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진보정치,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고] 진보정치 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2014년 08월 20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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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의 결과는 우려한 대로 진보정치의 추락을 목도한 선거였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려가 현실이 될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선거 이후 진보정당들의 행보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다. 선거 결과를 모두 패배 혹은 추락으로 평가하면서도 어느 정당 하나 눈에 띠는 움직임이 없다. 응당 따르는 책임문제에 대한 논의도 들리지 않는다. 조금은 부산스러운 대책논의가 있을 법한데 그저 일상의 풍경만이 자리하고 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독주와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의료민영화, 규제완화, 공공부문 정상화 등으로 고삐를 쥐다가 기업소득환류세제로 무장한 초이노믹스(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로 한껏 생색을 내며 노동자.민중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정치적 대안세력으로서의 그 지위를 이미 상실했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권력의 주변부에 얼쩡거리며 민중의 요구를 번번이 배신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세월호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은 전체 민중의 어깨를 짓눌러 오고 있다. 그러나 고양되는 대중투쟁의 한 복판 어디에도 진보정치는 보이지 않고 보수야당의 배신으로 뻥 뚫린 민중의 가슴을 채워 줄 대안세력으로서 진보정치를 찾을 수가 없다.

    각 진보정당들은 나름 안간힘을 쓰지만 진보정치가 그 존재감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참 조용하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무도 진보정당을 향해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진보정치에 대해 입을 닫은 지 오래고 대중조직들은 행여 진보정당 간의 갈등이 조직에 영향을 미칠까 한 발 비켜 서있다. 일반 대중들은 진보정치에 대해 점차 그 존재조차 잊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진보정치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진보정치의 위기임은 분명하다. 이제 정말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이다. 물론 이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진보정치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민주노동당의 분당부터 최근의 총선, 대선을 거치며 끝없이 반복되며 회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양상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디 한두 가지로 그 원인을 말할 수 있을까마는 우선 깊은 성찰이 필요한 지점은 진보정치의 정체성의 혼란이다. 변화하는 정치지형, 전일적 지배를 강화하는 자본주의, 진보적 가치의 다양화 속에서 진보정치는 새로운 대안사회의 상이나 진보적 의제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진보정치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주의논쟁(主義論爭)의 수준을 쉬 벗어나지 못하면서 전통적인 계급문제부터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진보적 의제들까지의 영역을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다.

    4개진보정당

    또 한 가지는 진보정치의 위기 극복을 곧 자기 정당의 생존이나 확장으로 환원하여 바라본다는 것이다. 즉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자기 정당 중심으로 진보정치의 전망을 세울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정당들을 진보정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배제해야 되는 대상으로 본다.

    그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각 정당은 자기당의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당 운영의 민주성 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독자적인 발전전망 등을 수없이 갖다 붙인다. 그것들이 현재의 분리 정립에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되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는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분리정립의 근거가 된다 해서 현재의 진보정치의 위기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분리정립 구도가 지속되는 한 진보정치의 어떤 새로운 전망도 가능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작년 보다 작년이, 그 작년보다 올해가 더 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와 관련하여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로 거론되는 부분이 진보정당들의 지지율 합산 결과이다. 진보정당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치룬 선거에서 10%정도의 지지율로 여전히 예년과 비슷한 지지율을 보인 것은 진보정치가 여전히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이다.

    진보정당의 선거패배로 인한 진보정치의 추락과 지지율의 유지에서 확인하는 진보정치의 가능성이라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는 현재와 같은 진보정당의 분리.정립 구도로는 일정한 지지율이라는 대중적 기반이 있다 하더라도 진보정당이 선거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인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2016년, 2017년의 총선, 대선을 거치며 진보정당의 선거패배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되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지방선거 후 진보정당들은 진보정치의 재편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지방선거 후 진보정치의 추락을 목도하면서도 진보정당들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자기 당 중심의 진보정치 전략을 더욱 세게 밀고 나가고자 했다.

    바로 그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 7.30 재.보궐선거이다. 거기에는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성찰도 없었고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를 위한 공통의 고민이나 향후 재편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모두 진보정치의 위기 극복 보다는 진보정치 내부의 헤게모니를 더 절실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선거였다. 결과는 모두의 패배였다. 또 한 번 진보정치의 추락이었다.

    이제 정말로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할 때이다. 그것은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진보정치 세력들 모두의 과제이다. 진보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모두 제각기 다르듯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 방안 또한 모두 다를 수 있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분리 정립 속에서 각기 자기중심의 발전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큰 흐름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또 때로는 진보정치세력의 통일과 재편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되 하나의 틀, 하나의 당을 만드는 것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판단은 현재 우리 사회의 조건을 들여다보고,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하는 정치지형을 돌아보고, 대중운동의 상태와 조건을 이해하는 속에서, 또 반자본주의 운동의 현 단계 전략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은 진보정치의 재편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와 실천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진보정치의 재편이 단순히 기존의 진보정당들이나 진보정치세력의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재편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뜻은 단순히 물리적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정체성의 정립, 새로운 진보적 의제의 발굴, 현장과 지역에서의 실천운동이라는 당 운동방식의 변화, 당내 민주주의 확장을 포함하는 당 운영 방식의 혁신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가 함께 논의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진보정치의 재편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지난 시기 있었던 진보정치의 통합논의의 오류를 극복하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진보정당들과 진보정치세력들의 분명한 입장이 요구되는 때이다. 각 조직들은 모두 진보정치의 재편 논의에 참여할 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조직적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저 명분이나 수사가 아니라 진실로 진보정치의 위기를 진보정치의 재편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조직 내 의결단위를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결의된 단위들의 책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고 진보정치의 재편기구로서 향후 대중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진보정치 재편기구가 과거처럼 단지 기존의 진보정치세력 간의 통합 논의만을 위한 기구가 아님 또한 명확히 해야 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조직의 통합이 곧 진보정치의 전망을 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통합 논의와 함께 진보정치세력들의 다양한 공동투쟁과 공동사업을 실천하는 연대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적어도 이러한 재편논의를 할 것인지, 이러한 논의를 위한 기구를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의 끝없는 추락의 과정에서 아무런 대중적 노력도 보이지 않고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는 것은 가뜩이나 취약한 진보정치의 토대를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기구가 구성된 뒤에 진행될 논의와 실천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 시작에 대한 결정을 미적거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

    진보정치의 재편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진보정당들이다. 진보정당들이 소극적이거나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면 진보정치 재편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진보정당의 결정 또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찾아가는 일은 중단할 수 없기에 또 다른 길을 위해서라도 결정은 가급적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 재편은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열기 위한 왕도도 아니고 유일한 길은 더욱 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건에서 재편에 대한 논의 없이 진보정치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자기중심의 전망이 빚어 온 또 다른 오류를 반복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진보정치 재편, 한 번은 부딪혀야 할 과제이다.

    * 노동.정치.연대 상임대표로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노동.정치.연대는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하반기에 진보정치의 재편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그동안 진보정치 재편의 기초 논의를 위한 기구로 기능해 온 진보혁신회의(준)을 통해 이미 우리의 기본입장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링크)

    노동.정치.연대는 진보정치 재편을 위해 현재의 진보혁신회의(준)을 본 조직으로 발전시키거나 아니면 별도의 기구를 구성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9월까지는 참가조직별로, 즉 민주노총, 진보교연, 노동당, 정의당이 조직적 논의를 거쳐 진보재편 논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나면 10월초 기구 결성과 함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는 참가단위가 동의했을 경우입니다. 재편 논의를 위한 기구 구성에 합의하지 못한다면 노동.정치.연대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위해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노동정치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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