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정의,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회복적 정의] '정의' 패러다임의 변화 ②
    2014년 07월 30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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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회복적 정의’,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 링크

에피소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박00군은 같은 반 최00군에게 어느 날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학교 화장실에서 몇 차례 구타를 당했다.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박군은 그 후로 계속해서 최군의 괴롭힘에 시달려야만 했다. 반에서 대놓고 하는 괴롭힘이 아니라 방과 후에 자신과 단 둘이 있을 때에만 때리고, 돈을 가져오게 하고, 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도록 했다. 최군이 다른 이유로 전학을 간 이후에도 계속되던 괴롭힘은 점점 강도가 세져서 이제는 담뱃불로 박군의 털을 태우기도 하고 몸에 담뱃불 화상을 입히는 정도로까지 점점 그 강도가 강해져 갔다. 결국에는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을 본떠서 성추행과 고문을 일삼기까지 하였다.

6개월 이상 계속되던 괴롭힘은 박군의 친구가 억지로 박군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신고함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에게 행해졌던 일들이 알려진다는 생각에 박군은 창피함과 걱정이 앞섰고, 최군으로부터 올지 모르는 보복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가해자

경찰에 조사를 받게 된 최군은 이제 자신의 잘못이 부모와 다른 사람에게 밝혀진 이상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후회와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찰과 부모에게 잘못했다는 진심어린 사죄를 했고 당분간 누구와 만나는 것도 자제했다. 충격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대하던 부모도 그냥 있으면 자식의 인생을 망칠 것 같아서 피해자를 찾아 사죄의 뜻을 전하고 법적으로 자식의 벌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아보게 되었다.

수없이 피해자를 찾아다닌 끝에 합의를 거부하는 박군과 어머니를 포기하고 어렵사리 가족과 별거중인 박군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고용한 법률 사무소의 지시대로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합의금을 지불하고, 성추행과 같은 친고죄를 자식의 혐의에서 빠지도록 했다. 물론 자식이 잘못을 했지만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군은 피해자 박군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된 범죄라는 것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려차례 들어 알게 됐다. 이제 최군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부모가 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며 이런 과정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피해자

한편 경찰조사 이후 박군의 불안한 마음은 경찰에서 소개해 준 한 상담소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가셨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당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분노와 억울함, 창피함이 찾아오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오던 박군은 아버지가 자신의 동의 없이 합의를 해서 최군의 혐의 일부가 빠졌다는 것을 검찰에서 듣고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 후로 분노가 어머니와 교사, 심지어 자신을 염려해주던 친구들에게까지 표출되었다. 별 이유 없이 욕설과 폭력이 나오고 극심한 짜증으로 세상이 모두 잘못된 것 같은 생각만 들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 자신을 야단치는 교사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내렸고, 그 순간 화가 폭발하여 학교 기물을 의자로 부셔버리기까지 했다. 이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그저 답답하고 슬픈 생각만 날 뿐 어떻게 할지 몰랐다. 경찰서로 학교로 뛰어다니면서 사정해서 아들이 제대로 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매달리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형편에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해야 하는 어머니에게 하나 뿐인 박군이 겪는 어려움이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춘기의 열병이었으면 하고 바랄뿐이었다.

화해권고로의 회부(*)

가정법원으로 송치된 박군과 최군의 사건은 이제 담당 판사의 판결만 남겨두게 되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만으로 결코 박군이 회복되거나 최군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아버지에 의한 일방적인 합의 때문에 최군의 혐의가 최소화 된 상황에서 정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박군은 판결의 결과만으로 정의가 이뤄졌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담당 판사의 제안으로 이번 사건은 화해권고를 이끌 전문조정위원들에게 의뢰되었고 위원들은 양측 당사자와 보호자를 따로 만나 각각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들어보고 본인들이 원하는 최선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양측의 자발적인 동의 하에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화해권고제도에 참여하기로 약속하였다.

피해자 가해자 한 자리에 모이다

가정법원 화해권고실에는 여느 피해자 가해자 조정/화해 모임과 달리 많은 사람들도 자리가 꽉 차보였다. 보통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보호자들이 모이던 모습과는 달리 이날의 모임에는 피해자 박군측에 친구, 담임교사, 상담사까지 자리를 같이 하였다. 어렵게 자리를 같이 한 양측과 관계자들을 격려하며 화해권고가 시작되었고, 각자가 아프고 힘든 기억이지만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은 피해자 박군은 준비해온 3장의 종이를 꺼내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분노를 하나하나 읽어내려 갔다. 최군에게 따지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던 그 많은 분노와 울분, 억울함을 눈물과 함께 쏟아놓고 보니 모임 자리는 이미 후회와 연민의 눈물로 가득 차 있었고,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는 무거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던 가해자 최군과 그 보호자들은 박군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지도 모른 채 자신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고만 했던 모습을 후회하며 예의를 다해 사죄를 표했다. 그리고 이전에 아버지와 합의를 했지만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박군과 어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변상금을 지급하기로 기꺼이 합의했다. 학교에서 사고를 치는 문제아로만 바라보던 담임교사도 제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사과를 했고 좀더 이해하고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처음에 박군이 가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을 우려하고 반대하던 박군의 상담사도 박군이 용기를 갖고 상대를 대면하고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을 보면서, 이제 박군이 피해자 심리로부터 벗어나 생존자의 단계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이 모임의 결론을 정리하면서 박군이 최군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원래는 가장 심한 벌을 받게 해달라고 했는데 다 이야기를 하고 니가 반성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니가 더 좋은 애가 되었으면 한다. 사실 그게 나에게도 좋은 거니까. 그리고 다시는 나에게 했던 일을 누구한테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 지내라”였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던 최군이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은 “그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께…”였다. 그 말을 듣는 모임의 모든 사람들은 최군이 그냥 처벌을 덜 받기 위해 하는 형식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피해와 아픔을 직접 듣고 그것을 인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어린 마음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 느꼈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2

실제 화해권고 조정이 진행되는 모습

회복적 정의: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두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의 모습이 상징하는 것은 공정함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사법에 기대하는 것은 정의로운 해결(수사와 재판)이다. 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손실)와 고통에 대한 대응으로써 우리는 그와 유사하거나 근접한 또 다른 피해나 고통을 그 행위자에게 부과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과되는 이러한 고통을 우리는 처벌이라고 부른다. 처벌을 통한 균형은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대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부정적 방식으로 잘못된 행위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 의도와 다르게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양산해 왔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서구식 재판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해자의 여러 가지 의문과 만족은 소외되고 사법기관(국가)과 가해자 사이에서 죄와 처벌을 찾는데 초점이 맞추어 진행된다는 점이다. 결국, 처벌을 중시하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만족이나 화해, 정신적 치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이는 주변에서 법원에 다녀와서 화해했다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응당한 처벌을 받으면 되지, 무슨 화해나 치료가 필요한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강력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범죄나 재범률 증가 등 전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처럼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더 불안해하고 사회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처럼 분쟁 당사자들의 요구와 사회라는 공동체의 필요가 채워지지 못하는 매우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제도적 한계를 갖지만, 그 외에도 소송의 남발과 소송기간의 증대 등으로 사법이 본래 추구하고자 하는 공정한 조사나 재판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이 없는 현실적 문제를 갖게 되었다. 당사자가 아닌 법률전문가 주도의 문제해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대리 소송이 남발되는 사회의 특징이 되었다.

수감시설의 문제점은 또 어떠한가? 교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감시설에서 그 본연의 역할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 목적과는 전혀 반대의 현상들도 나타난다. 즉 수감자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사회로부터 낙인이 찍힌 사람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게 되기 쉽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가족과 멀어지면서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고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구조가 생겨나면서 전과자의 사회적응의 어려움이라는 또 다른 장애요소를 낳는다. 그 결과 가정이 파괴되고 다시 범죄에 그늘에 맴도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국가예산의 사용증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피해자, 가해자, 지역 공동체의 요구

회복적 정의에서는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보다 당사자의 요구(needs)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떠한 범죄사건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요구는 단순히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준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회복적 정의에서 중시여기는 요구(needs)는 비단 그 직접 당사자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범죄로 영향을 받는 주변사람들과 지역 공동체, 넓게는 사회전체를 포함한다. 범죄로 인해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을 가져오고, 안전에 대한 필요를 넓힌다. 안전은 인간이 누구나 갖는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에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지역사회가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로 인해 침해를 입었다면 그 해결의 주체에 지역사회의 참여는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 개인의 행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는지 알 필요가 있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 자체만으로 가해자에게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가 범죄자 자체를 비난만 하고 격리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렇듯 다양한 정신적, 감정적, 물질적 요구를 현 사법제도의 결과물들이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대가 입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며 앞으로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권장하는 제도가 필요하지, 자신의 잘못을 최대한 부인하고 부정함으로써 처벌을 덜 받게 되고 오히려 자신이 처벌받는 것이 억울하게 느끼게 만드는 제도는 결코 균형 잡힌 정의를 만들어갈 수 없다. 사법이 정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 가해자, 지역공동체의 요구를 어떻게 채워갈 수 있을까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요구는 책임을 낳지만 처벌이 반드시 요구를 채운다는 전제는 많은 모순을 낳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처벌에서 회복으로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회복(restoration)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범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최대한 원상으로 복구하고 변상한다는 뜻에서 변상(reparation)이란 의미와 손해배상(restitution)의 의미가 있다. 이는 피해를 인정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회복적 정의에서 일차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다. 흔히 처벌을 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가해자의 책임은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과 그 피해의 영향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간혹 자신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신의 잘못된 행위나 피해자의 피해보다는 자신의 억울함과 상대에 대한 보복으로 그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원래 처벌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반성이나 개선의 기회가 왜곡되는 현상으로 초래한다.

두 번째로 회복이란 의미에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관계적(relational)이란 뜻이 있다. 범죄의 정의를 법을 깨뜨린 것이라기보다는 관계를 깨뜨린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분쟁을 해결하는 궁극적 지향점을 관계의 회복으로 본다. 어떤 문제를 표면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분쟁봉합(dispute settlement)이라고 본다면 제3자인 법적 대리인들을 통해 대신 할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당사자간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화해와 치유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관계회복을 향한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으로 그 의미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손상된 인간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쪽으로 분쟁해결 제도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적 통합이나 공동체의 평화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처벌은 분리와 격리를 의미하지만 직접 대면은 화해와 회복이라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좀더 성숙한 공동체 구성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 번째로 회복의 의미에는 인류의 오랜 전통 속에 남아 있는 공동체성(communitism)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산업화 이후 점점 심해지고 있는 도시화는 계속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게 하고 있고, 그 결과 주변과의 관계성이 결여되는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의 범죄문제는 이 개인화 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회복적 정의에서 지역사회의 참여와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는 범죄를 극히 개인적 선택의 문제나 성향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범죄행위 이면에 깔려 있는 근본적 문제까지 다뤄 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전통적 공동체에는 그 나름대로 범죄문제를 다루는 매카니즘이 발전해 있었고, 그 모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가장 적합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현대 사회가 과거 공동체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그러한 전통으로부터 현대 사법이 배워야 할 주요한 요소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회복은 이처럼 매우 다양한 차원의 변화를 요구한다. 사법체계가 발전해 오면서 처벌이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처벌위주의 형사사법이 형성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처벌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또한 진정한 반성과 옳게 고치는 것이라면, 응보적 접근보다는 좀 더 회복적 접근을 통해 자발적 개선의 여지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처벌을 강조하면 제삼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기 쉽지만, 회복을 강조하면 당사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이제는 처벌 자체보다는 처벌을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목표를 다시 되짚어 볼 시기이다.

* 화해권고제도는 2010년부터 회복적 정의에 기초하여 청소년 범죄문제에 대해 당사자와 보호자간 직접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한국형 피해자-가해자 대화/화해모임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한국 평화교육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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