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폭탄과 원자력,
    그리고 광복절과 추모일
    [에정칼럼]핵과 원자력은 다른 게 아니다.
        2014년 08월 18일 09:43 오전

    Print Friendly

    핵과 원자력

    이 나라의 현 대통령은 특별한 날 특별하게 분노를 자아내는 데 탁월하다. 그리고 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지성을 무시하기는 하나 필자가 보기에 대통령은 그의 입장에서 매우 훌륭한 프레임을 구사하곤 한다. 이번 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그럴만한 화두를 많이 던져주셨는데, 특히 다음의 대목은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대로 붙여 본다.

    “무엇보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너무나 위험하고 비정상적입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위험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청와대에서는 교정도 안 보는지 띄어쓰기가 잘못되어 있기는 하나 차치하고, 저 문장을 탈핵 진영의 어법대로 본다면 얼마나 획기적인 발언인가! 드디어 박근혜 정부가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인가. 연설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북아는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입니다.
    원자력 안전문제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중략…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어 원자력 안전협의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저 문구들로만 보면 대통령은 곧 “한국 탈핵”을 선언할 것만 같다. 설마, 물론, 아니다. 우선 앞서 인용한 문장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이제 북한은 분단과 대결의 타성에서 벗어나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로 나와야” 한다는 것임을 밝힐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 연설문에서는 핵을 둘러싼 아주 오래되고 효과적인 프레임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있다. 바로 ‘핵-위험-북한’과 ‘원자력-안전-한・중・일(즉, 북한 제외)’이라는 익숙한 프레임, 그것도 냉전시대의 것 말이다. 그런데 좀 더 오묘한 것은 이것이 바로 광복절 경축사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오묘한 광복절

    잠시 시간의 추를 69년 전으로 돌려보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핵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투하되었다. 그리고 3일 후에는 “팻 맨”(Fat man)이라 명명된 핵폭탄이 다시금 나가사키를 파괴하였다. 이들은 인류사 최초로 일반 시민의 학살에 쓰인 핵폭탄이었다(출처: 위키백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투하).

    이 핵폭탄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한 재앙이었는데, 일본 정부와 한·일 시민단체가 연구·집계한 바에 따르면 총 70여만 명의 피폭자가 발생했다. 두 번째 핵폭탄이 투하된 지 6일이 지난 8월 15일, 일본 제국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빛을 되찾은 날이라 부르는 광복절이다.

    히로시마

    8월 7일 히로시마 원폭 이후 사상자를 수습하는 장면, 사진=피폭50주년 히로시마 시사(市史)

    참으로 슬프고 무서운 날이 아닌가. 수십만 명의 일반 시민이 즉사 또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가게 된 날을 두고 빛을 되찾았다고 한다니 말이다. 더욱이 방사능에 노출된 전체 피폭자 70여만 명 속에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됐거나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밀항해 공장 등에서 일하던 노동자 등 7만여 명의 한국인이 포함돼 있으며, 그 중 4만 명이 즉사하였다. 그리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에 시달리다 맥없이 목숨을 잃고, 그 고통이 2세, 3세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출처: KBS, 2014.8.12, “[8·15 특집] ① 고통 속 70년,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일제 강점기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된 것은 분명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광복절이 누군가에겐 피폭 추모일이기도 함을 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역사고 반쪽 역사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는 추모하면서도 1945년 8월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추모하지 않는 우리는 반쪽 역사만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잊거나 외면한 나머지 반쪽 역사 속에서 여전히 수많은 피폭 생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피해 2, 3세대의 경우 일본에서든 우리나라에서든 지원이 전무하다. 방사선 피폭의 유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빠진 역사가 하나 더 있다. 1/3역사라고 해야 하려나. 그것은 바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과 고통의 세월로 몰아넣은 당사자, 미국과 핵이다. 여기에서 핵은 핵폭탄은 물론이고 핵발전소까지 포함해야만 한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에게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후 일본에게 다른 핵은 인정하게 된다. 바로 새롭게 시작된 인류의 재앙, 핵발전소다. 인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확인하고도 핵을 종식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 아래 핵을 더욱 널리 확산시켰다. 그 결과 핵 테러의 위협은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두 번의 핵폭탄이 휩쓸었던 나라 일본에는 60여 년이 흐른 뒤 다시금 후쿠시마라는 대참사가 찾아왔다.

    이것이 광복절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69년의 섬뜩한 역사다.

    핵발전소 증설과 재처리를 손에 든 박근혜

    다시 2014년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위험천만한 핵은 후손들에게 결코 물려줄 수 없다며 버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물론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핵 마피아의 핵심 일원으로서 후쿠시마 사고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 “원자력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이명박 정부와 다른 것이 있을까? 비통하게도 아니올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당선인 시절이던 2013년 2월, 대통령인수위원회 국정과제토론회에서 “사실 우리가 대체에너지니 (하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황이 그게 우리 전력(충당)이나 이런 것을 할 수가 없다 …중략… 원자력으로 가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발도 연구를 동시에 해 나가야 …중략… 그래서 ‘한국의 원자력은 안전하다’ 국민들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치 ’북한의 위험한 핵’과 달리 ’한국의 원자력은 안전’할 것처럼 말하며, 핵발전소 확대의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올해 초 수립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박근혜 정부는 핵발전소를 지금보다도 18기나 늘려 41기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축사에서 발언한 대로 “원자력 안전문제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동북아는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가운데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어 원자력 안전협의체를 만들어 “항구적 평화와 번영의 틀을 구축해” 나가자니, 이미 핵발전소의 밀집도가 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참으로 대단한 유체이탈 화법이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이기도 한, 박근혜식 화법으로 ‘핵’은 포기하는 걸까? 역시 아니올시다. 이번엔 ‘핵의 평화적 이용’이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 처리’로 업데이트되었다.

    지난 6월 한·미 양국은 워싱턴에서 가진 원자력협정 개정 제10차 협상에서 한국의 재원으로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긍정적 결과를 얻을 경우 재처리를 인정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좁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핵산업계의 주장과 달리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은 그 기술 자체의 경제성과 안전성에서도 타당성이 없어 미국에서도 포기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핵무기 생산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재처리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이다.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들뜬 사이 혹은 전에 없던 정신적 지도자의 언행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 사이,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국민들에게 던진 경축사의 면모. 아직도 광복절을 휴일로만 기억하며, 핵과 원자력을 구분하고, 탈핵을 머뭇거리며, 우리 안의 원폭 피해자들마저 외면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핵 대국 그리고 핵 재앙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녹색당 탈핵특별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