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투쟁과
    더 넓은 사회적 반란의 연결
    [책소개] 『무지개 속 적색』(해나 디/ 책갈피)
        2014년 07월 19일 08: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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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이 크게 성장했고 커뮤니티도 발전했다. 지난해에는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 커플이 공개적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리면서 동성 결혼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고,

    최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동성애를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 세력도 본격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힘들여 성취한 작은 변화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올해 동성애 혐오 세력은 1,000여 명을 동원해 한국의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인 퀴어퍼레이드를 가로막았고 최근 낙마한 총리 후보자 문창극도 출근 첫날부터 퀴어퍼레이드를 비난했다.

    이처럼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공격이 급증한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2009년 영국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성소수자가 8명에 달한 반면, 동성애 혐오 폭력 신고 건수의 고작 1퍼센트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무지개 속 적색: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은 21세기 성소수자 운동이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무지개 속 적색

    이 책의 지은이 해나 디는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성소수자 활동가다. 지은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여러 성과를 거뒀지만 계속 억압받는 것은 “성소수자 억압이 자본주의 사회조직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중 핵심은 바로 자본주의 가족제도다.”

    가족은 개인 관계를 규제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며 지배계급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노동력을 싼값에 재생산하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이다. 정치인, 대기업, 언론은 가족 가치를 찬양하면서 육아부터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막대한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긴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전통적 가족의 바탕이 되는 관계와 역할을 훼손하고 혼란에 빠뜨려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공격이 급증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2008년부터 자본주의가 세계적 위기에 빠지면서 각국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고 노동조합뿐 아니라 한 부모, 이주민,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성소수자 운동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에 안주하거나 개혁 입법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지은이는 한때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전투적 시위였던 자긍심 행진이 기업의 후원을 받는 이벤트가 돼 버린 것이나 동성애자 공간과 성 정체성이 상업화된 것에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영속적이고 참다운 해방을 이룩하려면 세상을 바꾸는 더 넓은 투쟁과 함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소수자 투쟁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감춰진 급진적 성 해방 투쟁의 역사를 파헤친다.

    자유로운 사랑과 성 평등을 꿈꾼 초기 사회주의자들, 20세기 초 독일과 러시아의 개혁과 혁명이 보여 준 희망과 좌절, 성소수자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은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 1984년 영국 광원 파업 당시 광원들과 동성애자들의 연대의 경험, 아파르트헤이트를 물리치고 세계 최초로 헌법에 성소수자 권리를 명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중운동,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도 존경받은 레바논 동성애자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성소수자 투쟁과 더 넓은 사회적 반란을 연결하려는 이런 노력은 마치 무지개 속 적색처럼 성 해방 투쟁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우애, 협력, 인간애와 자유로운 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이상향이 없는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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