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식민주의의 현장들
    [책소개] 『땅 뺏기』(스테파노 리베르티/ 레디앙)
        2014년 08월 17일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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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과 2008년에 식량 상품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항의 시위가 발발했을 때, 시카고 잭슨 불러바드Jackson Boulevard의 은밀한 마천루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사람들은 시카고 증권 시장을 범죄의 주범으로 여긴다. 이 시장의 투기업자들이 범죄적인 가격 인상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되며,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언론인들이 지구를 굶주리게 만드는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찾아내려고 이곳으로 몰려든다.” – 본문 중에서

    정권을 무너뜨린 대우의 계약

    지난 2008년 대우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비밀 협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대우는 마다가스카르 전체 농경지의 절반(130만 헥타르. 서울 면적의 21배)을 양도 받아 옥수수와 팜유를 생산한다, 토지는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 이에 대한 대가로 대우는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해 준다는 게 주요 계약 내용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이 거래를 폭로하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이 과정에서 170여 명이 사망했다. 결국 계약 당사자였던 대통령 마르크 라발로마나나Marc Ravalomanana 정권은 무너졌다.

    마다가스카르는 전체 인구의 90퍼센트인 2,000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고, 식량 안보가 극히 취약하며, 만성적인 영양실조 비율도 49퍼센트에 달하는 나라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지원을 받는 수혜자만도 85만 명이 넘는다.

    이런 나라에서 농경지의 절반을 외국 기업에 임대하고 수출용 옥수수와 팜오일을 생산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정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우와 마다가스카르 정부 사이의 계약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내용과, 밀실 비밀 협상이라는 형식을 놓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아직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진행 중이라는 사실 또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마다가스카르도 비밀 토지 양도 계약 사건으로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집권 세력이 들어섰지만, 새 정권 아래서도 유사한 거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땅뺏기

    세계적 관심사로 급부상한 땅뺏기(Land Grabbing)

    이탈리아의 좌파신문 <일마니페스토> 국제부 기자인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땅뺏기-새로운 식민주의 현장을 여행하다>를 통해서 대우-마다가스카르 정부 간 성사됐던 유형의 거래는, 현재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땅뺏기’(Land Grabbing) 현상의 일환이라고 밝힌다.

    빼앗는 자들에겐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빼앗기는 자들에게는 기아를 주는 ‘땅뺏기’의 실상은 무엇인가? 왜 이것이 최근 세계적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가?

    땅뺏기는 2007~08년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계기로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 공급 불안과 인구 급증에 따른 식량 가격 급등, 2007~08년 이집트·카메룬·세네갈·볼리비아·멕시코 등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잇따라 일어난 식량 가격 인상 항의 시위, 유럽연합과 미국 등의 탄소 배출 감축 계획에 따른 바이오 연료 수요 상승, 금융 위기로 인한 안전한 투자처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땅뺏기를 부채질했다.

    금융 위기, 식량 위기, 환경 위기, 에너지 위기 등 21세기의 세계를 위협하는 갖가지 위기가 집약돼서 나타난 현상이 땅뺏기이다.

    이런 협약 또는 거래를 추적하는 비정부기구인 그레인Grain의 추정에 따르면 2007년 이래 해마다 공공 소유 농경지 1,000만 헥타르가 민간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34,500배에 달하는 규모다.

    땅을 빼앗는 주체는 초국적 기업과 국제적 투기/금융 자본, 자국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물과 농지가 부족한 석유 부국, 주요 선진국의 중산층도 관계돼 있는 각종 투자 펀드 등 다양하다.

    하지만 땅뺏기의 양상은 단순하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대규모 토지를 무상이나 헐값에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방목하던 농민과 유목민들이 쫓겨난다. 물론 땅뺏기를 추진하는 주체들은 항상 ‘농업 발전, 생산성 향상, 그리고 무엇보다 상생’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나라에게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도로, 항만, 관개 등 기반 시설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저임금 농업 노동자로 전락하는 부작용은 많은 곳에서 목격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카고까지, 원주민부터 초국적 큰손까지

    저자는 이 같은 이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의 ‘땅뺏기’ 현장을 직접 취재한 생생한 현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와 함께 땅뺏기 배후에 있는 큰 손들의 속사정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시카고 곡물/증권 시장, 제네바에서 열린 대규모 땅 투자/투기자의 비밀스런 회의, 땅뺏기 시장의 큰손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 거부(巨富) 등의 현장 취재와 밀착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남수단 등 거대 규모 땅을 국제 임대 시장에 내놓고 있는 국가의 실권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가격(헥타르 당 우리 돈으로 30전부터 8원까지 사실상 무료에 가까우며, 실제로 무상 임대 토지계약이 성사되기도 한다)으로 거래를 성사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초국적 자본 등 토지에 투자한 ‘국제적 실세’들이 자신들의 투자 수익 보장을 위해 현지 정권의 안정을 원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권 안보를 위해 제 나라 땅을 헐값에 내놓고, 제 나라 국민을 굶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규모 토지를 외국 자본에 임대해 주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경우 명백한 선거 부정과 투표 조작이 있었고, 많은 인권 단체들이 분노로 가득한 고발을 했으나 국제 사회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오히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 대표인 캐서린 애시턴은 “에티오피아에서 진행된 투표야말로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라며 “투표 과정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높은 선거 참여율을 보인 점”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정권과 초국적 자본 등이 ‘땅뺏기’를 ‘기회, 발전,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긍정적 측면을 강조할 때 농민 조직 사람들은 이를 두고 ‘도둑질’, ‘신식민주의’, ‘권리 침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두 모델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거대 기관들이 지지하는 모델은 대형 민간 사업체들에 의지하고 있다. 이 사업체들이 생계 수준을 겨우 면하는 농업 부문에서 대규모 생산을 새롭게 개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농민 조직들이 주장하는 모델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며 공적 투자를 호소한다.

    장 지글러 “바이오 에너지는 대량살상무기”

    이 책에서는 또 석유를 대체하는 대안적 에너지로 평가되고 있는 농산 연료(agrofuel. 농산 연료는 농민단체나 시민단체에서 ‘바이오 연료(biofuel)’ 대신 사용하는 용어)가 사실은 대체 에너지 역할보다는 수많은 현지 농민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하는 ‘대량살상무기’ 기능을 할 뿐이라고 비판하는 ‘식량 vs 연료’ 논쟁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전 UN 식량권 특별보고관 장 지글러가 사용한 표현이다.

    브라질과 미국은 장 지글러 등의 입장과는 반대편에 서 있다. 이들 두 나라는 농산 연료를 장려하기 위해 지구 차원에서 벌이는 싸움에서 ‘동지’가 된 것이다.

    2007년 3월, 조지 W. 부시와 룰라가 악수와 포옹을 나누면서 양국의 ‘에탄올 동맹’이 더욱 공고해졌다. 이는 다른 산유국들로부터 독립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에너지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쿠바의 카스트로도 바이오 연료 사용을 지지하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의 환경 정책은 개발도상국의 식량을 고갈시킬 것이라면서 “전 세계에서 30억 명이 넘는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때 이른 죽음을 맞을 운명에 처했다”며 곡물이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면 개도국의 식량난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도 “자동차를 가진 8억 명과 굶주리기 일보 직전인 8억 명이 경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대체 연료로 떠오르는 에탄올 생산을 위해 대규모 토지에 옥수수를 경작함으로써 식용 작물의 공급 감소와 이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이 결국은 세계 빈국의 빈민들을 기아의 고통에 노출시킴으로써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세계은행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식량 위기를 낳은 원인 중 75%가 ‘농산 연료’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일리노이 주가 대규모 옥수수 생산지라는 이유를 들어 ‘석유 대체 효과’ 등 증명되지 않은 근거를 내세우며 옥수수 재배 농가에 보조금 지원을 찬성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 옥수수 가격 인상에 피해를 보는 미국의 축산 농가와 옥수수 재배 농가 사이의 갈등이 미국 전체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남북전쟁 당시의 분열과 흡사’하다고 전하고 있다.

    농민 조직 저항력 키우는 중

    땅뺏기 지역에 거주하는 각종 농민 조직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힘을 키우고 있으며, 국제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등 땅을 뺏는 주체들에 대한 저항 전선을 만들고 있으며, UN 식량농업기구(FAO)를 중심으로 풀뿌리 조직과 정부 그리고 FAO 관리들이 3년에 걸친 교섭 끝에 식량주권위원회가 토지 이용에 관한 지침을 만드는 등 상황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토지 이용 지침에 따르면 약탈적 땅뺏기를 지양하고, 대규모 농업 자본에게 토지를 넘겨주지 말고 현지 소규모 지주들과 제휴를 맺는 방식을 제안하는 등 바람직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지침은 구속력이 없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서아프리카 지역 소농 조직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마두 치소코는 “이 지침이 단순한 공문서로 그치지 않고, 각국에서 입법을 통해 통일적으로 적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땅뺏기 과정이 워낙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확한 수치나 통계자료가 많지 않다. 땅뺏기에 반대하는 농민 단체나 시민 단체에서 내놓는 자료는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땅뺏기’라는 명명 자체가 은유적이고 비난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식량과 에너지의 수요공급 불균형 등 땅뺏기를 불러일으킨 원인들이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테고,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는 점, 국제사회가 가까운 시일 안에 땅뺏기를 규제하는 데 뜻을 모으고 구속력 있는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땅뺏기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은이와 함께 새로운 식민주의의 현장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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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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