보니 부사장이라고 알았던 그는 그냥 나와 같은 PT 강사였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투자자는 따로 있었는데 그 날 소개 받은 A요가원의 원장, L이라는 여자였다. L과 강사 Y는 나에게 외모적인 칭찬을 해 주기 시작했다. ‘내 외모가 칭찬 받을 만한 외모던가?’ 의심하고 있는 내게 아닌 게 아니라, 요구가 시작되었다.

    L은 내게 가능하다면 풀 메이크업을 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왔고, Y는 바로 그 날 나를 백화점에 데려가 자기 카드로 트레이닝복을 사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 계속 되었다. 둘은 ‘여기서 일하려면 포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모가 능력의 일부’임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은 경력 없는 나를 뽑을 까 망설였으나 인상이 좋아서 뽑은 거라며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외모’에 혹해 들어온 A요가원에 어울리도록, 고객들을 혹하게 할 수 있는 ‘요가 강사다운 외모’를 가꾸는 일이었다. 나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지만 A요가원에서는 무척이나 예쁜 ‘척’을 해야 했다.

    Y는 우리 요가원 홍보를 위해 내가 요가를 하는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인생에서 해 본 적이 없던 어색한 연기(예쁜 척, 우아한 척하는)를 배웠다.

    L은 내 캐주얼한 옷차림, 장신구 하나 없는 모습에 거기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항상 생얼이란 것 등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는 사실은 귀찮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화장 안 하는 이유로 핑계를 댔다. ‘화장품 살 돈이 없다고’(어느 정도는 사실인). L은 우리 요가원의 매출 증대를 위해?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가인 화장품들을 선물해주었다. 그 날부터 선크림은 발랐지만 여전히 나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면 거기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패션도 바뀌어야 할 텐데, 패션을 바꾸면 머리도 관리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것에 어울리는 신발, 가방, 장신구 등등 줄을 지어 쇼핑을 해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압구정에서 일하는 요가강사인 것은 맞았지만 내 집은 비강남, 허름한 월세 방이었고 내 식사나 내 옷 등 내 생활수준은 강남의 물가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화장품을 사려면 한 달 기다렸다가 하나 씩 사야했고 L이 매고 다니는 가방이나 신발을 사려면 몇 달을 기다려도 어려웠다. 내게 ‘비싼 옷, 화장품으로 꾸민다’는 것은 한 푼 없이 집을 나온 고등학생이 비싼 술(와인이나 양주)을 파는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처럼 어설프고 안쓰러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결국 나도 그 때부터였다. 선크림을 바르고 립 밤을 바르는 나만의 ‘화장술’을 시작한 게.

    미끼 2- 비싸서 비싼 것의 유혹.

    압구정, 가로수 길, 청담동 곳곳에 숨어있는 근사한 인테리어의 스테이크 집, 인도 요리 식당, 와인 바… 내가 결코 갈 생각도, 갈 능력도 없던 이곳들에 아주 가끔씩 L원장의 ‘은혜’로 출입해 본 적이 있다.

    처음으로 어느 레스토랑에 갔을 때였다. 나는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식사 단품을 고르고 있었는데 최소 가격이 6만 5천 원 선이었다. 우리 네 명의 식사를 합치고 거기에 우리가 나중에 시킨 와인과 샐러드의 가격을 합치면 내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값이었다. L이 계산을 하는 동안 피지도 않는 담배를 피워 물고 싶었던 건 속으로 ‘이 돈을 차라리 그냥 나한테 주지!’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날 먹은 그 조금 매콤한 치킨일 뿐인 그 식사는 왜 그런 가격인지, 부자였던 적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저 ‘황당’할 뿐. 조금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 날 먹은 그 요리의 가치가 정말 그 정도 해야 할까, 싶은.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냥 그 가격 자체에 도취되어서 소비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두 번 째 경험은 A요가원에서 L이 주문한 요가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였다. L은 내가 기획한 새로운 요가 프로그램들을 보더니 다 좋은데 ‘이름’을 잘 짓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좀 생소한 외국어(인도 말이나, 영어, 프랑스어 등을 활용하라!는 L의 주문)를 사용해서 요가 프로그램 이름을 지어보라고. 결국 나는 지금 들으면 귀가 간지러울 요상한 이름의 요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그 중에는 어느 외국 여배우의 이름을 딴 요가도 있었고 가보지도 않은 인도의 어느 도시의 이름을 딴 요가 명상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낯 뜨거운 이름들을 보며 스스로 ‘참 있어 보이는 군!’이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L은 그 듣보 이름의 프로그램들에 크게 만족해하며 이제는 ‘가격’을 문제 삼았다. 요가 강의 경력이 전무한 내가 강의료를 더 올리는 건 분명 합당하지 않았는데도 L은 강력히 주장했다.(Y도 옆에서 거들었다) ‘비싸야 뭐가 있는 줄 알고 더 오는 거’라고.

    나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가격을 터무니 없이 올려보았다. L은 ‘틀렸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의 두 배를 불렀다. 원장은 내 경력과 프로그램의 짜임새를 고려한다면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적었다. “이 정도는 되야 사람들이 신뢰하지, 선생님.” 신뢰에서 가격이 오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가격에서 신뢰가 온다는 논리! 나는 그렇게 얼씨구! 악마와 손을 잡았다.

    신기하게도 몇몇 사람들이 내가 농담처럼 만든 이 조잡한 요가 프로그램을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듣겠다고 했다. 헐!? 속으로 나는 ‘왜? 당신들 제정신인가요?’ 싶었지만 이미 일종의 사기에 재미가 들린 나는 그것도 내 능력의 일부가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 인도식 요리도 분명, 뻥튀기한 가격이 틀림없다고, 내가 본 가로수길 비싼 옷들 역시, 다 뻥튀기일 거라고 그렇게 불신의 죄를 강남 사방에 뒤집어 씌워가며…

    엉망진창이었던 내 첫 강의의 희생양들은 ‘가격’을 언급하며 요즘에는 너무 ‘강의들이 다 저렴하고 그래서 서비스도 고만고만하다’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우리 A요가원만의 ‘개인을 위한 맞춤의, 고가의 요가’가 특별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샬라샬라 하는 듣보 외국어 이름의 요가 프로그램, 거기에 인도식 이름을 가진 사뭇 경건한 표정의 사이비 요가 강사인 나라는 인간, 거기에 무엇보다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이게 어떤 강남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켜준다는 걸, 수 십 명에 이르는 나의 수강생들이 증명해주었다.

    유혹의 결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지나던 신사동 가로수 길에는 연일 늘씬하고 핸섬한 남녀 모델들이 화보 촬영을 하고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에 나도 저들과 같은 세계에 있다는 착각을 했던 걸까. 나는 모델이 아닌 내 몸에 모델들이 입었던 신상을 입혔다.

    하지만 내 현실은 모델들이 밟고 선 콘크리트 바닥처럼 메마르고 딱딱했다. A요가원이 어느 정도 잘 굴러가는 동안에도 내 월급이 오르는 속도는 거의 정지 상태였고 L의 가방과 신발이 검은 색의 샤넬에서 회색 샤넬로 바뀌는 동안에도 나는 압구정 거리를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트레이닝 복 하나도 마음껏 사서는 안 될 형편이었다. 월세를 내고 나서 남는 많지 않은 용돈으로는 생활비를 간신히 감당할 수준이었는데 나는 돈을 쓰는 우선 순위를 옷이나 술 같은 비 필수품으로 정했다.

    어느 날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 요가원의 한 직원이 나를 겨냥한 듯,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서울 사람들이 지방출신과 다르게 미묘하게 냉정한 것을 느낀다’고. 나는 그의 말을 고쳐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강남을 겨냥해서?) ‘강남은 다른 서울 지역과 다르게 대놓고 냉정하다’고.

    스타 벅스 커피 값이 오히려 싸게 느껴질 정도의 압구정 카페들은 보이기로는 푹신한 소파가 있는 편한 곳이지만 나 같은 비정규직 요가 강사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은 곳이었고 또 가끔씩 맘에 들어서 핀에 꽂힌 라벨을 들춰 볼 때면 내 월급을 위협하는 가격이 써있곤 했던 말 도 안 되는 가격의 옷들이 걸려 진 압구정의 옷 가게들 역시 보이는 대로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내겐 배 아픈 곳이었다.

    L원장은 나를 데리고 압구정 나들이를 다닐 때면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자기가 얼마나 돈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증명해보였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새로운 음식과 차를 먹고 마셔보고… ‘가격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영화 <<보바리 부인>>에서 보바리 부인은 뢰르라는 상인에게서 근사한 옷, 장신구를 사느라 돈을 탕진하게 된다. 보바리 부인은 분명 마을에서 이름 난 의사 남편을 둔 덕에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상류층으로 살았지만 늘어나는 허영을 감당 못해 파산하고 만다.

    내 눈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색과 형의 환상적인 공간이었던 가로수 길은 꼭 보바리 부인에게 뢰르 상인의 새 물건들이 그랬듯 위험하고 아쉬웠다. 그리고 드디어, 밀린 공과금을 보며 한숨짓고 출근한 어느 날, L원장의 이름 앞으로 밀린 A요가원의 몇 달 치 공과금 독촉장을 발견했다. 머릿속이 아득했다. L원장은 부자가 아니었나? 도대체 왜??

    그로부터 몇 달 뒤, 내가 A 요가원을 그만 둘 때쯤 안 사실인데 L원장은 자기가 가진 재산만큼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웃기는 건 강남에서 L같이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 L은 빚을 내서라도 샤넬 신상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번드르르 하지만 알고 보면 빚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 알고 보니 그렇게 잘난 척 하던 Y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새로 뽑았다고 그렇게 자랑하던 새 차의 할부 값에 허덕이면서 우리한테 비싼 술을 사주던 Y. 처자식 있는 Y는 수중에 돈이 생기면 아기 분유 값 생각보다 먼저 자기 PT할 때 입을 트레이닝복이나 운동화를 사려고 한다.

    정말 필요한 곳, 기본적인 곳 보다는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돈을 쓰는(빚을 내서라도) 사람들. 결국 A 요가원은 몇 개월이 지나자 전기나 수도가 끊길 지도 모를 웃지 못 할 위기 상황에 몰렸고 L의 ‘재정상황’은 바닥을 쳤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요가원의 다른 직원이 얘기해 준 것에 따르면 언젠가 L에게 빚을 받으러 온 빚쟁이가 숍의 진열대에 있던 L이 아끼던 ‘수입’ 장식품들을 가차 없이 깨트리고, 거기서 나아가 어쩔 줄 모르는 L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빠졌다고.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쿡’ 얘기를 하던 L의 모습과, 그녀의 샤넬 가방들과, 또 머리채가 잡힌 채 비명을 질렀을 L의 모습이 크로스오버 되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저 가로수 길 불빛 아른거리는 압구정 숍들 앞을 지나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과 또 그들 속에 떠돌이 비둘기처럼 쇼윈도를 흘깃 거리고 있는 내 모습도.

    필자소개
    현재 요가 강사이며, '자칭 소설가,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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