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참사가 드러낸
    괴물 자본주의의 민낯
    [책소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장샤오홍/ 생각비행)
        2014년 07월 26일 0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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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활개 치게 방치한 결과였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선령 규제 완화,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싣기 위한 선박 개조와 증축, 안전 규제 완화와 철폐, 승무원의 비정규직화, 사고 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명벌, 승객보다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이해할 수 없는 해경의 구조 방식, 인명 수색 작전에서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했던 잠수업체 언딘과 해경의 알 수 없는 유착 관계,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에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위한 의전 통화에 바빴던 119상황실과 해경, 사고 초기부터 인명 수색에 이르기까지 재난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책임 면피에 급급한 정부와 대통령, ‘정피아’ ‘해피아’ ‘관피아’로 통칭되는 정부와 산업계 전반의 이권을 매개로 한 유착 관계, 허위 정보를 받아쓰기한 것도 모자라 진실을 감추는 언론의 저급한 보도 행태….

    이 모든 게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과 권력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끔찍한 모습이었다.

    청대 말기 오견인(吳趼人)은 견책 소설(譴責小說, 사회 개혁을 목적으로 폭로와 풍자적 성격을 담은 소설)인 〈20년간 목도한 괴현상〉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 자칭하는 주인공이 20년간 겪은 내용이라는 형식을 빌려, 청조 말기의 관계에 있던 매관(賣官) 풍습, 뇌물의 실태, 관료의 부패·타락, 민중 박해의 상황을 낱낱이 폭로했다.

    숱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지만 위정자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대만판 ‘20년간 목도한 자본주의의 괴현상’이라 할 만하다. 국립대만대학교 외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대만《연합보(聯合報)》의 명인 칼럼과 《중국시보(中國時報)》의 시론광장 칼럼에 기고한 문화평론을 엮어,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7일 태풍 모라꼿이 대만 남부와 동부 지역을 강타하여 700명이 넘는 사상자와 엄청난 물적 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8·8 물난리를 몸소 겪으며 공포에 떨었을 이재민과 구조대원들보다 복구 작업의 불성실 등을 이유로 여론의 맹렬한 비난을 받은 정부 관료들한테서 ‘충격 방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징후가 먼저 포착되었다.

    신속하게 재해 상황을 조사하고 복구 작업에 힘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재민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복구 대상이 ‘태풍’의 재해인지 ‘정당’의 재해인지(당시 마잉주 정부는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급기야 관련자 처벌 명단을 발표하고 내각을 개편한다고 밝혔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괴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정부와 관계 당국의 ‘보신주의’는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대판 사회의 ‘정치 재난학’을 떠오르게 한다. 대형 참사 앞에서 책임을 면피하려는 위정자의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

    과거 ‘자본주의는 괴물이다’ 식의 경직되고 완고한 사유 방식에서 자본주의는 사람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뼈까지 통째로 잡아먹는 무소불위의 거칠 것 없는 힘과 잔인성을 소유한 괴물로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태적 사고로는 ‘생산’하고 ‘변화’하고 ‘도주’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실태를 포착하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신감각의 산물로 엄청난 운동에너지와 시장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괴물들은 자본주의의 신세대 권력으로 인간의 욕망을 조작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급진적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경계를 허물고 다시 경계를 만들어 해체와 재편, 분출과 흡입을 거듭하는 ‘시장 괴물’ ‘정치 괴물’ ‘미인 괴물’ ‘영상 괴물’ ‘젠더 괴물’ ‘공간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괴물’을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유 방식으로 관찰하면서 대만 사회라는 ‘문화 유격전’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괴물의 실체를 생생히 포착한 비평집이다.

    ‘시장 괴물’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 작동 방식을 살펴보자.

    저자는 ‘늙지 않는 젊음’에 대한 대중의 경이와 흠모, 그리고 그런 시선을 비판적인 인식으로 들여다본다.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부권 사회의 강박과 내화(內化)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늙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이지만 부권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또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자본주의 상품 시장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착취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 몸집이 불고 늙기 마련이다. 하여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미션 임파서블’, 그러니까 영원히 소녀 같은 몸매와 피부와 얼굴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공간 괴물’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많이 긁을수록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현대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이성’은 ‘욕망’적 소비 충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모든 ‘욕망’ 안에 ‘이성적’ 계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경제 발전 동력의 지표가 되는 각종 성장률이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는 대만의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본의 흐름에서 불균등하게 이뤄지는 자원 분배의 문제는 은폐되고, 거시적 ‘문제’들이 개별 소비자군의 미시적 ‘징후’로 단순화되는 현실이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창립 기념 할인 행사를 하는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앞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여자들만 볼 수 있을 뿐, 현재 우리의 소비 관념과 소비 유형, 소비 내용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경제구조의 변화는 볼 수 없다.

    다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정부, 정치인의 약속만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는 한, 그리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흘린 눈물은 의미 없이 증발하고 말 것이다.

    이런 시점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저자가 대만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 현상을 비판하며 들려주려는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동시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히고 점점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변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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