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중과 믿음의 이야기
    [그림책 이야기] '장화 신은 고양이' (제리 핑크니/ 어린이작가정신)
        2014년 07월 18일 04: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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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리 핑크니에 의해 새로 완성된 고전, <장화 신은 고양이>

    제목을 보고 설마 또 그 <장화 신은 고양이>냐고 되묻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처음엔 저도 그랬습니다. 이미 출판된 <장화 신은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 왜 또 <장화 신은 고양이>를 출간했을까? 저 역시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책장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막상 제리 핑크니의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고 나니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로 보면 원작자인 샤를 페로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이전 작가들의 그림이 다소 동화적이라면 제리 핑크니의 그림은 사실적인 고증과 동화적인 상상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전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제리 핑크니의 세련된 각색과 고증과 상상이 어우러진 그림도 좋았지만 김영욱 작가의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이 정말 좋았습니다.

    장화 고양이

    도대체 <장화 신은 고양이>가 뭔데?

    <장화 신은 고양이>는 샤를 페로가 1697년에 출간한 전래동화모음집 <어미 거위 이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밖에도 수백 가지 변형된 이야기가 있지만 본 그림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방앗간 주인이 죽자 세 아들은 각각 방앗간과 당나귀와 고양이를 물려받습니다. 특히 고양이를 물려받은 막내아들 벤자민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이때 고양이는 자신에게 장화와 자루를 달라고 부탁합니다. 벤자민은 고양이에게 장화와 자루를 구해 줍니다. 그리고 장화 신은 고양이는 정말 벤자민을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단지 장화와 자루를 가지고, 고양이는 어떻게 벤자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을까요? 도대체 <장화 신은 고양이>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수백 가지 이야기가 존재하고 지금까지 새로운 책으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고양이가 장화를 신었다고?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이 <장화 신은 고양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만 물려받은 가난한 소년 벤자민이 바로 그 작은 고양이 덕분에 인생을 역전시키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장화 신은 고양이는 왜 장화를 사달라고 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이 작품에서 ‘장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장화는 옛날 기사나 신하들이 신는 긴 가죽 부츠입니다. 따라서 고양이에게 장화를 사준다는 뜻은 벤자민이 고양이를 애완동물이 아닌 신하로 임명하는 것을 뜻합니다. 장화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신분의 상승 또는 존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벤자민이 고양이에게 장화를 사주고 존중하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고양이를 카라바스 백작의 신하로 존중합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도 내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꺼내고 보니 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예술작품이 독자에게 작용하는 방식

    <장화 신은 고양이>의 재미는 독자의 마음에 남아 자꾸만 책 속의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훌륭한 예술작품이 독자에게 작용하는 방식 그대로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눈을 뜨게 만듭니다.

    아! <장화 신은 고양이>는 존중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구나! 벤자민은 고양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의 요구대로 장화와 자루를 구해 주었으며 고양이를 믿어주었구나! 벤자민이 고양이를 무시하고 고양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벤자민의 인생역전도 없었겠구나!

    많은 옛날 사람들이 <장화 신은 고양이>를 만들었습니다. 샤를 페로는 전해오는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옮겨 적었을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지혜를 담고 독자 스스로 그 지혜를 발견하도록 이야기를 다듬고 또 다듬은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믿음과 존중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고양이가 꾀를 부려 가난한 주인을 부자로 만듭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야기 속에서 일어납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현실과 이야기 속의 차이는 고양이의 능력을 믿느냐 마느냐 뿐입니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주변에 있는 모든 동물들의 능력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전에 우선 주변 사람들의 능력을 믿겠습니다. 동물의 능력을 믿는데 사람의 능력을 못 믿을 리가 없습니다.

    훌륭한 예술작품으로서 <장화 신은 고양이>는 ‘네 친구의 능력을 믿고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벤자민이 고양이에게 멋진 장화를 사 주었듯이 저도 제 친구가 원하는 신발을 기꺼이 선물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저와 제 친구는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더 좋은 일이 생긴다면 ? 그건 덤이고요!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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