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산서당, 퇴계 이황의 건축
    [목수의 옛집 나들이①] 성리학자의 집
        2012년 06월 28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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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서원 전경 : 박정희가 심은 금송이 도산서당의 조망을 막고 있다

    보수 하는 문화재에 대한 공부는 기본 예의

    60년대 후반,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당대의 저명한 학자에게 물었단다.

    문: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가 누구입니까?
    답: 아무래도 퇴계가 아니겠습니까
    문: 그러면 예술가는?
    답: 아무래도 추사가 아니겠습니까

    박정희는 곧장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 완당 김정희의 추사고택, 이순신의 현충사(박정희는 최고의 무인으로는 이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의 정화사업을 지시했다.

    정화사업???

    정화사업 당시 도산서원 안의 퇴락한 건물 보수도 하였으나, 기계로 가공한 화강석으로 계단과 석축을 만들고,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높다란 사고석 담장을 쌓아올리고, 빨리 자라는 외래 수종인 금송을 도산서당 앞마당에 심는 등의 쓸데없는 짓을 하여 도산서원의 경관을 망쳐 놓았다.

    이때 도산서당 기와도 새로 이었는데 40여년이 지난 2009년, 도산서당에 비가 새서 보수를 하게 되었는데 영광스럽게도 필자가 이 사업을 맡게 되었다.

    도산서당 보수공사 중 : 서까래와 종도리가 많이 상했다.

    보수는 어렵지 않았다.

    60년대에는 기와를 낮은 온도에서 구워서 동파가 쉽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비가 샜다.

    비가 새면 자연히 서까래와 도리를 비롯한 목부재도 훼손 되는데 많이 상한 것은 새로운 것으로 갈고, 일부만 썩은 것은 수지로 보존처리하여 재사용했다. 지붕의 기와는 용마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이었다.

     나는 도산서당 보수를 하기 전에 퇴계와 도산서당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보수 대상물 대한 공부는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그해 초여름부터 단풍이 지는 늦가을까지 퇴계와 관련된 건축에 빠졌었다.

     도산서당, 삼칸제도(三間之制)의 담백함

     도산서당은 삼칸제도(三間之制)에 따라 건축되었다.

    서편으로부터 부엌과 방과 마루가 각각 한 칸씩, 흙바닥과 온돌과 마루라는 한국건축의 기본 요소들을 최소 규모로 갖춘 담백한 건물이다. 지붕도 화려한 팔작이 아니라 단정한 맞배지붕이고 양편으로 확장한 부분은 눈썹지붕을 달아냈을 뿐이다.

    도산서당 전경 : 왼쪽부터 부엌, 온돌 방, 마루의 3칸집이다

    그러나 삼칸제도(三間之制) 건축의 표본이라고 일컬어지는 도산서당은 실제 3칸이 아니다. 서편으로 반칸을 늘였고 동편으로는 반칸보다는 크고 한칸이라기는 조금 작아 애매한 퇴칸을 덧달아내었다. 당시의 [도산잡영병기]와 [도산서원영건기사]등의 기록이 없다면 4.5칸 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도산서당의 평면을 보면 여러 곳에 조금씩 부가된 것들이 많지만 건축을 주관한 퇴계는 3칸이 변형, 확장된 것으로 이해했다. 3칸에 자그마한 퇴칸을 달아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먼저 동편 마루를 보면 정식 한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차별을 두었다. 본채는 모두 사각기둥을 사용했지만 이 부분만은 유달리 가느다란 팔각기둥을 세워 확장부임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마루의 형태는 더 특이하다. 통상적인 마루형태가 아니라 마루판 사이가 마루판 너비만큼 떠 있어 아래로 흙바닥이 보이는 특이한 형태이다. 마치 건물의 구조물이 아니라 살평상을 덧대어 놓은 것과 같다. 물론 이 마루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고안품이기도 하지만 정식 대청마루보다 위계가 낮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마루만 확장한 것이 아니다. 퇴계 자신만의 공간인 완락재는 두 방향으로 적극적 확장을 했다. 완락재의 서쪽 확장부분은 부엌 공간을 침범한 반침인데 퇴계는 이곳을 서고로 사용했다. 보통 반침은 옆 칸인 부엌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뒤편을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기어이 부엌으로 반침을 내었다. 물론 퇴계는 완락재 뒤편도 가만 두지는 않았다. 퇴계가 기거하던 방인 완락재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토론하던 대청마루인 암서헌은 뒤쪽으로 1자2치(약36cm / 1치=약3cm)를 확장했다.

    도산서당 평면도

    결국 그들만의 나라

    3칸 집은 소박함의 대명사다.

    요즘 유행가에도 “~~초가삼간 집을 짓고~~”란 가사가 있지 않은가

    퇴계는 3칸의 소박한 집을 지었다는 것으로 자신의 검소함을 알렸다.

    3칸 내에서 자신만의 공간인 완락재와 공동 학습공간인 암서헌의 확장을 위해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너무나 협소해진 공간이 바로 부엌이다.

    퇴계는 양반이기에 직접 불 때고 밥 짓지 않았기에 수발하는 시종도 함께 살았다.

    그의 공간이 바로 가로 5자(약150cm), 세로 3자(약90cm)밖에 되지 않는 곳(평면도에서 방2)이다.

    보수 공사가 마무리되던 즈음, 그곳에 가만히 들어가 누워본다.

    다리를 뻗을 수 없어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웅크릴 수밖에 없더라.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에서 퇴계의 시중을 들며 살았을 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21세기인 지금에도 일하다 잠시 앉아서 쉴 곳도 없고, 심지어 밥 먹을 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제발, 더불어 함께 살자.

    필자소개
    진정추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찰과 옛집, 문화재 보수 복원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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