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운동,
'살'자는 운동을 제안한다.
[일상의 인문학] 철물점 아저씨 가슴에 빛나는 '노란 리본'
    2014년 08월 27일 05: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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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새로운 칼럼 코너 이윤호 이문회우 아카데미 원장의 ‘일상의 인문학’을 시작한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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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관문이다. 우주의 생명에너지를 최초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언어로 화답함으로 교통한다. 들어오는 음식은 우주와 교통하는 생명에너지고, 그 에너지는 몸속에 생기를 만들고, 그 생기는 다시 세상을 향해 언어로 기운으로, 웃음으로 던져진다. 자극으로, 의미로, 생명으로, 나눔으로, 공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에너지는 다시 너를 호명함으로 공존의 질서를 재창조한다.

동조단식을 다시 생각해본다. ‘살’자고 하는 운동에 ‘죽’자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다. 대화는 둘째치고,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조차 열리지 않는다. 왜 막느냐는 울림은 벽에 부딪치고 다시 돌아온다. ‘시민의 통행권을 막는 것’이 정당한가를 아무리 소리쳐도, 몸을 부딪쳐도 침묵하는 방패들만이 있다.

분명 진실을 규명하고, 시민적 공론장을 회복하는 길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한 특별법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길이 없다. 모두 죽겠다고 ‘죽자고’ 단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동조단식은 선택‘한’ 방식이 아니라 선택‘된’ 방식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 선택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필연적으로 청원운동으로 귀결되는 것을 본다. 저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고, 저들이 선택하는 것을 명시화하는 것이고, 극단적으로 저들에게 구걸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됨을 즉 주인됨을 망각할 때 현실은 냉정하게 또 하나의 패배만을 남긴다.

노란 리본

‘동조단식’은 저들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의미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 네거티브를 넘어서 포지티브한 주인의 방식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 ‘살’자는 운동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의 건강과 대화를 위해, 이웃과 소통을 위해, 먹기 위해, 살기 위해 시장바구니에 진실을 담는 것은 어떨까?

‘시장바구니 운동’. 마켓에 시장을 보며 노란 리본과 ‘진실을 위해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합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숭고한 일상의 삶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가족과 오붓하게 만드는 저녁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냐고 그러니 진실은 규명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자고 이야기해야 한다.

주말에 가족과 휴양을 떠나기에 광화문에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힘들어하지 말자. 부채의식 갖지말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자. 가족들과의 대화는 미래다. 그곳에서 매체가 되자. 당당하게 노란 리본과 ‘세월호 특별법’을 드러내자.

영웅은 사라졌다. 노무현이 죽고, 안철수는 변했고, 문재인은 패배했다. 교황은 떠났고, 유민아빠는 목숨을 걸고 있다.

영웅이 우리의 근육을 붕괴시키고 ‘대리주의’의 노예성을 확장한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지금의 현실에서 영웅이 사라졌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무도, 나 스스로도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매체가 되어야 하고, 영웅이 되어야 한다. 가족들에게 영웅이 되고야 하고, 마을에서 영웅이 되어야 하고, 귀향길에 영웅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노란 리본’은 정당하고 숭고한 지성인의 표식이어야 한다.

철물점 김씨 아저씨의 가슴에 당당하게 진실을 요구하는 리본이 빛나야 한다. 고향집 어머니의 가슴에, 밭 가는 트랙터의 핸들에도, 마을어귀에 당나무의 둥지에도 숭고한 노란 리본이 달려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영웅이니까.

필자소개
이문회우 아카데미 원장. 성공회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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