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에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면
    [책소개]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j.k 깁슨 그레이엄 외/ 동녘)
        2014년 08월 23일 01: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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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경제, 협동조합, 공동주택 등 대안경제와 관련된 담론들이 한국사회에 유행처럼 번져 있다. 수많은 타자들의 희생으로 극소수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이미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약탈하는 등 수많은 폐해를 낳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에는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경제들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 뿌리가 깊지 않을뿐더러 실질적인 경험치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양한 대안경제 형태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주류 경제를 뒤집기 위한 간단하면서도 급진적인 생각의 도구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대안경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들과 공존하는 경제는 가능한가?

    우리는 1~2년 주기로 새로운 버전의 휴대전화를 사는 것에 익숙하다. 이 책은 휴대전화를 사는 행위가 지구 반대편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신형 휴대전화를 살 때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콩고 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티타늄, 주석, 텅스텐 등 희귀 광물들이 필요한데 이 지역 대부분의 광산은 반란군과 민병대가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이 광물을 불법 수출하고 그 수입으로 전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구매할 때 우리는 그 물건의 생산자와 우리의 관계, 유통과정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를 하지 않는다. 단지 값싼 물건을 사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 정도를 느낄 뿐이다.

    그러나 값싼 티셔츠나 운동화를 구매할 때, 티셔츠와 운동화의 가격이 그 물건을 생산한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말해줄 수 있을까? 단언컨대 상품의 가격은 그들이 적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노동환경은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는 부와 잉여를 극대화하는 것이 최대의 선(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거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마저 정당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 환경, 미래세대 등 타자들과 공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는 단지 소비 욕구에만 초점을 맞출 뿐, 물건을 생산한 사람이나 주변 환경 등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경제를 새롭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타자들과 공존하는 경제란 곧 타인과 자연환경, 현세대와 미래세대, 지구의 미래 등 모든 타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경제라고도 할 수 있다.

    타자를 위한 경제

    물속에 잠긴 다양한 경제에 주목하라

    타자들과 공존하는 경제, 타자를 위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저자들이 제안하는 방법은 바로 경제를 탈환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탈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라는 주류 경제시스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경제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저자들은 1장에서 경제를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경제를 빙산에 비유했을 때 우리는 빙산의 일부분(자본주의 기업에서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지불노동)만을 경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 프레임에 따르면 국가나 중앙은행 등만이 경제를 움직이는 주체가 되며, 우리는 소비자라는 역할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저자들은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나 물속에 잠긴 경제의 다양한 형태들(비자본주의 기업, 소비자 협동조합, 물물교환, 자원봉사 등)을 경제라는 프레임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2장부터 6장까지는 각각 노동, 기업, 시장, 재산, 금융을 탈환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 장에서는 해당 개념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고했던 이해 방식을 살펴보고, 사람들이 경제를 탈환하는 실제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어 기존의 주류적인 이해 방식에 대한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탈환 프로젝트

    이 책의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스스로가 경제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주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직접 새로운 경제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경제를 탈환하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가령 2장(노동을 탈환하다)에서는 미국에 사는 인도 여성 시나가 빠르게 소비되고 또 무자비하게 버려지는 세계 패션산업과 멀어지기 위해 똑같은 옷 7벌을 번갈아가며 입는 ‘유니폼 프로젝트’에 도전한 사례가 소개된다. 시나는 매일 자신의 새로운 옷을 인터넷에 올리고,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아칸샤재단에 하루 1달러씩 돈을 기부하고 있다.

    3장(기업을 탈환하다)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세라믹 타일 제조사인 사논의 노동자들이 몇 달간 임금을 받지 못하자 직접 공장을 인수해 ‘파신팟’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인 지위까지 얻은 기업 탈환 사례가 소개된다. 노동자들이 탈환한 자본주의 기업은 아르헨티나에서만 200여 개에 달한다.

    4장(시장을 탈환하다)에서는 기본의 자본주의시스템의 거래 방식이 아닌 호혜적인 방식으로 돌봄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후레아이기푸라는 시간저장시스템이, 6장(금융을 탈환하다)에서는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 간 금융의 형태를 보이는 계 모임의 사례 등이 소개된다.

    이 책은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지는 대안적인 다양한 실험들과 모범적인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각 장에서는 노동, 기업, 시장, 재산, 금융을 탈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령 노동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2장에서는 노동자의 ‘24시간표’와 ‘행복점수표’ 그리고 노동과 생활의 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균형저울’이라는 도구들이 물질적인 행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이나 사회적·육체적 행복 등 모든 행복의 요소들을 만족시키면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시장을 탈환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4장에서는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되기까지 우리가 고려하기 어려운 모든 타자들을 고려하기 위해 ‘원산지 목록’과 ‘원산지 타자들과의 네트워크’, ‘윤리적 장보기 점검 목록’ 등의 도구들을 이용한다. 이 도구들을 이용하면 물건을 소비할 때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타자들을 고려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직접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도구들을 이용해 윤리적으로 실천한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타자들과 공존하는 경제’는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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