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가 세습자본주의의 대안
    [사민저널] 이건희 일가 없는 삼성그룹을 상상하라!
        2014년 08월 28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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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민저널> 8월호는 ‘불평등’과 ‘세습자본주의’를 가지고 구성되었다. 사민저널 측의 양해를 얻어 사민저널의 특집기사들을 몇차례 레디앙에도 게재한다. 이번에는 삼성그룹과 재벌기업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라는 주제의 정승일 박사 글이다. 이 글 내용의 대부분은 2013년 12월에 발간된 책 <굿바이 근혜노믹스 –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북돋움 발간)의 제5장에 실린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더 상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그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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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인간이 된 이건희 – 삼성그룹의 운명은?

    우리나라 최대의 대기업그룹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의식을 잃은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한지 몇 달이 흘렀다. 앞으로 그가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설령 그렇게 될 경우에도 정상적인 의사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삼성그룹의 지배권(경영권) 상속 구도가 이건희 일가의 일정대로 완료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권에 공백이 나타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권에 공백이 나타난다는 것은 우려와 동시에 희망을 갖게 한다. 주주자본주의와 적대적 지배권 공격(적대적 M&A 공격)의 ‘유용성’을 말하는 진보적,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따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지배권, 더구나 한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기업그룹의 지배권을 “시장 논리에 따라 풀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상속세, 재벌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다

    현행 상속법에 따르면 상속 과세 대상이 30억 원이 넘어갈 경우 그 상속 재산의 50%를 상속세로 내야한다. 그런데 기업의 대주주에게 적용되는 지배권(경영권) 주식 상속의 경우, 프리미엄 할증 과세까지 적용되어 지배권(경영권) 프리미엄 가치인 20~30% 할증율까지 부가된다. 따라서 지배권 상속 주식에 대한 상속증여 세율은 최대 65%에 달한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우, 10년 전에 이재용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겨우 16억의 상속세밖에 내지 않은 것이 큰 논란이 되었다. 이것은 명백하게 탈세 또는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이슈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이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국가를 농락한 이건희 회장 일가를 그 범죄에 맞게 구속시켜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재산 상속 문제는 주주자본주의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누구도 그들의 범죄 행위를 두둔할 수 없다.

    내가 그 동안 장하준 교수와 함께 쓴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말해온 재벌과의 타협이란 엄밀히 말해서 대기업그룹과의 타협이지 재벌 총수 일가와의 타협이 아니다.

    한국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 성장을 위하여 대기업그룹의 존재가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지, 대기업그룹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총수 일가가 대기업그룹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건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거대 기업그룹의 지배권 상속, 한국경제의 불안 요인

    그렇지만 재벌 일가의 상속 문제는 부유한 가문의 일반적인 재산 상속 문제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재산의 상속이 아니라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같이 한국경제와 5천만 국민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거대한 기업그룹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배권(경영권) 상속이고, 그렇게 때문에 국민경제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진보성’(진보적 자유주의)을 말하는 학자들은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권 상속 문제 역시 법치주의에 따라, 그리고 ‘시장 논리에 따라’ 해결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시장’이 무슨 시장인가? 기업의 지배권(주주권)에 관한 시장이고, 다름 아니라 주식시장과 M&A 시장이다. 주식시장과 M&A 시장의 논리에 따라 삼성그룹 같은 초대형 기업그룹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과연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이건희 회장이 예상보다 일찍 사망하여 이재용으로의 그룹 지배권 상속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그 공백을 틈타 예컨대 누군가 삼성전자의 지분을 은밀하게 매집하여 삼성전자의 이사회를 장악할 수도 있다. 그 경우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것이고, 그와 함께 삼성그룹 전체가 그룹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이른바 ‘재벌 해체’인 것이다. 진보 세력이 그토록 바라고 요구해온 ‘재벌 해체’이다.

    그런데 과연 그 재벌해체가 그토록 진보적인가? 그룹 해체, 재벌 해체 이후 대우그룹과 쌍용그룹, 한라그룹의 계열사들에 닥친 운명을 한번 회상해 보길 바란다.

    GM과 르노닛산 같은 서구 다국적 기업에 넘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쌍용차의 사례처럼, 기술 빼돌리기를 목적으로 하는 중국과 인도의 ‘먹튀’ 자본에 넘어간 경우도 많다. 게다가 딤채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 만도처럼 투기적인 사모펀드에 넘어간 경우도 수백 건이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같은 대기업집단들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글로벌 대불황 속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그나마 수익을 내온 상장기업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회사들이었다. 상장사 전체 순이익의 절반을 두 그룹이 차지한다. 기술개발과 R&D에서도 그 2개 그룹이 거의 40%를 차지한다. 두 그룹의 지배권이 자칫 투기꾼들에게 넘어갈 경우, 한국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도 힘들다.

    이렇듯 대기업 그룹의 지배구조가 총수 일가의 상속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동하여 5천만 국민의 생계에 불확실성과 위기를 낳을 수 있는데, 그것을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가 그냥 손 놓고 구경이나 하고 있어선 안된다. 재벌그룹의 상속은 결코 ‘시장 논리’, 즉 ‘자본의 논리’에 그냥 맡겨 놓아선 안된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경제민주화가 강화?

    지금도 재벌 총수 일가는 1~4%에 밖에 안되는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거대한 대기업그룹을 통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상속 과정에서 60%가 넘는 상속세를 내게 되면 그 지분이 더 작아진다.

    이론적으로, 총수 후손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 계열사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지 않는 한, 상속증여에 의한 가족 경영은 3세대가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창업자가 주식의 100% 지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65%의 지분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하고 35%만 가질 수 있는데, 다시 그 손자로의 상속과정에서 그 35%의 65%를 상속세로 납부할 경우, 그 손자가 갖는 지분은 10% 내외가 되기 때문이다. 증손자 세대에서는 한 자릿수로 격감해서 소액주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총수 일가의 대기업그룹 지배력이 약화되면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래야 민주적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 아닌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총수 일가의 지분이 줄어드는 것에 비례하여 소액주주들 즉 주식펀드와 개미투자자들의 지위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즉 재테크 주주자본주의의 위세가 그게 비례하여 커진다.

    게다가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권 상속 과정에서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그룹을 통째로 삼키려는 기업사냥이 촉발될 수도 있다. 실제 2003년에 일어난 소버린 펀드의 SK그룹 공격은 최종현 前회장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아들인 최태원 회장으로의 소유 지분 상속 과정이 급작스럽게 우왕좌왕 진행되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리브해의 조세회피지역에 소재한 투기적인 소버린 펀드의 SK그룹 공격 시 절감했듯이, 우량 재벌그룹의 해체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러한 사태는 국민경제에 큰 타격이다.

    이렇듯 재벌 가문의 편법적인 재산상속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바람이 자칫 국민경제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벌들의 탈법, 편법적인 경영권 상속을 방치해서도 안된다.

    독일, 기업의 지배권 상속을 특별히 취급하다, 왜?

    독일에서는 기업의 창업주가 지배권 주식을 자식에게 상속할 경우 세금 공제율이 85~100%에 달한다. 즉 경영권 주식이 후손에게 상속될 경우, 상속증여세를 거의 안내며, 중소·중견 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들에게도 똑같은 세금 공제 혜택을 준다. 왜냐하면 지배권 주식의 상속 과정이 잘못 진행될 경우,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종업원과 임원들, 협력회사, 고객, 회사가 위치한 지역공동체 등이 엄청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겨레 21》(2013년 4월 15일자)에는 그간 참여연대와 함께 재벌개혁에 앞장서온 곽정수 기자가 쓴 글이 있다.

    그는 “기업의 주식은 개인이 소유하지만, 기업 자체는 그 속에서 일하는 수많은 종업원, 그리고 기업과 거래하는 수많은 업체, 또 기업이 자신의 터전인 지역사회에 하는 다양한 기여 등을 고려하면 일종의 사회적 공기(公器)”이다라고 하면서, “기업이 없어지면 단순히 오너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에 큰 손실이 되기 때문에 장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곽정수 기자는 기업의 경영권 상속에 대해 상속세를 감면하는 독일의 사례를 지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의 존속과 발전이 소유 가족, 즉 사유재산권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삼성의 사례에 적용하자면, “삼성그룹의 존속과 발전이 이건희 일가의 재산 상속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인기업과 대기업그룹 등은 ‘사유재산’이기를 넘어 일종의 사회적 공기(公器)이며,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주주 상속 지분을 국가지주회사로 넘기자 – 30대 재벌 특별법 제정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이 가능할까? 먼저 국가 즉 민주공화국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방법이 있다. 국세청은 현물(주식)로 납부된 상속세(물납)를 증권시장에서 매각하여 현금화 하지 말고, 그것을 계속 보유하라는 것이다. 국세청이 직접 보유하는 것 보다는 국가지주회사를 하나 만들어 예컨대 삼성그룹 에버랜드이 지분을 그 국가지주회사로 이전시키자.

    이재용 같은 재벌 3세들이 부모의 자산(주로 계열사 주식)을 상속받으려면 그중 65%를 상속세로 내야한다. 이재용의 경우, 6조~7조원 정도를 납부해야 한다. 아무리 부자지만 이 정도 현금을 마련하기는 힘들다. 그 경우 이재용은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주식을 국세청에 물납 형태로 넘겨야할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이렇게 받은 주식을 시장에 팔아 현금으로 만든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주식을 은밀히 매집하여 새로운 대주주가 될 경우,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세청이 그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지 말고 정부에 넘기자는 것이다. 국가지주회사를 설립하여 그 주식을 소유·관리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면 된다.

    국가지주회사는 당연히 삼성그룹 핵심 지주회사(예컨대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가 되고 따라서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국가지주회사 측의 이사가 현 경영진(재벌3세)을 지지해주면, 일단 삼성그룹의 지배권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지주회사는 삼성그룹을 해체하기보다는 삼성의 그룹 체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면서,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있어 하청기업에 대한 착취와 노동조합 탄압 등을 저지하고, 장기 투자를 촉진하며 여러 가지 사회적 의무를 준수하도록 삼성그룹을 압박할 수도 있다.

    만약 이재용 등 3세가 무능함이 최종적으로 판명된다면, 그를 교체하는 쪽으로 대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대기업의 사외이사들은 총수 일가의 거수기 아니면 투자자(펀드 등)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대기업 이사회, 그리고 그룹 이사회에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회적 통제 장치를 투입하자는 것이다.

    진보정당들부터 앞장서서, 주식 시장과 M&A 시장, 해외다국적 기업에나 도움이 되는 ‘재벌해체’보다는 국가지주회사가 대기업그룹의 통치구조에 참여하는 새로운 재벌개혁 운동 노선으로 선회해야 한다.

    오스카 발렌베리

    발렌베리 그룹의 창업자인 오스카 발렌베리

    공익재단이 삼성그룹의 대주주가 되게 만들자

    만약 국가지주회사 형태의 점진적 국유화에 대한 우려가 아주 크고 그에 대한 국회 입법이 쉽지 않다면, 다른 차선책을 강구해볼 수도 있다. 즉 공익재단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공익재단은 국유재산도 아니고 사유재산도 아닌, 국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일종의 공유 경제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영역이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의 정신에 잘 부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다. 스웨덴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을 지배하는 1대 대주주는 발렌베리 가문이 아니라 공익재단인 발렌베리 재단이다. 창업자인 발렌베리 가문은 그룹 지주회사인 (주)Investor에서 1대 주주가 아니라 2대 대주주 역할은 하고 있다. 또한 지주회사인 (주)Investor의 이사회 의장(chair person)의 지위를 5대째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 대기업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 Investor의 1대 주주는 독립 공익재단인 발렌베리 재단이다. 그리고 발렌베리 재단은 공익재단으로서 (주)Investor가 지불하는 배당금 수익을 주된 재원으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지원, 사회공헌 등 다양한 공익적 임무를 수행한다.

    다시 말해서,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은 특정 가족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스웨덴 국민의 공동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사례는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독일의 보쉬(Robert Bosch)이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주식의 92% 소유)는 보쉬 가문이 아니라 공익재단인 Robert Bosch Foundation, 그리고 그 의결권을 100% 위임받은 ‘보쉬 산업신탁회사’이다. 즉 독일의 보쉬라고 하는 세계 최대 부품업체 역시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유재산이다.

    그리고 유럽 최대, 세계 2위의 자동차 회사인 독일의 폴크스바겐(VW) 그룹의 최대 주주는 역시 폴크스바겐 공익재단이다. 즉 이 회사 (정확하게는, 거대한 기업그룹) 역시 국유도 아니고 사유재산도 아닌, 공유재산이다.

    삼성그룹의 최대 대주주 역할을 이건희 일가가 아니라 공익재단으로 넘기자. 그리고 같은 공익재단이 삼성그룹 등 30대 재벌그룹의 2대 주주, 1대 주주가 되게 만들자. 지난 수십 년 간 국민들의 세금과 피땀으로 키워낸 30대 재벌그룹은 총수 일가 또는 주식투자자들의 사유재산이기에 앞서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해 봉사하는 공익적 기업그룹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공익재단을 총수 일가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삼성장학재단의 사례를 보더라도, 삼성그룹에 종속된 재단이지, 독립된 재단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예전에 총수 일가들이 공익재단을 악용하여 편법으로 그룹을 지배한 사례가 있다. 재단 이사회에 자신의 심복을 심어 계열사처럼 부려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의지가 있다면, 공익재단을 재벌 가문과 무관한 독립적 공익 기구로 만들 수 있다. 30대 재벌 특별법을 제정해서, 관련 공익재단의 이사회에 재벌 일가가 아니라 공익적, 진보적 인사들이 들어가도록 하면 된다. 그간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분들이 그런 공익재단에서 활동한다면 삼성 등 대기업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같은 편법 경영, 편법 상속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30대 재벌, 50대 재벌이 모두 그런 공익재단을 만들도록 유도할 경우, 그런 재벌계 공익재단들 전체를 감시하는 시민운동이 성장해야 한다. 미국에는 빌게이츠재단이나 카네기재단, 휴렉팩커드(HP)재단 같은 공익재단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시민운동 단체들이 있다. 이들이 공익재단들의 이사회 구성과 그리고 그들이 실제 공익적 활동 여부를 감시한다. 재벌개혁 시민운동이 발전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국민연금이 삼성의 대주주 역할을 한다? – 독립된 공익적 투자 계정을 만들자

    국민연금은 현재 4백4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에서 총수 일가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미 재벌계 대기업들에서 5~10%의 지분을 가진 주주이다. 이에 반해 재벌 일가가 소유한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은 이미 삼성그룹 계열사에 22조원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만해도 이건희 일가보다 더 많은 지분이다. 앞으로 15년 뒤인 2030년에 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은 2천조 원이 넘고, 그 10%인 200조원만 국내에 투자해도 재벌 일가 지분보다 10배는 더 많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총수 일가를 대신하여 대주주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진보 측만이 아니라 보수 측에서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경제민주화론이 나왔다. 2년 전, 친박근혜계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장회사들에서는 사외이사 추천권과 집중투표제, 대표 소송 제기권 등의 권리를 국민연금이 행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이명박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으로 일하는 곽승준 교수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대기업 견제를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때 그 목적이 공익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 반대이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차 같은 회사에 투자하는 목적은 오로지 수익 극대화이다. 그리고 주주권 행사가 수익극대화만을 지상 목표로 행사될 때, 이윤 증대를 위한 인력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 장기투자 감소가 정당화될 수 있다.

    예컨대 2012년 최우량 기업인 ‘한라공조’에 투자한 국민연금이 미국계 사모펀드(비스티온 대주주)의 투기적 이익을 옹호하였다.

    외국의 경우, 미국의 공무원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기금, 일명 캘퍼스(Calpers)는 전세계에서 주주자본주의를 상장기업들에 도입하도록 압력을 넣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캘퍼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소액주주운동가들을 공개적으로 도와주면서 적대적 기업사냥에 유리한 법제도를 도입하는 켐페인을 후원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과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기금을 투자하는 각국의 공적 연기금들이야말로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의 핵심적 주역들이다.

    주주자본주의의 전형인 미국에서 공적 퇴직 연기금들의 주주권 행사는 연기금 사회주의는커녕, 종업원 대량해고와 하청단가 인하, 그리고 금융버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즉 세계적으로 공적 연기금들은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핵무기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복지국가 재정에 기여하도록, 그리고 대기업의 안정적 대주주 역할을 하도록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법률을 새로 제정해서, 단기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국민연금 계정을 새로 독립해서 만들어야 한다.

    현재 4백40조, 10년 뒤 1천조 원의 국민연금에서 그 절반을 뚝 떼어내 독자적인 운용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은 수익성 추구보다는 공익적이고 장기적 목적에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복지국가 창조를 위하여 주택이나 어린이집, 병원, 노인요양시설 같은 공공 복지서비스 시설의 신축과 운용에 국민연금의 수백조원이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공익적이고 독립된 투자 계정을 가진 것을 전제로 새롭게 탄생한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같은 회사에서 적극적인 공익적 주주권 행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공익적 투자계정이라야 비로소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에서 노조 설립과 비정규직 보호, 하청단가 인상, 친환경 기술 채택과 같은 공익적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국민연금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민저널 원문 링크>

    필자소개
    사민저널 편집자.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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