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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동프로젝트-4] 근자씨 4호로부터
        2014년 08월 29일 05: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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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회 ‘근자씨 3호로부터’ 링크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 과거도 착취당한다> 중

    4호는 7년차 활동가입니다. 긴 연차 수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성찰을 잃지 않은 그의 활동과 조직 이야기는 듣는 이로선 충격을 넘어 허탈함과 피로감마저 몰려오게 합니다. 허나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라던 알랜스키의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우리의 바람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위해서는 직시하는 것이 필수적인 만큼, 바로 앉아 4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려 합니다.

    단체를 그만둔 걸로 아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문제가 있었어요. 그러면 조직이 대응을 해주거나 활동가를 보호해 줘야 되잖아요. 기본적인 조직의 보호. 그걸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활동가가 상처를 받으면 그건 내 상처인 거에요. 문제제기 한 적이 있어요.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해결 해 달라, 동의할 수 없다 얘기했는데도 덮어두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조직은 활동가를 커버해주려고 노력을 한다는 뉘앙스를 말로는 풍기는 데 실제로 한 번도 지켜 준 적이 없어요. 조직이 저나 다른 활동가들을 커버해 줄 의지가 있었으면 안 그만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활동가 보호가 전혀 안돼요. 내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일들은 최대한 덮으려고 하죠.

    조직이 활동가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정말 힘들겠어요.

    소진이 많이 되죠. 전체 집회도 나가야 되고 내가 하는 집회도 조직해야 되고 쉴 수가 없어요. 그러고 나서 평가할 때 너 이거밖에 못했냐고 쪼아요.

    어떤 전문가 분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격하게 공감했는데, 너희가 뭔데 니들 운동을 평가 하냐. 1년 해보고 수치, 성과가 이거밖에 안 나왔다고 해서 너희 마음대로 자르면 되냐. 평가할 생각 말고 보완할 생각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어쨌든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신랄하게 해요. 물어뜯어요. 잘했다 칭찬하는 게 아니라 못한 점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근데 활동가들도 자기 일만 알아요. 본인 일만 정확하게 알고 다른 사람한테 공유도 안하고 공유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안 하고 기억도 못하고. 그러다 평가 때 까기만 하는 거예요. 연초 계획서에 이거 하기로 돼 있는데 왜 안 한 거예요? 라면서.

    근1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도 점차 줄고 있어요. 자기 일 하기도 급급하고 여유도 없고 내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도와주고 교육해줘. 그래도 활동가 교육이 항상 있었는데 다들 바쁘다고 안 오고, 실제로 시간 맞추기도 애매하고. 결국 교육 준비한 활동가만 소진돼서 많이 줄었어요. 자기 분야 아니면 관심 가질 시간도 없는 거죠.

    어쨌든 사회적인 문제나 큰 사안에 대해서도 자기 일 하느라고 결합 하질 못하는 거예요. 단체에서 오늘 많이 나가야 되니까 다 나가자 이러면 나가지, 자발적으로 나가는 게 없는 거예요. 내 일이 더 급하고 물리적으로 내 몸은 하나니까. 그리고 평가 때 다가오면 까일 거 스트레스 살살 오고. 그게 진짜 무서워요. 난 일 한 건 정말 많은데, 기록이나 수치로 보여줄게 없는 거예요. 결국 그것 때문에 까이고 스트레스 받고 쟤는 무능력하다고 평가받고.

    일의 양을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줄여야죠. 초기에 설정을 안 하면 되요. 내 역할이 100퍼센트이면 매년 그래왔듯이 현안은 치고 들어올 것이니 50프로만 계획을 짜자.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왜요?) 몰라요. 다들 뭔가 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있나 봐요.

    활동하면서 좋았던 점은?

    사람들이 좋았죠. 친했던 활동가들. 그리고 현장에 많이 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보기 힘든 것들 보고, 거기서 열심히 활동 할 수 있고. 활동하는 거에 스트레스는 절대 없었는데 사무실에만 들어오면 조직이 스트레스인거에요.

    특히 ‘청년’활동가라서 힘들었던 점이나 갈등이 있다면?

    임금 문제가 항상 청년 활동가에게 낙인이 찍히죠. 청년 활동가들은 직업으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 생업으로 보장되길 바라는데, 선배 활동가들은 이정도면 많이 주는 거 아니냐. 청년 활동가들은 혼자 생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정도면 우리 때에 비해 많이 받는 거라면서 깎아 내리는 거예요. 활동간데 돈을 받고, 그것도 올려달라고 하다니 참 열정이 없는 아이구나. 요새 활동가들은 돈 보고 일한다. 임금 적다고 말 한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아니 그 때는 명예라도 있었지 보람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이 야 너 좋은 일 하니까 밥 사줄게 이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닌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선배들이 토론회나 회의에 나가서 돈을 챙길 때. 와 정말. 평 활동가들은 부침이 있어 뭐가 있어요. 자기들은 다 가지면서 그런 식으로 이중적으로 얘길 하는 거예요. 그럼 조직에 기부를 하던가.

    조직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뭔가요?

    제가 가장 충격 받았던 게 당직 제도에요. 정말 쓸데없는 제도인데, 10시까지 당직을 서요. 회원님들이 언제 전화하실지 모른다고. 활동가의 의무래요. 토요일도 당직을 서요. 토요일은 9시에 무조건 출근해서 1시 정도까지 있어야 되요. 정말 쓸모가 없어요. 토요일은 돌아가면서 하는데 빠지면 벌금을 내요. 청년활동가들은 그거에 불만이 많아요. 찬성하는 활동가도 있긴 한데 문제는 당직제도 자체라기보다, 그 의미를 활동가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 지에 대한 조직의 감수성과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물음이에요.

    근2

    협의회에서 문제제기도 했어요. 당직이 무슨 필요가 있나, 우리가 당직을 왜 서야 하나, 전화도 한 통 안 와서 너무 무의미하다 했더니 사무실이 노후해서 관리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사무실에 방범 장치가 없어서 방범을 겸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된데요. 하도 부딪히다 보니까 박근혜랑 싸우는 기분이에요 이게. 말을 하면 들어줄게 응응 하는데 변하는 건 없고. 그래도 되게 많이 조정한 게 1시간 줄어든 거예요.

    협의회 역할이 좀 궁금해요.

    협의회 역할에 대해서 정확히 말해주지 않고, 활동가들도 물어보지 않아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제가 아는 범위에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노조도 노조위원장으로 당연직으로 일하잖아요. 여기는 평활동가 회의가 몇 명에 의해 소집이 되면 열리는 거예요. 그리고 협의회장을 뽑아요. 근데 그 사람은 자기 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해결하는 게 아니고 사건이 터지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만 생각 하는 거죠. 제가 평활동가 회의에 들어갔던 게 1년에 한 번 해야 되는 총회 때 누구를 장으로 뽑을 것인가. 그리고 대부분이 하기 싫어해서 단일화를 하죠. 얘로 단일화 하자고.

    협의회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조직 내에 활동가를 위한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 피드백이 부정적이에요. 그런 걸 왜 해. 일 바빠 죽겠는데.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지지하려 하지 않아요. 저는 이런 게 궁금했어요. 조직이 과연 누구냐? 조직을 정의해 보자고 얘기를 하다가 결론 내린 게 ‘나 빼고 다 조직이다.’에요. 조직에 나를 끼워 넣지 않는 거예요. 많은 활동가들이 조직이 누군지 몰라요. 통상적으로 조직을 이야기 할 때 처장님과 결정을 내리는 집단, 부서장? 이런 게 조직이지. 스스로 난 조직의 일부야 라고 생각하는 평활동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야, 조직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어.’

    ‘누가? 난 안 내렸는데.’

    어쨌든 조직이 사람을 사람답게 취급 안 하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사람이 일하는 거잖아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일 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 안 해요. 이 일을 돌아가게 해야 되니까 너 야근해, 일 중심인 거죠. 이 사람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필요한데 그런 건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돈이 드니까. 노조문제도 생각 안하고.

    사람에게 투자 안 하는 게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사람이 중요해서 정치도 선거 할 때만 인사하고 다니는 거잖아요. 제가 있을 때 거의 절반을 갈았어요. 활동가 절반이 바뀐 거죠. 1~3년차 활동가는 있는데 4~5년차 거의 없고, 6~7년차 없어요. 바로 10년으로 뛰고 20년으로 뛰니까 중간이 없어요. 이런 고민을 했던 활동가들이 못 이기고 나가는 거예요.

    사람을 중요시하는 문화로 바뀌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다들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거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잖아요. 내가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데, 원인이 뭔지 생각 할 수 없는 패턴인 거 같아요. 어디서 읽은 건데 해외와 한국의 지하철 풍경이 다르다고 해요. 해외는 아침에 나와서 책을 읽거나 활기찬데 한국은 자고 있다고. 진짜 열심히 잔다고. 그런 문화가 없는 거죠. 쉬면 일단 누워있거나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지, 내가 무슨 고민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 성찰이라고도 많이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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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드는 고민이 있나요?

    시민사회 역할이 뭔지 모르겠어요. 시민 없는 시민사회에서 개선을 못한 것 같아요. 밀양에서 행정대집행 일어났잖아요. 충격 받았던 게 침탈 될 게 뻔한 상황에서 어떤 선배가 ‘(침탈되고) 2시간 만에 기자회견 했다’는 약간 자화자찬식의 발언을 했어요. 침탈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이나 운동한 사람들이, 뚫리면 끝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내려가지 않고 기자회견 하는 걸 보고 충격이었죠.

    한전 앞까지 행진을 하는 것 까진 좋다고 생각하는데 끝끝내 안 내려갔어요. 요새 기자회견 하면 활동가 20명 정도 모이잖아요. 기자 3명만 와도 성공한 거예요. 기자 없는 기자회견. 이들은 정말로 밀양을 걱정하는 걸까? 세월호 문제도 그래요. 시민사회가 이렇게 힘이 없고 입김이 약해졌나,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도 안 되는 거예요. 세월호 100일 행진 때도 누가 보면 반대하는 집단들(소위 보수계열에서 말하는 시위꾼)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런 와중에 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단체가 가라 그러면 가고 깃발 아래 있는 거에 만족하고. 씁쓸한 거죠.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맨날 벌어지는 사고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진 않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활동가들이. 활동가니까, 일이니까, 조직이 가라고 해서 간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고. 네거티브 전략에 의한 피로감 극심하다고 생각해요. 치열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스스로 감정이 소진되는 것이 많아요. 아무래도 쉼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어쨌든 같은 고민을 하는 활동가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활동가들이 당직 쓸모없다고 했는데 중견활동가들이 아니다 필요 있다, 노후한 사무실을 지켜야한다. 이러면 나만 이런 생각하나 싶은 거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랑 똑같은 거잖아요. 나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다. 이렇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되게 큰 의미가 있죠. 저도 아는 활동가들하고만 술 마시면서 이런 얘기 하는 거지, 직접적으로 선배들한테 얘기하진 못해요. 겁쟁이라. 얘기했다가 돌아오는 말에 상처받을까봐 얘기를 못하겠는 거예요. 같이 힘이 돼 주는 건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혼자서만 일하고 다른 활동가들과 교류가 전혀 없는 활동가들은 나만 이런 건지 착각하기 쉬울 것 같아요.

    근4

    우리가 모인다면, 무엇을 했으면 하나요?

    제일 좋은 건 마이크 하나 주고 욕이나 해라, 우리가 같이 욕해줄게 이런 거요. 비공개로 하고.(웃음) 깔 건 까야 돼요. 내부에서 까면 그런 얘기 나오죠. 그럼 왜 여기 있어, 나가면 되지 여기 왜 있니.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라고. 근데 절을 고칠 수도 있잖아요. 고칠 수도 있는 건데 마음에 안 들면 떠나라고.

    그리고 청년활동가들이 단체에 핵이 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죠. 언젠간 위로 올라갈 거예요. 잊지 않고 그 때 억울했고 분노했던 것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죠. 똑같이 되면 정말 최악인 거잖아요. 부당하다고 느꼈던 처우들을 우리가 범하고 있으면. 언젠가 그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우리 세대가 시민사회의 주축이 되었을 때를 일제 독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야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 하루 안 한다고 안 망하는데. 활동가들은 자기 없으면 망하는 줄 알아요. 여러분! 안 망합니다!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다. 벌써 8월도 절반이 흐르고 4호가 두려워했던 평가의 달도 다가오네요. 여러분들의 상반기 활동은 어땠나요. 평가도 중요하지만 함께 성찰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활동가와 짝을 이루는 성찰가라는 직업도 생기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해야 할 일 만큼이나 사람이 중시되는 조직상을 그려봅니다. 함께 그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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