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뚝의 폭염 날리는 시 한 편
    차광호의 굴뚝일기(5) 조성웅 시인이 건네준 시집
        2014년 08월 11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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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웅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굴뚝 고공농성을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페이스북으로 인사를 주고받고, 글이 올라오면 댓글을 달고,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의 생각이 오고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성웅 시인이 시집을 선물해 왔다. 밥과 물밖에 올라오지 않는데 밑에 있는 동지들이 어지간히 세게 싸웠는지 며칠 전에 시집이 올라왔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투쟁 의지, 삶의 목표, 동지에 대한 배려, 개량주의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한 편 한 편씩 읽기로 했다. 시를 읽으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지금의 나의 모습, 동료들의 아픔이 겹쳐져 눈물이 흐른다. 시가 나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굴뚝의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 한 편이 시원하게 어루만져 준다.

    그런 작은 영웅, 큰 시인이자 동지인 조성웅 시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오후 늦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저 아래 차도에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처음에는 근처 공장에 다니는 일반 노동자로 착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한 노동자는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얻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자세, 그 때서야 조성웅 동지라는 것을 알아 봤다.

    맨 목소리로 안부를 묻어도 잘 들리지가 않는다. 무전을 했다. KEC지회의 이미옥 부지회장이 무전기를 갖고 와서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갔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전기 상태가 온전치 않다. 그래도 안부를 묻고 시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도 함께 왔다고 한다. 아내를 위한 시를 보면, 아내 또한 세상이 행복해지기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 동지임이 분명한데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아 아쉬웠다.

    정문으로 이동한 그는 금요문화제에서 시낭송을 한다. 첫 번째 낭송이 ‘개량주의자에 대한 첫 번째 포고’다. 그리고 차헌호 동지에게는 금강화섬 공장점거파업을 그린 ‘투쟁사업장의 아침’을, 화물연대 구미지회 여귀환 지회장께는 박종태 열사 투쟁을 그린 ‘내전의 총성으로 살겠습니다’를, 굴뚝 희망버스를 준비하는 해복투와 지역대책위 동지들께는 한진중공업 1차 희망버스를 그린 ‘꽃피는 총’을 낭송해 주었다.

    굴뚝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들리다 안 들리다 한다. 답답해서 무전을 했다. 지원이가 받는다. 시 낭송이 잘 들리지 않아 녹음하고 있냐고 물었다. 못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듣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어쩔 수 없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찾아가서 들어야 할 것 같다. 아니, 다시 와서 시 낭송을 해 주면 좋겠다. 이런 동지들이 있어 세상은 한발 앞으로 전진해간다. 투쟁 속에서 동지를 만나는 건 행복이고 혁명이다. 그래서 한번은 살아 갈만한 세상이다. 꼭 이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삶을 일깨워 주신 김승호 선생님,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선생님과 동지들께 감사한 하루다.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첫 번째 포고
    -2012년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부쳐

    더 이상 날 동지라 부르지 마라
    민주노총 소속 같은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투쟁 현장에서 몇 번 구호를 함께 외쳤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뜻을 함께 하는 동지가 아니다

    1998년, 민주노총 합법화를 위해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파견법을 합의해 준 너는

    2004년, 국회의원 선거 한다고 날 찾아 와
    박일수 열사 투쟁을 접으라고 한 너는
    민주노총 깨 버리려 작정 한 거냐
    박일수 열사 투쟁을 접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날 협박했던 너는

    2005년, 비정규직 악법 폐기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을 기꺼이 폐기하고
    총총총 사회적 합의주의로 게걸음 질 친 너는

    2005년 류기혁 열사를 열사가 아니다고 규정했던 너는
    열사투쟁을 조직하라는 항의를 종파주의자들의 분열책동이라고 매도했던 너는

    2007년, 민주노조 깃발을 위로금 몇 분으로 맞바꿔치기 한 합의서에 직권조인 한 너는
    하청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쥐고 사람 목숨을 매매 했던
    대공장 정규직노동조합 간부였던 너는

    2010년,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는 지금 당장 불가능하니
    현안문제부터 풀자며 점거파업 해제를 중재했던 너는
    점거파업 해제를 위해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김밥 가지고 장난 친 너는

    2012년 11월 11일, 자본가들을 만나고 악수하고 반갑게 협력하는 것이
    확고한 정치적 신념인 너는
    2012년 11월 11일, 밥 쳐 먹고 허구한 날 교섭하고 중재하고 타협하고
    굴종을 강요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인 너는
    2012년 11월 11일, 이 땅 저임금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짓밟고 서서
    어쭙잖게 노동자들을 대표하겠다고
    부르주아 선거에 목매달고 있는 너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운동 내부로 파견한 자들,
    자본가계급의 마름이다
    화해할 수 없다
    난 너의 적이다
    난 너와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마주 설 것이다

    난 나의 권리를 대의하겠다고 나선 자들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직접결정 할 것이다

    공황은 중무장한 용역깡패들처럼 우리 삶을 침탈하고 있는데
    더 이상 속절없이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피눈물 흘리며 축출당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로자처럼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결단코 난
    너와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마주 설 것이다

    2012년11월11일 조성웅

    필자소개
    스타케미컬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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