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루소 사상의 중요한 열쇠
    [책소개]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장 자크 루소/ 책세상)
        2014년 08월 17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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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문명과 인위적인 사회 제도에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 18세기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그는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성찰한《인간 불평등 기원론》, 기능적 인간이 아닌 자연적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을 주창한《에밀》, ‘인민 주권론’과 ‘법의 지배’라는 원리를 골자로 공화국의 모델을 제시한《사회계약론》등을 남겨 근대 최고의 독창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일부 저작들만 중복 출판되는 등 사상가로서의 중요성과 영향력에 비해 일면적으로 소개되어온 루소의 국내 미번역 글 세 편을 모아 루소전집 11권으로 선보인다.

    루소의 편지를 묶은 이 책에는,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드 보몽이《에밀》을 신성모독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한 교서에 반박하고자 쓴《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한동안 연정을 품었던 두드토 부인에게 전하는 미덕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도덕에 관한 편지》, 말년의 루소가 다방면에 걸친 사유를 풀어낸《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수록했다.

    이 글들은 서로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서간체 글이고《사회계약론》,《에밀》,《신엘로이즈》 등의 주요 저작에서 표명한 교육, 철학, 도덕, 종교에 대한 견해를 해명하고 보충하며 해설하는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세간의 오해와 박해에 맞서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자 한 루소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삶과 사상을 좀 더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편지, 루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루소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악보 연구서를 발표하고 달랑베르의 부탁으로《백과전서》의 음악 관련 항목을 작성하는 등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마흔 전후로는 디종 아카데미의 공모에 제출한 논문《학문예술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근대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회의를 나타냄으로써 신선한 파문을 일으킨다. 정치와 사회, 예술과 학문에 관한 독창적 사유를 펼쳐나가면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루소는 프랑스 음악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인《프랑스 음악에 대한 편지》로 오페라 극장 출입을 거절당하는가 하면《백과전서》의 ‘제네바’ 항목을 문제 삼고 무대예술을 공격한《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로 한동안 교유하던 볼테르, 디드로 등의 지식인들과 절연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루소는 서간체 글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역시 편지 형식의 장편 연애소설《신엘로이즈》를 통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로써 서간체 글이 갖는 힘과 호소력을 절감한 그는 평생에 걸쳐 편지 형식의 글을 즐겨 썼고, 자신의 작품을 읽고 감상을 전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독자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는 성실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쓴 편지와 동시대인들에게서 받은 편지 및 관련 글들을 모은《서한 전집》만 해도 5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경위, 출판 전후에 겪은 일과 그 영향, 인간관계, 심리 상태 등을 소상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로소-보몽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에밀》비판에 대한 반박, 계시의 신에서 이성의 신으로

    루소는 에밀이라는 고아가 출생에서 결혼까지 아주 이상적인 가정교사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에밀》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선(善)을 보존하고 발전시킴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이끈다는 교육론은 물론, 인간관과 사회관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고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타파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탓에 예수회의 출판 방해 공작을 받기도 한《에밀》은 네덜란드에서 출간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프랑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루소는 총 5부로 구성된《에밀》 제4부의〈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서 신을 인정하되 만물의 창조자이자 주관자라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에 직접 관계하는 섭리와 은총, 기적, 계시 또한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이신론(理神論)을 펼쳐 보인다.

    이 때문에 정통 유신론자들의 분노를 사서 구속영장을 발부 받고 경찰에게 쫓기게 되며《에밀》은 판매 금지를 당하고 심지어 파리에서 불태워지기까지 한다. 도피처로 생각했던 고향 제네바에서도《에밀》과 《사회계약론》의 판매가 금지 당하자 루소는 스위스 뇌샤텔 주의 모티에에서 은거한다.

    이때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드 보몽이《에밀》에 담긴 종교관이 신성 모독적이고 이단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자 1762년 8월 28일자로 발간한 교서를 접한다. 평소 존경해온 대주교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대주교가 자신의 견해를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인신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억울해한다.

    루소는 교서의 내용을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10월경부터 서한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3월《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판한다.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의 단편들’은 루소가 이 글의 초안에서 표현이 거슬리거나 또 다른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제외한 부분을 나중에 모은 것이다.

    루소는《에밀》을 비롯한 저서로 인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환기한 뒤, 모든 원죄에 대한 생각들에 반대하는 자신의 견해에 내재한 근본 원리, 전통적 교육에 대한 비판, 이성과 양심의 신에 대한 신앙 고백, 자연 종교의 신과 역사적 종교들의 신, 기독교도로서의 긴 신앙 고백, 교서에서 대주교가 언급한 기적과 계시, 매개자 없는 종교에 대한 논평 등을 펼쳐 보인다.

    결국 이 편지는 보몽 대주교가 교서를 통해 비난한《에밀》의 주장들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여러 사례로써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요하리만치 보몽이 비난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을 변호한 루소는 “대주교 예하, 당신은 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셨는데, 앞에서 저는 당신이 저를 중상하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와 같은 일 개인이어서 공정한 법정에 당신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저는 저의 책을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교서를 가지고 함께 출두한다면, 당신은 분명 그곳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당신이 공개적으로 모욕했던 것처럼 공개적으로 제게 사과할 것을 강요받았을 것”이라며 권위에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어조로 편지의 끝을 맺는다.

    보몽을 극존칭하며 호명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루소의 담대함이 잘 드러난《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대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파리에서 다시금 파문을 일으켰고 제네바 당국은 대주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 책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도덕에 관한 편지
    -연인에게 들려준 미덕과 행복 이야기

    《신엘로이즈》를 집필 중이던 1757년 봄, 루소는 후원자 데피네 부인의 시누이로서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피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깊이 빠져 처음 세 달간 거의 매일 부인을 만나며 정열을 불태운다.

    당시 두드토 부인에게 자신의 소설 주인공 쥘리의 모습을 투영하여 사랑에 도취되어 있었던 루소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쥘리와 생 프뢰의 사랑을 생생하고도 현실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다.《도덕에 관한 편지》는 사랑하는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미덕과 행복에 대한 선생’ 역할을 자임하고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다.

    루소는 서두에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히면서 “이 편지들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쓰이지 않았으니, 당신의 동의 없이는 이 편지들이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임을 당신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라고 했으나 내심 두드토 부인이 출판해주기를 바라며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고 교정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두드토 부인에게는 끝내 이 글을 보내지 않았다.

    루소는 총 6편으로 이루어진 이 편지에서 두드토 부인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추억, 삶과 행복, 도덕성, 지식, 감각, 이성, 신앙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에게서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우세요. 그러한 행복만이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복이며, 다른 행복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하며 두드토 부인이 보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제시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따라야 한다고 부드럽게 권유한다.

    이 편지는《에밀》제4부 속〈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 내용의 일부분이 차용된데다《신엘로이즈》에서 죽어가는 쥘리가 토로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

    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
    -신앙, 미덕, 자유, 고통, 철학에 대한 말년의 사유

    1769년 사람들이 자신을 중상 모략한다고 생각하여 정신적 압박을 받던 루소가《고백》제7권을 집필할 당시에 쓴《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는, 프랑키에르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추정된다. 프랑키에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프랑스 도피네 지방의 귀족이었을 것”이라는 한 루소 연구가의 추측이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다.

    노쇠해진 루소는 잠시 기력을 되찾은 틈을 타 답장을 하는 것이라며, “당신 편지의 요점들에 대한 제 견해를 당신이 받아들이게끔 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의도라고 밝힌다. 그리고 신, 예수, 신앙, 기적, 미덕, 인간의 의무, 자유, 선행, 고통, 철학 등 그동안 여러 저서에서 표명했던 견해들을 기억을 더듬어 담담히 기술한다.

    특히 루소는 그동안 도피 생활에 지치고 추적 망상, 박해 망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한 탓인지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고통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해온 흔적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면밀히 살펴볼 때, 저는 죽음에 대한 감정과 고통에 대한 감정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증명했습니다. 이 감정들을 자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입니다. 기상천외하게 꾸민 그들의 말들과 야비한 기관(機關)들이 없다면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그것은 인간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 외에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처럼 신에게서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하여 고통을 겪는다는 점을 지적한 루소는 신과 인간, 생명, 기쁨, 자유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드러내며 말년에 이르러 자연스레 죽음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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