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 거대한 창작의 바다
    [책소개] 『수학자들』(알랭 콘 외/ 궁리)
        2014년 08월 09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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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간 대한민국 서울에서 ‘수학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기초학문분야 최대의 국제학술대회인 세계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가 개최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 세계 100여 개국 5,000여 명의 수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중요한 수학적 업적들을 평가 및 시상하고, 다양한 수학 분야에 관한 토론 및 대중강연들이 열릴 예정이다. 특히 개막식에서 발표 및 수여되는 수학 분야의 최고 영예인 필즈 상 시상식은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세계적 수학자 54인이 쓴 수학 에세이집 <수학자들>(원제: Les dechiffreurs: Voyage en mathematique)은 수학과 이론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부터 필즈 상 수상자, 젊은 박사논문 준비생들까지, ‘수를 해독하는 자들’이 직접 털어놓는 진솔한 일상의 모습과 삶의 철학, 그리고 그들 각각이 저마다 생각하는 수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는 책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이 책의 저자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 세드릭 빌라니와 장 피에르 부르기뇽은 대중강연 이벤트인 수학 영화 상영회의 사회 및 진행을 맡고 있기도 하다.

    “세기의 전설 한가운데에 수학을 놓는 새로운 흐름을 꿈꿀 수 있을까? 모든 문화를 양식으로 삼아 그것을 초월해서 새로운 차원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수학이 가능할까? 늘 새로운 수학의 모험은 하나의 도전에서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진다. 그 도전은 수학이라는 영토 안에서 생겨날 수도 있고 다른 과학자들, 엔지니어들, 혹은 의문이 생겼을 때 모르고 지나가는 것을 참지 못하는 호기심 많은 이들이 가져다주는 외부의 원천에서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환상에 젖지 말자.…” – 장 피에르 부르기뇽(본문 중에서)

    수학자들

    수학이란 무엇일까? 수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수학자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할까? 그저 복잡한 수식이나 계산할까? 그들에게 직관이란 무엇일까?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오갈까? 논리적 사고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수학자들의 반짝이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등등,

    수학에 대한 수많은 문답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배경에는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가 있다. 고등과학연구소는 수학과 이론물리학 분야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의 발전을 위할 수 있도록 설립된 프랑스의 연구소로, 미국 프린스턴에 위치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더불어 세계의 수학.이론물리학계를 이끌어가는 양대 산맥 중 하나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200명 정도의 방문학자들이 고등과학연구소에 머무는데, 이곳에서의 연구는 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각의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알아서 하도록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에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장 부르갱을 비롯하여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알랭 콘, 피에르 들리뉴, 르네 톰, 피에르 카르티에, 미하일 그로모프, 막심 콘체비치, 로랑 라포르그 등 세계 일류의 수학자들이 이곳에서 생각을 나누며 연구한 것으로도 명성이 높다.

    총 54장의 수학 에세이와 7막의 쉬어가는 페이지로 구성된 본문은 어려운 수학의 공식이나 정리가 아닌 수학자 개개인의 진솔한 경험담과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마치 한편의 뮤지컬을 보듯 즐겁고 재미있다.

    또한 홀로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는 수학자, 대강당의 대형 칠판 앞에서 승천을 시도하는 수학자, 분필이나 연필 끝에서 교류하는 수학자, 동료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수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상적 면모를 잘 포착한 장 프랑수아 다르스가 찍은 160여 장의 사진이 글과 함께 더해져, 수학이라는 학문에 관한 고찰, 수학자의 흥미로운 추억과 일화, 수학자들이 직접 털어놓는 그들의 헌신과 열정, 희열과 좌절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더 생생히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수학의 기본은 배우면서 수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하면서 수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이 아니라 행위가 중요하다. 물론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다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기하학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제대로 소화도 못하면서 지식만 자꾸 흡수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내가 보기에 수학자가 되는 것은 반항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수학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어떤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책에서 읽은 내용이 그 문제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주관적 관점과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대부분은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만 직관과 증명에 근거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무지(無知)가 대수인가. 게다가 그것을 계기로 수학에는 절대적 권위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열두 살배기 학생도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보일 수만 있다면 선생님과 동등해질 수 있다.…” – 알랭 콘(본문 중에서)

    “칠판이 있다. 그 앞에 남자 둘이 앉아 있다. 광경이 벌어지는 내내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중 한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칠판에 공식 하나를 적더니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그러자 다른 남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공식을 고쳐 쓴다. 수학자가 연구하는 모습,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 인간관계를 맺는 모습을 과장해서 표현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게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수학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 수학자들의 활동을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그리고 때로는 매우 정교하게 그린 작가와 감독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런데 수학자(남녀 구분 없이 수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총칭)들은 조용하지도 않을뿐더러 ‘공식’의 교환이 그들이 나누는 의사소통의 다가 아니다.” – 장 마르크 데주이에(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이제는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1과 같거나 큰 자연수 n이 있다. n이 짝수라면 2로 나누고, n이 홀수라면 3을 곱한 다음 1을 더한다(3n+1). 예를 들어 n이 13이라면 40, 20, 10, 5, 16, 8, 4, 2, 1을 차례로 얻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처음에 출발한 수가 무엇이든 간에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1을 얻는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리는 바람에 소련이 미국의 연구를 늦추려고 꾸민 음모라는 농담까지 유행할 정도였다’는 설명이 되어 있다. 잘 풀어보시길!” – 로랑 베르제(본문 중에서)

    “자기와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동료를 약간 무시하는 것이 수학자에게는 흔한 일이다. 목적도 없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주제를 연구하는 이 인간이 느끼는 변태적 즐거움은 뭘까? 다른 분야가 숨기고 있는 아름다움을 느껴보려고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흥미로운지 전혀 알 수 없는 분야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수학에 투사할 때가 많다는 것이 내 이론이다. 몇 가지 분명한 사례들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상을 분류하는 것은 수집가의 본능을 드러내는 것이고, 최댓값을 구하려는 것은 탐욕의 발상이다. 계산가능성과 결정가능성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뭐든지 완전히 장악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된다. 반복과정에 홀딱 빠져 있는 것은 리듬 있는 음악에 취해 있을 때와 비슷하다.” – 막심 콘체비치(본문 중에서)

    이처럼 독자들에게 수학이라는 거대한 창작의 바다를 탐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선사하고 있는 이 책은, 무엇보다 점수와는 무관하게 창의적으로 수학을 즐기고 과학을 만끽하고 생활화하는 데 큰 의미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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