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탈린주의'에 대한 정리
        2014년 07월 22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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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느끼는 부분 중의 하나는, “스탈린주의”이라는 말만큼 무서운 사상적 무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파는 특히 좌파민족주의자 (“종북파”)를 가리켜 “스탈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서 그들을 타자화시켜 완전하게 무가치화시키는가 하면, 좌파 안에서는 “스탈린주의자”로 찍힐까 봐서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입니다.

    또 고육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스탈린주의자”를 – 주로 좌파민족주의자 중에서는 – 찾아내 공격하고, 동시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한 실험”과 자신들이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려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탈린주의”를 아예 악마화시켜버린 우파 담론에 좌파는 사실상 백기를 들어 흡수된 셈입니다.

    저는 스탈린주의를 합리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당연히 지금으로써 – 특히 어느 정도 이미 산업화돼 “적색 개발주의”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사회들에서 – 가급적 피해야 할 이데올로기며, 또 당연히 역사적 스탈린주의의 잔혹한 면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스탈린

    스탈린 시절에 하급 경제관료로 봉직했던 제 외할아버지는 – 그 어떤 “트로츠키주의”나 “부하린주의”와 무관하고 노동자 출신이었음에도 – 늘 아파트의 출입문 옆에 내의와 세면 도구가 든 가방 하나 마련하여 감옥행 준비를 해놓고 살아야 했던 만큼 “공포”의 시대이었죠. 당연히 그 누구도 그런 시대를 두 번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 유물론의 입장에 서는 만큼 한 시대의 “공포”만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되도록 객관적으로 그 시대의 기원과 전개, 그리고 민중에게 있어서의 장단점을 변증법적으로 논해야 합니다.

    악마화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학 벙법론이 아니며, 우리가 스탈린주의를 싫어한다고 해서 스탈린주의(시대)를 흑색일변도로 그리는 것도 변증법과 사이가 먼 방식입니다. 일단 한 번 가치중립적인 차원에서 스탈린주의를 정의해보고 그 효과들을 논해봅시다.

    러시아에서 1920년대말 이후에 출현된 스탈린주의는 10월 혁명 이후 보수화의 결과이었습니다. 세계 혁명, 전통 타파, 평등 강조 등은 일국의 공업개발-군사력 증강, 전통의 선별적 복귀, 관료층 위주의 새로운 서열화로 교체된 것입니다.

    보수주의적 속성을 지니는 만큼 스탈린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와 엄연히 구분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는 당연히 스탈린주의를 의식적으로 지향할 일은 없습니다. 한데, 세계혁명이 일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고립된 쏘련이 “자국 방어”에 올인해야 했던 상황에서는 스탈린주의의 출현은 불가피한 면도 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적 영향은, 단순히 흑색으로만 칠하기에는 복잡미묘한 늬앙스를 많이 지닙니다.

    보수적이고 “역사, 전통, 민족도덕” 등을 강조하는 스탈린주의는 아직 거의 전통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주변부 사회들의 반식민지, 반제 투쟁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주변부 혁명가들로서는 “세계혁명”보다 민족해방, 그리고 그 해방의 문화적 표현방법으로서는 “민족전통” 재창조, 해방의 정치적 방법으로서는 (역시 서열화돼 있는) “민족국가 건설”이 하도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좌파 일각에서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된 고 김일성 주석만이 스탈린주의자이었던가요?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미 제국에 대한 승리를 어렵게 거둠으로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 헤게모니의 상대적 쇠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신 월남의 호지명(胡志明) 선생도 어쩌면 김일성보다 더 정통적인 스탈린주의자이었고, 모택동도 다소 아나키스트적인 기질을 소유하고 약간 더 자율주의적/농본주의적 스탈린주의자이었습니다.

    그들이 지향했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라기보다는 (문화대혁명 시절을 제외하고서) “민족/애국/전통”의 강조가 가능하고 서열화돼 있고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반제적 민족국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우리가 꿈꾸는 사회주의와 일단 성격이 다르다고 해서 과연 무가치한 것인가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해서 전후 동아시아의 “비자본주의적인 개발”의 역사적 경험을 다 무조건 부정해버려야 하나요?

    과연 농촌 위주의 (반)식민지 사회에서는 마르크스/레닌이 꿈꾸었던 “완전한” (비서열적이며 국가권력이 소멸된) 사회주의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띨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만의 하나에 호지명과 모택동으로 상징되어지는 역사경험의 부분적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아무리 늬앙스적 차이를 지녀도 큰 그림의 차원에서 그들과 동류인 김일성(주의)이 과연 오로지 부정과 멸시의 대상만이 돼야 하는가요?

    스탈린주의는 사회주의와 구분됩니다. 맞습니다. 스탈린주의의 엄격한 관료 서열이나 관-민 사이의 권력/생활수준 차이부터 환경 파괴, 핵 개발까지 사실상 엄연히 반(안티)사회주의적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좌파적 개발주의”로서의 스탈린주의는 과연 긍정성이라고 전혀 없나요? 노동자들에게는 완전 고용과 당 등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 자녀 교육, 무상 의료와 상당히 좋은 생활조건 (휴양소 등등)을 보장해주고 기업단위의 이윤추구를 봉쇄함으로서 개개인의 상호경쟁 등을 불필요하게 만든 생산양식은 과연 노동자의 눈으로 본다면 신자유주의보다 더 나쁠 것인가요?

    그렇다면 왜 파업과 데모에 나서는 중국 노동자들이 하필 모택동의 초상화를 들고 나오는 광경이 이렇게 자주 보일까요?

    우리가 찬양도 악마화도 아닌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스탈린주의의 함의와 긍정/부정성, 세계사적 영향 등을 논하면서 지금도 스탈린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준)주변부의 수많은 세력들과의 평등하고 상호존중하는 소통에 임하면 안될까요?

    우리가 정말 다원주의적이며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면, 바로 그만큼 “스탈린주의자” 마녀사냥을 그만두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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