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불신의 사회
        2014년 07월 31일 1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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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오슬로에서 지난번의 한국 체류의 경험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도한(渡韓)할 때마다 늘 느끼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 사회의 기적적으로 낮은 사회적 신뢰의 수준입니다.

    대개는 한국 사회를 학술적으로 설명할 때에 예컨대 “기업국가”,”재벌 공화국” 내지 “종속적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하곤 하는데, “재벌 공화국”이 함의하는 부와 권력의 비대칭적 분배/불평등은 확실히 내부자들의 체감의 차원에서 무엇보다도 곧바로 “모두들의 모두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세계체제 핵심부에 종속돼 있는 몇몇 재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여 다수의 실질적인 참정권, 즉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박탈할 때 아노미, 즉 무기력증과 상호적 소외에 빠지는 사회가 도착하는 종착점은 바로 “완전 불신의 상태”인 모양입니다. 저는 이번에 한국에서 그 “완전한 불신”의 커다란 그림을 여실히 봤습니다.

    “지식인”들이 한국인의 국가주의를 타령하지만, 이 “국가주의”라는 건 무기력해진 사회가 국가의 규율화 권력/폭력을 제지할 능력이 없다는 걸 의미할 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라사랑 교육” 받으라면 받으라는 대로 받고, 고교시절에 공부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에서 다들 하듯이 취업, 즉 자기 판매 전략을 구사하면서 사용자가 좋아할 것 같은 스펙을 다 쌓고, 군대에 끌려가는 대로 끌려가고 예비군 훈련을 받으라면 받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신뢰하냐 하면 절대 그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이번에는 절반 넘어 “유병언 변사체”에 대한 국과수 조사 결과를 못 믿는다고 여론조사 결과 나왔습니다. 학생 내지 사무원, 즉 좀 더 많이 읽고 지식이 많을수록 더더욱 안 믿죠.

    사회적 신뢰에 대한 여론조사들을 보면 국가기관들은 늘 신뢰도의 “꼴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정부를 신뢰한다는 사람은 약 23%밖에 없는데 (관련기사 링크) 이는 대부분 산업화된 국가의 “정부 신뢰도”의 절반에도 못미칩니다.

    경쟁사회

    근혜 할매의 지지도는 그것보다 더 높은 40~50%라는 것은, 결국 할매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영남인들과 그 주변 인자들의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차피 정치인은 다 도둑인데, 그래도 우리 지역 출신의 도둑은 우리에게 덜 해롭고, 어쩌면 지역 발전에 기여하겠다, 대체로 이 정도입니다.

    한국인들은 국가/정부 권력에 “노”를 쉽게 못해도, 국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NGO나 종교조직 등에 비해서도 가장 불신하죠.

    국가만 불신의 대상인가요?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고용주/소속 조직도 극도로 불신했습니다. 고용주가 요구하는 고강도 노동이라든가 잔업 등등을 다 수용하면서도 “이 사람/조직이 나를 제대로 챙겨주겠다”고 믿는 사람을 저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선후배 관계”를 “한국 문화의 특징” 등등으로 본 “한국 문화 소개서” 따위들이 지금도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계속 필독으로 꼽히지만, 제가 관찰한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직장 동료 (“선후배”) 사이의 관계는 주로 은근한 – 때로는 아주 아주 명시적 – 경쟁으로 점철되고, “배려”나 “상호 의존”과는 멀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가다가 “언론 때문에 사회 의식이 오도된다”고 한탄하지만, 그 놈의 언론을 신뢰한다는 사람들은 2년 전에도 44% 정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링크).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뒤에는 과연 몇 %나 될까, 싶습니다.

    국가, 고용주, 기업, 언론 등등은 무능하면서도 욕심이 많은 포식자로 통하는 건 한국 사회이고, 이 사회 속에서는 개개인이 그러면서도 서로서로 “경쟁”하면서 그 포식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불신의 분위기에서 “가족”도 절대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주의”?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에서 가족은 그나마 마지막 안식처이긴 하지만, 평생 올인해왔던 자식들에게 늘그막에 홀대를 받을 것 같아 자식 눈칫밥 먹느라 애를 쓰는 부모들을 보면 안쓰럽기만 합니다. 가족도 절대적으로 자본주의적 “이용”과 “계산” 관계의 예외는 못되죠.

    한국에서 광신성이 높은 종교집단들이 번창하는 이유는, 실은 이와 같은 “불신의 지옥”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나마 작은 규모의, 어떤 초자연적 힘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똘똘 뭉친 소사회에서는 “불신 공화국”의 시민은 어떤 안락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다들 잠재적 적/기만자/사기꾼/경쟁자들이니 말입니다…그런 사회에서 자살률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계속 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만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왜 이 불신의 지옥으로 떨어졌을까요?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외삽적인 기원이 큰 문제인 듯합니다. 외부의 후견세력들이 인정을 해야 집권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외부의 군사지원/차관 등에 권력자들이 의존하는 만큼 밑으로부터의 민의에 무관심해도 문제가 없었고, 관존민비의 태도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비극의 현장에 가서도 사진 찍는 저들의 태도를 보면 지금도 관존민비의 전형 그대로입니다. 외삽적인 국가권력이 창출한 독점 대자본도 크게 봐서는 “밑”과 무관해왔습니다. 외국에서 돈 빌려서 고강도의 착취로 재산을 불려 그 재산의 상당 부분을 다시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니까 말입니다.

    개발국가는 체제 경쟁 등의 차원에서 개별 자본의 약탈성을 조금이라도 견제하는 역할도 있었지만,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재산 빼돌리기” 따위는 더더욱 번성하게 됐죠.

    외국 “이론” 수입에 바쁜 “지식인”들을, 과연 “아랫것”들이 신뢰할 이유라도 있기나 하나요? 이 “지식인”들이 데리다나 지젝에 빠진 그 열성으로 과연 예컨대 노점상에 대한 국가탄압의 역사를 탐구해볼 생각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나요?

    이미 1997년 이전에도 “불신의 시대”이었지만, 신자유주의 도입은 이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켰을 뿐입니다. 개개인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선후배” 등 과거의 시혜/수혜/후견 관계 네트워크 등 의사 가족 조직체들이 흔들리고 결국 “가족”이라는 한국 사회의 중심체까지도 동요하여 해체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 폐허에서 남은 것은? 불신과 경쟁, 경쟁, 경쟁입니다.

    새로운, 수평적이며 평등한 공동체 의식은 그 어떤 국가나 “지식인” 집단도 우리에게 “하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식은 2008년 촛불 항쟁과 같은 공동의 투쟁에서 태어나 단련되고, 총파업이나 집회 현장에서 굳혀집니다. 부당한 권력을 같이 거부하는 현장에서 “나”의 고립과 “타자”에 대한 불신이 극복됩니다.

    꼭 거창한 “거국적” 투쟁뿐만이 아니라, 예컨대 지역 차원에서 해직자를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장기 투쟁 현장과 연대하는 등의 “작은 실천”도 불신 극복에 매우 핵심적입니다. 결국 이거야말로 “자살 공화국”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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