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려의 육식, 무조건 금지됐을까?
        2014년 08월 22일 01: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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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서 승려의 육식은 무조건 금지됐을까? 현실에 맞는 선택이 필요할 때다.

    며칠 전 조계종 모 교구 본사 선거를 앞두고 몇 몇 스님들이 숙박시설에서 술과 고기를 먹었다는 뉴스로 좀 시끄러웠다. 어떻게 불살생을 실천해야 할 스님들이 술은 물론 고기를 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 통념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변화하는 현실에서 스님들의 육식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없지 않다.

    현재 불교 승단에서 채식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대만·홍콩·한국·일본 등 이른바 대승불교로 불리는 북방불교권이다.

    반면 소승불교로 불리는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라오스 등 남방상좌불교권에서는 스님들이 주로 걸식(탁발)과 청식(請食; 신자들의 식사 초대)에 의존하여 생활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육식이 허용되고 있다. 그 대신 오후에는 식사를 안하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요즘 서구에서 각광받는 티벳불교쪽에서도 육식을 허용한다. 척박한 환경 때문에 농사보다는 목축을 주업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티벳의 환경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2008년 비틀즈 전 멤버이자 채식주의자인 폴 매카트니가 달라이라마에게 육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달라이라마에게 채식주의자로 변환하라고 편지까지 쓴 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티벳의 환경과 문화를 모르고 무식한 짓을 한 것이다.

    승려 육식

    달라이라마(위)와 수경스님과 도법스님(아래 오른쪽)

    초기 불교 당시에도 육식논쟁이 있었는데, 붓다는 탁발을 주업으로 했던 당시 승가 상황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신자들이 주는 음식을 고기라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보시자의 생업과 정성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고 나쁘고, 되고 안되고’라는 분별심을 떠나 어떤 음식을 받더라고 기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음식은 육신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 수양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 신도들이 주는 음식 중 고기를 먹는 건 살생으로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원시 기독교의 정립자였던 파울로스(바울)가 “만물이 하느님에게서 왔으므로 그 모든 것은 선합니다.(고린도 전서 8장 6절)”라면서 “하느님이 내어주신 모든 음식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디모데 전서 4장 4절)라고 한 말과 상통한다.

    탁발이 힘든 경우에는 이른바 삼부정육(三不淨肉) 1.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을 본 것. 2. 자기를 위하여 죽였다는 말을 들은 것. 3.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것이 아니라면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했다.

    “비구들이여, 자기 자신을 위해 죽인 고기라는 것을 알면서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그러한 고기를 먹으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팔리 율장, 대품(大品, Mah vagga)의 약제편 藥劑篇)고 가르쳤다.

    이처럼 붓다는 이와 같은 제반사항과 인도 전통 등을 고려하여 당시 육식을 허용했고 오늘날 초기 불교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남방불교에서는 육식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는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됐을까? 그것은 대승불교의 성립 시기의 인도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 시기 인도는 붓다 시기에 존재하던 아리안족의 유목문화 대신 전인도로 정착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작문화로 바뀌게 된다.

    알다시피 농업문화에서 소는 귀중한 동력인 관계로 쉽게 잡아 먹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인도에서 소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숭배의 대상까지 된다. 육식에 대한 인도문화의 일대 전환이 전개됐고 육식보다는 곡류 소비와 채식이 장려되기 시작했다.

    중국에 들어온 불교 역시 중앙집권적 수취체제를 갖춘 왕조가 승려들을 비생산적인 집단으로 간주해 대대적인 탄압했기 때문에-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의 法難)- 선종을 중심으로 백장 청규(百丈淸規) 스님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가르침을 이어받아 스스로 농사를 지어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다. 즉 ‘선농일치(禪農一致)’방식을 통해, 절 내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발우의 형식을 띠어간 것이다.

    탁발이 돌아다니며 신자들이 주는 음식을 무엇이든 먹는 과정 자체에 방점이 찍혔기에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중국 불교의 발우는 음식을 통해 불교 정신을 살리고자 육식과 수행에 방해가 되는 자극적인 오신채(부추, 대파, 마늘, 양파 등 향이 강한 양념)를 금하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자연 속에 한 몸이 된다는 취지하에, 최소한의 양념으로 재료 그대로 조리하는 방식으로 사찰음식의 전통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오늘날 농업문화가 사라지고 있고 급격한 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북방불교 문화권에서 무조건 육식을 금지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교리 차원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늘날 육식은 환경이나 동물권리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더라도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교조주의이고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붓다는 언제나 극단주의를 배격했다. 그만큼 무조건 채식주의를 옹호하지 않았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자신의 몸에 맞게 해야 한다. 채식이 이로울 수도 있고, 육식이 이로울 수도 있다. 그리고 신체주기와 상황에 따라 입맛도 달라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도법 스님(사진 아래)은 생명평화 순례중 고기가 나오자 ‘지금은 수행중이 아니다. 얻어 먹는 주제에 음식을 가려 먹으면 음식을 주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속인이든 수행자든 시대와 문화가 변하면 거기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의 法難)은 중국 불교사의 가장 대대적인 불교탄압을 말하는데, 삼무(三武)는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재위 423~452),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재위 560~578), 당(唐)의 무종(武宗: 재위 840~846)을 가리키고, 일종(一宗)은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재위 954~959)을 가리킨다.

    이 당시 탄압에는 강력한 물리력이 동원되었으며 불교 외에도 외래에서 들어온 경교(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현교(조로아스터교=배화교), 화교(마니교)가 모두 대상이 되어 박해받았다. 그럼에도 삼무일종의 법난이라고 부른 것은 불교가 가장 세가 강성해서 그만큼 피해도 컸기 때문이다. 탄압 결과, 초기에는 남쪽에 비해 우세했던 북중국 일대의 불교가 크게 쇠락하였고 교종계열 불교 대신 달마에서 시작된 선종계열 불교가 중국 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필자소개
    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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