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울 실바 엔리케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성직자
        2014년 08월 13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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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찬홍님 페이스북의 글을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그를 배출한 남미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 중에 하나인 라울 실바 엔리케스(Raúl Silva Henríquez) 추기경을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칠레에서는 성인 반열에 오른 인물로 칠레 500페소 동전의 모델이기도 하다.

    라울 실바는 개혁 교황인 요한 23세에 의해 1961년 수도인 산티아고의 대주교, 1962년에는 추기경에 임명되어 칠레를 대표하는 성직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좌파 연립으로 집권한 아엔데 정권이 피노체트 장군의 군사쿠데타로 무너진 후였다.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피노체트는 저항하는 민중세력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살아남아 미국 워싱턴으로 망명한 아옌데 정권의 외무장관까지 암살했다.

    피노체트가 집권한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 동안 공식 보고서 집계로만 3천197명이 정치적 이유로 살해됐고 1천여 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수천 명이 불법 감금된 채 고문을 당하고 강제 추방됐다. 이 당시 국민의 10%가 학정을 피해 이주할 정도였으니 피노체트가 얼마나 악독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라울 실바 추기경은 칠레처럼 군부통치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교회와 달리 침묵하지 않고 민중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제들에게 ‘그대들이 나서서 죽어가는 국민들을 보호하라’고 말했고 사제들은 거리로 나가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평신도 옆에서 함께 했다. 당연히 사제들도 희생자가 됐다. 피노체트 정권은 정의의 수호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제들을 잡아 고문하고 7명을 살해했다.

    라울 실바는 정권으로부터 ‘빨갱이 추기경'(Red Cardinalis)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가톨릭교회는 물론이고 정교회와 개신교, 유대교까지 포괄하는 ‘정의평화위원회’를 구성하고 피노체트의 만행에 저항했다.

    교회의 저항으로 칠레 국민들도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철권을 휘둘렀던 체노피트도 권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칠레 국민들은 “만약 라울 실바 추기경을 비롯한 사제들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회 안에서 거룩한 미사만 드렸다면 칠레 국민이 간절히 원하던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라울 실바는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공공 주거지, 토지 개혁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1978년 UN 인권상, 1979년 10월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견 차이로 산티아고 대주교직 사퇴를 권고 받은 뒤 사제직에서 은퇴하고 1999년 4월 9일 라 플로리다에서 91세로 사망했다.

    라울 실바

    라울 실바 추기경과 그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사진=백찬홍님 페이스북)

    이에 칠레 정부는 5일간의 국가적인 애도를 선포하고 이듬해인 2000년 500페소 주화에 그의 얼굴을 새겨 넣어 위대한 삶을 기리도록 했다. 현대국가에서 성직자가 국민의 동의를 받아 화폐의 주인공이 되는 보기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라울 실바, 그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민중의 벗으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엘살바도르),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브라질) 등과 함께 남미를 상징하는 성직자로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것이다.

    오스카 로메로: 엘살바도르의 대주교로 애초에는 수구적인 인물이었으나 동료 신부가 군부세력에게 살해당하자 민중의 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1980년 미사 도중 암살됐다. 바티칸에서는 그를 성인에 준하는 복자로 인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로메로는 암살당하기 전 “그들이 나를 죽여도 나는 엘살바도르 민중 안에서 부활할 것이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돔 헬더 까마라: 브라질 최대도시인 상파울로 지역의 대주교로 봉직했으며 극심한 빈부격차는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독재정권과 재벌의 경제독점에 맞서 싸움으로 브라질 교회의 위상을 새롭게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르고,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는 발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필자소개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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