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공기처럼 체질화된
    '자본주의'의 논리와 시스템
        2014년 07월 16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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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 6일을 국내에서 보냈습니다. 주로 학회 내지 강연의 현장에 있느라 거의 어디에도 가지도 못하고 그다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지도 못했지만, 일단 이 6일동안 실감했던 부분을 정리하면, 우리 대한민국 정도로 자본주의 논리가 완벽하게 체질화된 사회는 정말 어디서도 만나기가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학회건으로 온 거고, 강연이 많은 만큼 주로 대학들을 출입하는데, 가는 데마다 놀랍습니다. 대학인지 백화점인지, 이제 아예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대학 구내가 백화점화되고 말았습니다.

    학생이나 교직원의 일상에 필요한 문필구나 팔고 구성원을 위한 구내 식당을 운영하는 거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한국 대학들은 이제 그 차원을 넘어 아예 패션가게부터 고급 식당까지, 백화점 못지 않게 다양한 장사를 입점시킵니다.

    그러나 과연 바뀐 게 대학당국의 방침만인가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동아리도 주식동아리, 증권 동아리, 아니면 영어로 시사를 논할 수 있는 그런 동아리들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중상층 자녀들이 집중되는 서울 주재 “명문대”에서는 “학교”라는 철저한 서열적 구조 속에서 “학생”의 위치는 상당히 상향조절됐습니다.

    예컨대 이제 거의 전부가 비정규직 (주로 파견직)인 청소노동자나 경비노동자에 비해서는 “대학에 돈을 갖고 오는” 학생은 “소비자”로서의 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입니다.

    “명문대” 학생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적인 먹이사슬에서 아직도 본인이 상향 이동하여 언젠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지만, “대학”이라는 기업화된 피라미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화 꿈마저도 없죠.

    청소 노동자의 시급은 현재로서 5700원, 그리고 식대는 7만원. 시급을 7천원으로 올리라는 등의 요구를 해서 지난 3월에 대학가 청소노동자들이 총파업도 벌였다고 합니다. 참, 한달에 많아야 약 120만원을 받아 부양 가족이 있을 경우 거의 기아선에서 사셔야 하는 분들이 청소해주는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인류 보편성” 등등을 논하시는 교수나 학생들의 소감이 어떤지…잘 상상이 안갑니다.

    저는 러시아 출신인지라 일단 한-러 관계와 유관한 분들을 좀 만나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보니 요즘 한-러 관계에서 가장 큰 이야기 중의 하나가 러시아 부자들의 “한국으로의 의료관광”이랍니다.

    실은 성장이 끝나가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업화된 의료가 제공해주는 “의료관광”은 거의 보기 드문 “성장산업” 중의 하나입니다. 듣는 말로는, 작년 (2013년) 내한 환자 수는 21만 명, 특히는 “1억 환자”라고 하는 “큰 손”들의 내한 건수는 두 배나 늘어 “의료 수출 사업의 전성시대”를 열어간답니다.

    의료관광 홍보

    (사진: 2011년 10월 10일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 비즈니스센터에서 러시아 의료진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10개 병원 및 2개 유치업체가 한국 의료관광 홍보설명회를 개최하였다.<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환자 대부분은 중국인이라지만, 그 “큰 손”의 대부분은 러시아 등 구쏘련 유민들이랍니다. 주로 동아시아권역 내 “성형수술 관광”으로 시작된 것인데, 이제는 수출형 의료 상업화로 전면화된 셈입니다. 공항에서 아예 의료관광 안내 데스크를 따로 설치할 정도로 한국이 “진료 판매국”으로 부상된 거죠.

    이건 여기에서 주류에서는 마치 엄청난 업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저는 솔직히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구쏘련 유민들이 여기로 왜 올까요? 그 만큼 소련 시대의 의료인프라가 망가져 이제 의사나 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건데, 여기까지 올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야 큰 문제는 아니지만, 구쏘련 지역 인구의 대부분인 빈민들은 어떡하라는 것입니까?

    쏘련 해체 이후의 의료 인프라의 부실화는 엄청난 비극인데, 지금 대한민국 의료업계가 그 비극으로 돈을 번단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외국인 진료로 돈을 벌다 보면 사실상 국내인에게도 병원 영리화가 촉진되고 의료상업화가 더더욱 더 빨라질 게 뻔한 일인데, 과연 “큰 손”이 아닌 우리들은 왜 이걸 환영해야 하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업화되어 있지 않은 공공성 위주의 의료가 아닐까요?

    그리고 환자 입장에서는,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형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은 과연 기분 좋은 일일까요? 여러분들은 그런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으세요? 의료관광 등을 수반하는 의료 상업화는 대다수에 대한 범죄일 뿐인데, 여기에서 들리는 것은 “러시아 큰 손” 왕래에 대한 환호성뿐입니다. 소름 끼칠 일이죠.

    한 마디로 우리에게는 자본/시장의 논리는 인제 거의 체질입니다. 공기입니다. 우리가 그 논리를 상대화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할 능력마저도 거의 잃어갑니다. 자본 독재라는 것은 바로 이런 상태에서 발생되는 일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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