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살인법' 제정 배경
    1987년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건
    [대형사고 어떻게 반복되는가 4] 기업 과실치사 처벌 계기
        2014년 08월 22일 04: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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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재난사고가 유난히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건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시장과 이윤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기준이 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 또다른 대형사고를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과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다. 이번에 세월호 참사 이전 벌어졌던 한국과 해외 대형 재난사고의 발생 원인과 사회적 배경을 몇 개 사건을 통해 돌아보는 글을 게재한다. 사회진보연대에서 펴낸 소책자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에 담긴 내용이다. 사회진보연대의 양해를 얻어 그 중 한국과 해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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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3 링크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는 1980년 건조된 여객선으로 세월호와 같은 RORO(roll-on roll-out) 방식의 카페리이다.

    이 여객선은 영국의 도버항과 프랑스의 깔레항 사이를 취항할 목적으로 건조한 것인데, 도버-칼레 노선은 경쟁이 매우 심한 노선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헤럴드 오프 프리 엔터프라이즈 호는 신속하게 차량을 싣고 내리기 위해 상단 갑판(E 갑판)과 주 차량 갑판(G갑판)에서 동시에 차를 싣고 내릴 수 있도록 했고, 탁월한 가속력을 갖도록 설계 되었다.

    사고 당시 본래의 도버-칼레 노선이 아닌 벨기에 지브뤼게항과 도버항 사이에 취항해 있었던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호는 1987년 3월 6일 뱃머리 출입문을 닫지 않은 채, 지브뤼게항에서 출항을 하고 90초 만에 최고 속도에 가까운 18.9노트까지 가속하였다. 곧바로 대량의 바닷물이 뱃머리로 들어왔고, 좌현으로 30도 가량 기울어진 후 잠시 중심을 잡았다가 좌현 쪽으로 완전히 침몰한다.

    출항한 지 불과 2분 만이었다. 구조대가 즉시 출동했으나 침몰 시간이 밀물대였고, 바다의 온도는 너무 낮았다. 구조를 기다리던 193명의 탑승자 및 선원들은 3℃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Herald_of_Free_Enterprise

    1984년 도버항의 헤럴드 오브 프리 엔트프라이즈호(위키피디아)

    사고의 원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뱃머리 출입문을 닫지 않고 출항한 후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복원력을 잃고 배가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자로 문을 닫는 임무를 맡은 부갑판장, 문이 닫혔는지 확인할 임무가 있던 1등 항해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독해야 하는 선장이 지목되었다.

    사고 당시 부갑판장은 지브뤼게 항구에 도착한 후 차량 갑판을 청소하고 선실에서 잠이 들었다. 1등 항해사는 부갑판장이 오는 것을 보고 부갑판장이 자신의 임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브릿지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갑판에 가장 나중에까지 남아 있던 갑판장의 경우 문을 닫는 것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배의 구조상 선장실에서는 문이 열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고, 선장이 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호기도 없었다.

    사건 이후 법정에서는 부갑판장, 1등 항해사, 선장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런 부주의는 운항사의 업무 행태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조사를 통해 속속 밝혀졌다.

    법원은 기업 전체에 “부주의라는 병”(disease of sloppiness)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뱃머리 출입문 위쪽으로까지 파도가 올라오는 문제가 제기되고, 출입문의 개폐 상태를 표시하는 지시기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둘 다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선장들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고, 후자는 선원들이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러한 지시기는 필요가 없을 것이란 이유였다.

    배의 설계도 영향을 미쳤다. 이 배의 자매함인 프라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역시 1983년에 뱃머리 출입문을 닫지 않고 운항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는 해수가 유입되지 않았다.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에 해수가 유입된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천수효과다. 천수효과는 배가 이동 중에는 배의 바닥 부분 유속이 빨라지고 압력이 낮아지게 되어 평상시보다 배가 더 깊게 잠기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천수효과는 얕은 물에서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지브뤼게 항구 앞바다가 얕은 바다였다는 점이 이 천수효과를 극대화시켰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 가속력이 좋은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가 18노트에 이르게 되면 뱃머리에 부딪치는 파도가 배를 침몰시키기에 충분한 양으로 갑판으로 유입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만약 당시 바다가 더 깊어 천수효과가 덜 나타나고, 속도가 18노트에 이르지 않았다면 문이 열린 상태를 알아채고 닫을 만한 시간을 확보했을 것이다. 배의 안전성을 희생해서라도 차량을 빨리 싣고 가속력을 높이는 데에만 주력한 설계방식도 문제였던 것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의 계기가 되다

    사고 이후 7명이 중과실치사(gross negligence manslaughter)혐의로 기소되었고, 운항사인 P&O 유러피언 페리사 역시 판례법상 기업 살인혐의로 기소되었다.

    영미법 체계에서는 법인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여겨지며, 이 사건은 최초로 개인이 아닌 기업을 살인혐의로 기소한 사건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선장과 1등 항해사 2명의 선원을 제외한 5명의 고위직 임원들과 기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이유는 판례법상 기업살인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기업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지휘하는 정신”, 즉 고위급 임원이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원리에서는 사고에 대한 책임이 여러 단계로 분산되는 거대기업의 경우 기업 살인으로 처벌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과실치사를 별도의 입법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뒤로 10여 년에 걸친 유족들의 운동, 사회적 논의와 법적 토론, 노동조합과 운동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2007년 기업살인(과실치사)법이 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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