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보며 여름을 견디다
        2014년 08월 07일 0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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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운 여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러 가지로 바쁘고 혼란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이다. 그래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온다. 이 더운 여름에 볼 만한 영화 몇 편을 유하라 기자가 추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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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독 : 빌 어거스트
    배우 : 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휴스턴

    우연을 필연적 사건으로 바꾸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영화 속 말처럼,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은 ‘우연히’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의 손에 쥐어진다. 그는 책 한 권만 들고 체온 없이 흘러가던 자신의 삶을 뒤로 한 채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가 살았던 혁명의 바람이 불던 1970년대의 뜨거웠던 삶에 빠져들어, 과거에 상처 받은 현재를 위로하고 화해시킨다. 그의 리스본 여행은 우연에서 시작해 그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필연적 사건이 된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여행을 한 그레고리우스는 과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리스본행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

    <북촌방향>
    감독 : 홍상수
    배우 :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영화감독이던 성준(유준상)은 선배를 만나기 위해 북촌을 찾는다. 며칠간의 북촌 여행에서 그는 낯선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신다. 술자리에서 흔히 나오는 그저 그런 말들과 반복되는 에피소드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인물들의 ‘찌질함’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한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내가 그들의 술판에 끼어 있는 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
    감독 : 우디앨런
    배우 :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당장이라도 티켓을 끊어 파리로 날아가 버리고 싶을 정도로 멋진 영화다. 약혼녀와 떠난 파리 여행에서 홀로 산책을 하던 소설가 길(오웬 윌슨)은 클래식 푸조를 타게 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예술이 부흥하던 1920년대, 그는 그 곳에서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럴드 등을 만난다. 평소 동경하던 어마어마한 예술가들을 만나 예술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공유한다. 자본이 문화를 잠식해버린 현실을 비관하던 길에게 1920년대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이다. 파리의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를 온전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영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감독 : 빌리 와일더
    배우 : 잭 레몬, 셜리 맥클레인, 프레드 맥머레이

    예나 지금이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다른 게 없다. 해피엔딩이기는 하다만 그 결과로 가는 과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소심하고 성실한 보험회사 직원 버드(잭 레몬)는 자신의 아파트를 회사 상사의 불륜 장소로 대여해준다. 고열에 시달리는 한밤중이라도 예외는 없다. 잠옷 바람으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 벤치에 앉아 있는 버드를 보고 있으면 내 자신까지 처량해진다. 어찌됐든 그 덕에 초고속 승진도 하게 되고 평소 짝사랑했던 회사 엘리베이터걸인 프랜(셜리 맥클레인)에게 데이트 신청도 한다. 그러나 프랜은 바람둥이 유부남 상사의 연인이다. 심지어 버드는 둘을 위해 집까지 빌려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버드는 아파트를 빌려주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러자 상사들은 버드의 승진을 취하하고 회사에서 내쫓기까지 하려 한다. 버드는 회사에서 끝까지 버티려하지만 치졸한 상사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결국엔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온다. 한편 바람둥이 상사에게 버림받은 프랜은 버드의 집에서 자살을 기도하고 버드는 그런 프랜을 구해준다. 버드는 프랜을 위해 사회적 성공을 포기하고 프랜은 버드의 진심을 느끼고는 남자를 통한 신분상승의 꿈을 접고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1960년대 직장인의 비애가 지금도 남 일 같지 않다는 점에서 우울하기도 하지만, 유쾌한 캐릭터가 현실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따뜻한 영화다.

    <데미지>
    감독 : 루이말
    배우 :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돈, 명예, 행복한 가정까지 모두 가진 스티븐 플래밍(제레미 아이언스)은 아들의 애인 안나 바튼(줄리엣 비노쉬)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행복했다. 무언가를 온전하게 자신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이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아들의 애인이자, 스티븐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 온 처절한 사랑이다. 첫 만남부터 스티븐은 상처와 결핍으로 가득찬 안나에게 빠져 들었다. 서로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금기된 사랑을 시작한다. 그 사랑은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 자신만의 온전한 선택이다. 하지만 안나는 스티븐과의 만남과는 별개로 스티븐의 아들과 결혼까지 하려 한다. 안나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티븐은 점점 피폐해지고 사랑을 갈구한다. 그 결말이 어떤 형식으로든 파국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던 스티븐은 결국 그 대가로 안정적인 삶과 가족 모두를 잃는다. 아들의 연인을 탐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이지만, 누가 그를 욕할 수 있을까. 일단 한 번 보시길. 더불어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의 ‘눈 연기’(?)는 대사가 불필요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데미지

    데미지의 한 장면

    <지구를 지켜라>
    감독 : 장준환
    배우 :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

    미친놈 혹은 찌질이로 치부됐던,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를 껴안고 태어난 한 남자가 세상을 구하는 그저 그런 히어로물은 널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전쟁과 학살 등 인간의 폭력성과 공격성, 잔인함을 지켜보던 외계인은 보다 못해 지구를 폭파하기로 한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바로 병구다. 병구 또한 인간의 폭력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피해자이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지구를 지키려 한다. 개기월식까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 굳게 믿는 병구는 외계인으로 추측되는 유제화학 사장인 강만식(백윤식)을 납치해 별 기상천외한 고문을 하며 외계인 왕자와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이 영화는 인간이 자행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무자비함에 경종을 울리며 잘못 돌아가고 있는 사회와 인간을 풍자한다. 기대 없이 봤다가 ‘미친 걸작’을 만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배우 : 마에다 코기,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조, 오츠카 네네

    부모님의 별거로 류(마에다 코기)는 반으로 갈린 가정에서 산다. 때문에 류의 소원은 가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함께 사는 거다. 그러려면 마을의 화산이 폭발해 동네가 사라져야 한다고 류는 생각한다. 매일처럼 화산이 폭발하기를 기대해보지만, 화산은 재만 내뿜을 뿐 도무지 폭발할 기미가 없다. 그러던 중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은 친구, 가면 라이더가 되고 싶다는 동생과 함께 기적이 일어나는 그 곳으로 떠난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그 여정에는 다시는 그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들의 도움의 손길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알아차릴 수 없는 기적을 만나기도 한다. 끝내 기적의 그 곳에 다다른 아이들은 기차가 스치는 순간 큰 소리로 소원을 빈다. 기적이 일어나든 아니든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 눈물이 날 정도다. 더불어 영화 속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순수하다.

    <우리도 사랑일까>
    감독 : 사라 폴리
    배우 : 미쉘 윌리엄스, 세스 로건, 루크 커비

    여행 작가 마고(미쉘 윌리엄스)는 다정한 남편과 5년차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일 때문에 간 여행에서 매력적인 남성 다니엘(루크 커비)을 만나게 되고 그가 앞 집 남자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마고는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다니엘에게 이끌리는 마음 때문에 혼란스럽다.

    이 영화는 사랑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사랑에 관한 어떠한 환상도 없다. 오히려 사랑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사랑을 버린 자와 빼앗은 자를 향한 질책도 없으며 사랑을 빼앗긴 자에 대한 연민도 없다. 그저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섬세하게 보여줄 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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