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 올라간 이들을 위한 ‘버스’
    외로움과 고독의 사투를 벌이는 고공농성자들의 이야기
        2014년 08월 19일 04: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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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10층 난간에서 아래를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실 5층만 되더라도 다리가 벌벌 떨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80일이 넘게 아파트 10층 높이 굴뚝 꼭대기에서 살고 있다.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말하는 법을 까먹을까봐 아침마다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운동 삼아 108배를 한다고 한다. 머털도사도 아닐진대 저 높이 올라가 왜 내려오고 있지 않는 걸까?

    고공농성들

    한진,현대,상용,철도,유성,레미콘 등 노동자들의 굴뚝농성 모습들

    고공농성, 지붕 없는 하늘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는 마지막 몸부림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과 천의봉, 쌍용자동차 해고자 한상균과 복기성, 문기주, 서맹섭, 기륭전자의 김소연, 철도노동자 이영익, 한국GM의 권순만, 유성기업의 홍종인, 이종훈 등… 우리에게는 셀 수 없는,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고공농성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1931년 5월 평양의 고무 공장의 강주룡이라는 여성 노동자였다. 고무 신발 공장에서 일하던 강주룡은 임금 삭감 철회 파업에 참여하다 “죽기로써 반대한다”며 을밀대 위로 올랐다. 당시 언론에서 “아직 조선 노동운동 선상에서 보지 못했던 새 전술”이라고 보도했다고도 한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1990년 4월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 점거 투쟁을 시작으로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은 철탑으로, 크레인으로, 굴뚝으로 올랐다. ‘희망버스’라는 새로운 운동 문화를 만들었던 김진숙의 고공농성은 35m 높이에서 무려 309일이나 진행됐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뼈가 다 상했다.

    이들이 자꾸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목숨까지 걸며 하늘로 올라가 소리치는 것이다.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기어코 그 고공농성장에 모이는 이유 역시 ‘우리가 당신 곁에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외롭지 말라고. ‘희망버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끝없이 추락하는 꿈을 꾸고 한 없이 고독을 곱씹는 저 위의 세상

    올해 마흔 다섯의 차광호씨는 지난 5월 28일 아침, 구미산단 3단지에 있는 45m 높이의 회사 굴뚝에 올라갔다. 굴뚝에는 큼지막하게 ‘스타케미칼’이라는 그가 해고를 당한 회사의 이름이 써 있다. 차씨는 ‘분할매각 중단하고 공장 가동 실시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회사가 멀쩡한 회사를 분할 매각하기 위해 멀쩡한 공장을 중단시키고 폐업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13년 1월 3일 20년 가까이 일하던 회사의 공장이 멈췄고, 168명의 조합원 중 138명이 희망퇴직을 선택해야만 했고, 나머지 28명은 해고됐다. 현재는 11명이 남아 싸우고 있다.

    지난 7월 28일 고공농성 151일만에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유성기업의 홍종인 아산지회장은 오는 23일 스타케미탈로 향하는 희망버스 참가 호소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처음 철탑에 올라갈 때의 그 섬뜩함이 가슴 저리도록 생생한 이유는 아직도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동지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철도공사의 강제전출을 반대하며 수색 서울차량지부 내 철탑에 올라섰던 이영익 전 철도노조 위원장은 “육지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배를 타면 극심한 멀미를 하는 것처럼, 처음 올라갔을 때 며칠간 잠만 자면 밑으로 추락하는 꿈을 꿨다”며 또한 “집에서 잘 때는 하루에 한두 번은 화장실을 갔었는데 고공농성 중에는 상당한 긴장상태여서 그랬는지 아침 9시까지 소변이 안 나왔다”고 전했다.

    쌍용차지부의 한상균 전 지부장은 “보통 고공농성을 하면 2인이나 3인이 함께 올라가 서로를 보조하는데, 혼자 올라가 농성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괜찮다’, ‘몸 관리 잘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내려올 때는 대부분 들것에 실려 내려온다는 것을 모두가 경험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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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광호씨가 두 달 동안 굴뚝위에서 쓸어 모은 모래와 생수병으로 만든 화분. 음식물 쓰레기를 넣었더니 참외 싹이 낫다고 한다'(차광호 페이스북)

    금속노조 구미지부의 배태선 사무처장은 차광호씨의 현재 상태에 대해 전했다. 배 사무처장은 “굴뚝 꼭대기로 올라가 있는 계단이 끊겨 있어 차광호 동지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다. 맨 꼭대기 공간은 1.2m 가량의 폭이 있긴 하지만 그냥 바닥인 상태”라며 “문제는 다른 사업장과 달리 밥과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올려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휴대폰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전화를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부족해 전화를 꺼둔다는 말은 45m 위에서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됐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홍종인 지회장은 “투쟁할 때 동지들이야말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인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는 건 세상과 단절됐다는 의미”라며 “혼자라는 고독,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짊어진 것에 대해 수도 없이 되뇌고 곱씹고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차광호씨와 20년지기 친구인 박성호씨는 차씨와 함께 굴뚝에 오르려다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끝내 오르지 못했다며 미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얼마 전에야 굴뚝 위로 작은 텐트를 하나 올려 보냈다. 그 전까지는 뜨거운 햇볕아래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비바람과 추위가 걱정된다”며 “지난 이틀 동안에도 광호가 비를 맞는 모습을 보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고공농성 ‘선배’들, “23일 희망버스 타고 구미 스타케미칼로!”

    먼저 고공농성을 벌였던 이들이 스타케미칼로 향하는 희망버스에 함께 타자고 호소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 스스로가 올라가봤기 때문에 자신을 만나러 함께 온 이들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지 알기 때문이다.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희망버스가 유성기업으로 온다고 했을 때 그 힘과 열기를 받았던 조합원들의 절실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아니었지만, 이 투쟁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큰 힘이 됐다”며 “23일 차광호 동지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으면 좋겠다. 혼자 고공농성을 할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마음을 먹게 되는지를 나는 안다. 우리가 그런 마음 깨끗히 씻어버릴 수 있도록, 희망과 승리를 안겨줄 수 있도록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이영익 전 철노노조 위원장 역시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지만 많은 동지들이 연대해주면서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분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연대와 공감,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23일 희망버스를 통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의 양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스타케미칼 해고자 박성호씨는 “극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차광호의 투쟁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며 “23일, 어려운 시간이지만 함께해주신다면 우리 차광호가 꿋꿋하게 고공농성을 이어가다 마침내 승리해 환한 웃음으로 우리 품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희망버스는 오는 23일 전국 16개 지역에서 출발한다. 서울은 오전 10시 대한문, 경기지역은 오전 10시 수원 도청오거리와 오전 11시 평택 쌍용차 정문 앞, 강원도는 오전 10시 춘천 KBS앞과 11시 원주 웨스포 센터 앞, 충남은 오전 10시 아산시청 앞, 광주는 오전 8시 광주시청 앞, 전북은 오전 11시 종합경기장 앞, 부산은 오전 10시 부산시민회관 앞, 울산은 오전 10시 동천체육관, 경북 경주는 오전 12시 예술의 전당 주차장 앞에서 출발한다. 대전과 충북, 인천, 경남은 아직 시간과 장소가 확정되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는 오후 2시 구미 금오산 복개천에 집결해 구미역으로 행진할 예정이며, 2시30분에는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4시에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연다.

    굴뚝 희망버스

    굴둑농성 희망버스 호소 기자회견(사진=장여진)

    다음은 스타케미칼 희망버스를 제안한 고공농성자들의 명단이다.

    한진중공업(김진숙, 박성호, 정홍형), 쌍용차(한상균, 복기성, 문기주, 서맹섭), 현대차 비정규직(천의봉, 최병승), 유성기업(홍종인, 이정훈), 코오롱(김만수, 전기철), 기륭전자(이미영, 오석순, 윤종희, 최은미, 김소연, 유흥희), 철도(이영익, 유치상, 김갑수, 황상길, 하현아), 버스(남상훈, 박상길, 김인철, 정홍근), 택시(김재주), 한국GM(권순만, 황호인, 박현상), 코스콤(정인열), 대구 건설 투쟁(배진호) 이상 34명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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