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즈랑 달의 반기독교 운동,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활동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 종교 갈등 속에 민중들만 고단
        2014년 07월 21일 10:2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 앞 회의 글 ‘모든 곳, 모든 사람을 조직하라’ 링크

    오디샤 주는 인도 전역에서 나타나는 힌두 대 무슬림 대립구도와는 달리 힌두 대 기독교도의 대립이 문제 되는 지역이다. 전체 인구의 2.10%인 무슬림보다 기독교도가 조금 더 많아(2.40%) 이 지역에서 강한 세력을 가진 힌두 보수주의 단체인 바즈랑 달(Bajrang Dal)이 기독교도들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두 집단의 충돌이 격화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주 인구의 22.13%를 차지하는 부족민들을 놓고 힌두화 시키려는 바즈랑 달과 기독교를 고수하거나 전파시키려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바즈랑 달은 힌두교 극우 단체인 세계힌두협회(VHP, Vishwa Hindu Parishad)의 청년 단체로 알려져 있다. 바즈랑(Bajrang)은 힌두신의 하나인 하누만(Hanumān)을 가리키고 달(Dal)은 모임을 의미한다.

    이 단체의 슬로건은 “봉사, 안전 그리고 문화(sevā surakṣā sanskṛti)”다. 구체적으로는 소 도살 반대, 종교적으로 분쟁이 있는 지역에 힌두교 사원 건설 발렌타인데이 반대 운동 등을 벌이는데 공산주의, 무슬림, 기독교 등의 위협으로부터 힌두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명분에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은 별로 가리지 않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바즈랑 달의 행동 강령에 힌두교에서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반대하며 위협하는 활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즈랑 달이 주로 활동하는 대상은 기독교도들이다. 인도의 기독교도의 대다수는 지정부족민들이다. 식민지 시대 때부터 힌두 문화권 밖의 이질적인 집단을 기독교화 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시도가 있었고 인도 독립 이후에는 부족민들이 힌두와 다른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정체성 운동 과정에서 기독교로의 대규모 집단 개종을 하기도 했다.

    근래에도 지정부족민들을 주 선교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과 바즈랑 달의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 선교는 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바즈랑 달 측에서는 외국 문화가 힌두 문화의 순수성을 더럽힌다는 공격을 하는 것이다.

    1999년 오디샤 주(州)에서는 호주 선교사 가족이 탄 지프차에 불을 질러 선교사와 그의 어린 두 아들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호주 선교사의 부인인 글래디스 스타인스Gladis Staines는 몇 년 전 “오디샤 주에서 23년간 나병환자를 돌보며 헌신적인 성녀의 사랑을 베푼”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의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인도 정부가 최고의 시민에게 주는 훈장인 ‘파드마 슈리'(최고의 시민이란 의미)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오디샤 주에서는 힌두 대 기독교도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2002년에는 오디샤 주의회 건물을 공격할 정도로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다. 힌두와 기독교도들의 분쟁 과정에서 2008년에는 당시 VHP의 지도자인 스와미 락스마난다 사라스와띠(Swami Laxmananda Saraswati)가 오디샤주에서 살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인도 기독교

    2008년 오디샤주에서 기독교 수용시설에서 폭탄이 터져 건물이 파괴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진=야후글로벌)

    흥미로운 것은 세계힌두협회, 바즈랑 달 등의 단체가 힌두교도들의 타종교로의 개종반대 운동을 전개하면서 기독교회가 힌두교도들의 기독교로의 개종을 회유 혹은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살해된 사라스와티가 교회의 개종 강요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힌두교 측에서는 그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기독교도들이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교회, 교회부설 고아원과 신자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공격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바즈랑 달의 폭력적인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바즈랑 달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오디샤 주정부는 물론 중앙 정부에서도 내각회의를 소집해서까지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실효성있는 구체적인 조치는 취해진 것이 없다. 이것은 결국 정치세력들이 입으로는 폭력을 비난하면서도 힌두 보수 성향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에 자르칸드 주에서는 힌두교 단체 민족의용단이 힌두교 이외로의 종교로는 개종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하라고 인도국민당 주 정부에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회에서는 이런 어이없는 요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의사당에 가득 찼지만 바로 그날 오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이를 제재하는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인도 지배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외에는 어떤 가치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물론 반기독교도 폭력 행위가 가장 심각한 오디샤 주에서는 바즈랑 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주지사를 세 번째 연임하고 있는 주지사인 나빈 빠뜨나익(Naveen Patnaik)이 힌두 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고 그들과 정치적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것은 인도국민당과의 연합을 통해 힌두 보수주의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인도국민당과의 연합을 깨고 좌파정당과 손을 잡는 정치적 기민함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언제든 합종연횡의 대상은 바뀔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지난 몇 년간 인도에서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중산층, 상류층 신자도 늘어났으며 젊은 층의 기독교 개종도 두드러진다. 2001년 인도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인 인구는 2천4백만여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미국 조지아에 본부를 둔 국제선교단체 미션소사이어티(Mission Society)의 주장에 따르면 2013년 인도에는 7천1백만여 명의 기독교인이 있고 이는 나라별로 봤을 때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즉 12년간 기독교도 수가 3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선교 활동도 활발해서 2013년 기준으로 65개의 가톨릭 단체와 50개의 개신교 단체가 인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성장과정에서 해외에서 온 기독교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이 힌두교도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고 기독교도의 공격에 대한 방어 혹은 반격이라는 명분을 바즈랑 달에게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즈랑 달은 “교회가 고아원이나 학교 등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층민이나 낮은 계급에 접근해 종교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일자리를 알선해준다며 농촌의 소녀들을 유인해 도시로 팔아넘긴다는 주장도 있다. 기독교 단체를 통해 일자리를 얻는 경우는 실제로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대개 가사도우미로 형편없이 낮은 임금만을 받고 기독교 단체는 소개료를 받아 챙기는 일도 있다고 한다.

    힌두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니 무시할 수만도 없다. 또 인도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지역인 동북부 지역의 폭력사태 배후에 외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개입이 있다는 의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2013년) 7월 당시 인도 내무부 장관은 의회 답변과정에서 외국 선교사들이 인도 내에서의 선교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선교단체는 교육, 의료, 농촌지원 같은 구호 활동만을 해야 하며 공개적인 선교활동을 하거나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구호활동이 선교활동으로 이어지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강제성이 개입하는가이다. 그러나 구호활동과 선교활동을 구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선의로 구호활동을 하고 거기에 감명 받아 진심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지 아니면 물질적 대가나 강압에 의해 마음에 없는 개종을 하는지를 어떻게 매번 가려낼 수 있겠는가?

    인도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선교사들은 모두 선의와 자발적 개종을 주장하지만 다르게 볼 여지도 많다. 그 자신도 인도에서의 선교활동에 관여했던 Philip Goldberg (그가 쓴 종교서적이자 인도체험기인 American Veda로 미국에서 유명한 종교인이라고 한다.)는 자신이 인도에서 직접 목격한 사건들을 전해준다.

    인도 기독교 선교

    최근 인도 불교성지에서 한국청년들이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방송화면 캡처)

    가장 흔한 경우는 의료 선교다. 인도의 가난한 농촌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기독교로의 개종을 조건으로 무료치료를 제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돈도, 믿을 만한 의료적 도움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부모에게 개종은 선택이라기보다 의무일 것이다. 또 임시직 일자리를 준 다음에 기독교로 개종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고용 없는 성장 덕분에 실업문제가 심각한 인도 농촌의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이런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대가로 가족 친지로부터의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청년층의 개종 증가가 일자리 문제와 관련된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 농촌의 만성적인 물 부족을 이용한 선교 방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많은 우물 파주기를 악용한 것이다. 기독교 단체의 돈으로 뚫은 우물은 대개 교회가 관리한다. 그리고 먼 곳에서 걸어와 그 우물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개종을 권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물만 이용하고 개종은 않겠다고 답하기가 쉬울까?

    개화기 이래 한반도의 민중들에게 기독교 선교사들이 심어 놓은 의식, 실은 식민지배 정당화 논리로 오래 전에 개발된 논리가 인도에서도 여전히 통용된다. 인도 민중들의 비참한 삶은 그들이 힌두교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즉 시련을 통해 신에게로 이끌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얘기다.

    제국주의 모국과 식민지의 군사적 물질적 격차를 문화적 종교적 다름과 연결시키는 이 논리는 한국인들의 사고 속에도 뿌리 깊이 남아있지 않은가? 문창극 같은 이들이 바로 이런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도 중산층, 상류층 중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그들이 가진 서구와의 끈(Western Connection)과 관련이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선교단체들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다. 한국 교회들도 인도에서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는지 궁금하다.

    세상일이 단순치만은 않아서 힘센 다수집단에게 억압당하는 약한 소수집단이 항상 선하거나 옳은 집단이 아닌 경우도 많다. 인도에서 기독교도는 종교적 소수집단이고 힌두 중심 사회에서 많은 차별과 박해에 노출되어 있다. 또 지정부족민들이 기독교로의 집단적 개종을 통해 힌두사회와는 다른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우처럼 힌두 사회의 비주류 집단들을 대변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독교가 극단적인 행동방식으로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건의 배경에는 서구와 연결된 기독교계 NGO들의 영향력 확대 전략이 깔려 있기도 하다. 일부 기독교도들의 공격적 행태는 다시 힌두교도들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을 낳고 보수정치 세력은 갈등을 부추기며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가해 볼 것은 왜 하필 오디샤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느냐는 것이다. 오디샤의 불가촉천민, 지정부족민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사실은 마오주의 무장 반군인 낙살 반군이다. 2000년대 초에 오디샤 주의 30개 지역 가운데 10개 지역이 낙살 반군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25개 지역에서 낙살 반군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이것은 오디샤 주의 가난한 농민들(이들은 신분상으로는 불가촉천민, 지정부족민인 경우가 많다.)이 여전히 억압적이고 과도하게 착취하는 지주 소작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 곧바로 지주들이 운영하는 무장사병에 의해 잔인하게 탄압받는다. 이 억압받는 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낙살 반군이 세력을 키운 것이다. 바즈랑 달이나 기독교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난하고 불평등한 인도, 오디샤 주의 사회적 조전이 만든 빈틈을 노리고 세 집단이 민중들을 자신의 편으로 동원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정작 민중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까? 식민지 시대 때 기독교로 개종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바즈랑 달의 권유로 힌두교로 재개종했고 이제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라는 선교사들의 회유에 시달리는 어느 농민은 이렇게 말한다. “개종을 해서 제일 나쁜 일은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날은 기독교도고 다음 날은 힌두다. 이런 와중에 나 자신은 닳아 없어지고 있다.

    필자소개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