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월호 참사에 대한 조곡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이희섭의 <단원나비>
    2014년 07월 29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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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도 어린 나비들에게 수심을 일러준 적 없어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았다

나풀거리며 날고 있을 때
순식간에 기우는 바다

어린 나비들의 날개가 젖어 들어갔다
그대로 있으라
그대로 있으라
두려운 눈망울 속으로 차오르는 바다

사월의 관매도는 나비가 흘린 눈물바다
어린 날개가 절어 공주처럼 지쳐서라도
이제 무거운 바다를 털고 다시 날아라

세월이 춥다
초승달빛이 서서히 물에 잠긴다

위의 시는 《푸른 사상》 2014년 여름호에 실린 이희섭의 <단원나비-세월호 참사에 부쳐>다. 시인 자신이 말미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빌렸노라고 밝힌 대로, 그 시의 패러디다. 먼저 김기림의 시를 보자.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 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은 모더니스트답게 이미지로 시상을 연결시키고 있고 사물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여 은유와 환유를 만들고 있다. 때문에 반영된 현실이 무엇인가 찾아내기는커녕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기서 텍스트 내적 현실은 나비의 바다 비상이다.

여기서 나비는 수심도 모르고 바다에 덤비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바다를 청무우 밭으로 착각하여 내려가려 하였으며 어리고 꽃을 그리는 존재이다. 텍스트 안에서 나비는 공주에 비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비는 철모르고 순진무구하며 어린, 공주와 같은 존재의 은유이다.

이런 존재가 바다에 뛰어든다.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서워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는 무서운 대상이다. 바다는 청무우 밭과 파랑 색으로 유사성을 갖는다. 무우 밭은 나비가 잘 날아다닌다는 경험적 인접성에 의한 환유이다. 그렇다면 바다는 청무우 밭으로 착각한 무서운 대상의 은유이다.

그러나 나비는 바다에 빠져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수직과 수평의 비상을 반복하고 있고 바다에 날개가 저리기는 하였지만 바다가 청무우 밭이 아님을 알고 돌아온다. 이는 바다가 꼭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경험의 바다를 뜻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초승달은 가냘퍼 보이는 나비의 몸과 유사성을 갖는 것이자 차가움의 환유이기도 하다. 초승달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나비를 더욱 가냘프게 하고 비애를 안겨주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이다. 초승달은 바다, 물결과 함께 나비에게 ‘서글픔’을 주는 동위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거대한 바다에 대비되는 사소하고 유한적 존재가 철 모르고 순진하여 꿈(꽃)을 좌절당한 비애와 경험을 노래하고 있다.

모더니스트의 시이기에 현실과 연관하여 해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텍스트를 굳이 현실의 맥락과 대비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나비는 작가 자신일 수도, 당시에 바다와 같이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고 비애를 겪고 있는 우리 민족일 수 있다.

이를 인정하면 이 텍스트에서 현실은 고도로 변용되어 있다. 아무리 현실과 유리된 모더니스트라 할지라도 식민지의 지식인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 비애를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풀>과 달리 텍스트 자체에 이렇게 해석할 코드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기에 수용의 입장에서는 타당성을 가지나 텍스트 자체로는 비약적 해석일 수 있다.”(이상 필자의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440쪽에서 옮김)

그럼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이희섭의 단원고 나비의 의미를 따라 가보자. 핵심어인 ‘바다’와 ‘나비’의 의미는 김기림의 시와 유사하다. ‘바다’는 순진한 아이 앞에 놓인 무한한 공포의 대상, 더 나아가 부패와 부조리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이며, 나비는 단원고 학생이자 그 무한의 공포 대상인 바다에 맞서서 꿈을 꾸는 순진하고 유한적 존재이다.

아무 어른도 어린 학생들에게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지, 세월호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지,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부패의 심도가 얼마나 깊은 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들은 바다가, 세월호가, 대한민국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들이 동무들과 수학여행을 즐기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푸른 꿈을 꾸는 순간, 순식간에 바다가 기울었다. 나비의 여린 날개가 젖듯, 그들은 바다에 잠겨 들었다. 그 순간에도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선장은 자신은 홀로 탈출하면서 그런 방송을 내보냈다.

단원고 아이들

도보행진을 시작하는 단원고 학생들

세월호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축소판. 정권-자본-관료-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부패의 카르텔은 자신들의 권력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하여 숱한 불법과 부패를 수시로 자행하면서도, 그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나 문제제기에는 늘 침묵을 요구했다.

시민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권력의 부패는 일상이 되고, 그 피해자는 늘 시민이다. 바닷물은 배로 스며들며 차오르고, 아이들은 죽음과 폐쇄의 두려움에 절규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은 단 한 명의 승객들도 구조하지 못한 채 306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목도했다.

그래서 생명들이 합창을 하고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4월, 온 나라가 국상을 치렀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너무도 많은 어린 생명들이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꿈의 한 조각조차 이루지 못한 채,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별로 해보지 못한 채 입시지옥 속에서 고생만 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여리디 여린 생을 마감한 어린 학생들과 그를 잃은 부모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 침몰 이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재난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절망감,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사람의 악한 본성에 대한 수치심과 좌절감, 언제 어디서든 나와 내 가족에게 그런 사고가 재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우러져 온 국민이 우울증을 앓았다.

그래도 시인은 비전을 잃지 않았다. 저 차디찬 바다에서 원통하게 죽은 아이들은 “제발 남아있는 동무들은 다른 꿈을 꾸게 해달라고, 다른 학교, 다른 세상을 보여 주라고.”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린 학생들이 야만적인 불량사회로 전락한 대한민국에서 부패와 부조리와 경쟁 위주의 교육으로 시달리더라도 꿈을 다시 꾸고 대한민국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고, 그래서 철모르는 공주처럼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대응하여 침몰한 대한민국을 들어올리기를 열망한다.

모든 국민이 그런 꿈을 꾸어 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마지막 연, “세월이 춥다/초승달빛이 서서히 물에 잠긴다”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엄정한 인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마치 김수영이 <풀>에서 풀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고 비전을 펼치면서도 마지막에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라고 마무리하는 것과 유사하다.)

‘세월’은 세월호이자 세월, 곧 시국이다. 세월호가 찬 바다에 잠긴 것처럼, 대한민국의 현 시국 또한 냉엄하다. 김기림의 시에서 ‘초승달’은 “나비를 더욱 가냘프게 하고 비애를 안겨주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이었지만, 이희섭의 시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뀐다.

초승달빛은 세월호와 차가운 바다를 희미하게나마 비추는 빛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드러내거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빛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란 바다는 그 빛마저 삼켜버린다. 실제로,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지났건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유가족이 단식을 하고 학생들이 행진을 하고 수만의 시민이 집회를 열어도, 여당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조차 갖은 핑계를 되며 미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간단히 요약하면, 1. 세월호에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한다. 2. 국정감사, 특검은 물론, 시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여 개인이 문제면 개인을 일벌백계하고 제도가 문제면 제도를 고쳐야 한다. 3. 나 스스로 이 나라를 불량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무엇인가 성찰하고 참회한다. 4. 가까이로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멀리로는 관료에서 언론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개혁을 하는 운동에 동참한다. 5. 근본 살인자인 부패카르텔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하는 운동에 동참한다.

필자소개
민교협.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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