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1968세대 정치적 좌절의 표현
[책소개] 『포스트모더니즘:마르크스주의의 비판』(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2014년 08월 23일 0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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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거나 지금이 포스트산업사회라는 말은 이제 진부한 상투어처럼 들린다.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서로 다른 문화적 흐름 세 가지가 수렴된 것으로 본다.

첫째,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같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의 계몽주의 비판. 둘째, 난관에 봉착한 모더니즘 예술을 새로운 예술형식이 대체했다고 보는 견해. 셋째, 마르크스가 분석했던 산업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포스트산업사회가 도래했다는 주장.

리오타르의 책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포스트구조주의 철학, 포스트산업사회론을 하나로 엮어서 일관성 있어 보이는 주장을 한 덕분에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은 이런 주장들을 모두 문제 삼고 비판한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관념론적 비합리주의에 도전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과 모더니즘 예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최근의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고전적 자본축적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는 지은이의 기본 관점은 철학, 사회이론, 역사 서술을 종합하는 것이 특징인 지적 전통, 즉 고전적 역사유물론이다.

그래서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마르크스가 그리스도교를 단지 잘못된 신념 체계로만 다루지 않고 계급사회에서 거부당한 현실적 필요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봤듯이, 지은이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적 약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 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서구의 1968세대가 정치적 환멸에 빠져 혁명을 포기하고 전문관리직 ‘신중간계급’이 돼 체제내화 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본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슨 대단한 사상적 문화적 현상이라기보다는 1968세대의 정치적 좌절과 사회적 지위 상승의 징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

1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주된 특징들을 살펴본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모더니즘 예술과 근본적으로 단절한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려고 모더니즘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도 모더니즘의 특징들을 포스트모던 예술에 응용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2장에서는 20세기 초에 모더니즘 예술이 거둔 위대한 성과는 특수한 역사적 국면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10월 혁명 직후 모더니즘이 급진화하면서 구성주의와 초현실주의 같은 아방가르드 운동이 나타나 더 광범한 사회변혁 투쟁의 일환으로 예술 제도 자체에 도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패배는 아방가르드의 패배이기도 했고 이후의 모더니즘 역사도 결정지었는데, 포스트모던 예술은 바로 이 모더니즘의 변종일 뿐이다.

3장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를 모더니즘의 철학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사실, 포스트구조주의 특유의 주제들은 니체가 이미 제시한 바 있는데, 니체의 영향을 받은 들뢰즈, 데리다, 푸코는 모두 담론의 객관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권력에 대한 저항을 분명히 표현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주체의 일관성이나 주도력을 한사코 거부하는 등의 철학적 난제에 부딪혔다.

4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주요 이론가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주장이 의사소통 행위 이론의 핵심 요소인 절차적 이성 개념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을 살펴본다. 즉, 절차적 이성 개념 때문에 하버마스는 설득력 없는 언어철학, 관념론적 사회이론, 지나치게 무비판적인 현대 자유민주주의론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5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사회이론을 다루면서, 이른바 포스트모던 예술이 등장한 바탕에는 ‘다국적’ 자본주의나 ‘탈조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국면이 놓여 있다는 주장도 살펴본다.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가 서구 세계 전역에서 1968의 여파로 나타난 정치적 환멸과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가 상층 화이트칼라에게 제공한 ‘과잉소비주의’ 라이프스타일 기회가 맞물린 데 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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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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