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곽재우, 용감한 황진
[산하의 가전사] 2차 진주성 전투, 입성을 거부한 곽재우
    2014년 07월 16일 0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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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계사년 7월 20일(양력)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다. 강화 협상을 하는 한편으로 풍신수길은 부산 지역으로 후퇴한 일본군의 거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진주성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거든. 등 쓸어주면서 배 때리는 수법. 풍신수길은 협상에 필요한 본때가 필요했던 거고 작년에 공격했다가 실패한 진주성은 그 상징성이 그만이었거든. 당시 조선 쪽과 말이 좀 통하던 일본 장수 소서행장이 전갈을 보내 온다.

“성을 비우라. 이건 작년 진주성 패배의 체면을 살리려는 목적이니 성을 비우면 희생도 없을 것이고 우리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때 조선 조정의 행동은 좀 애매해. 굳이 표현한다면 진주성을 지킬 수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깝다는 식이었지. 권율 이하 관군의 주력은 소백산맥 너머 전라도로 후퇴하지만 “적장의 말을 어찌 믿을 것이며, 호남으로 통하는 길목인 진주성을 싸워보지도 않고 내줄 수 있겠는가.” 결의를 다진 김천일 등 호남 출신 의병들과 충청 병사 황진 등의 진주성 입성을 막지도 않아. 진주성에 가면 살 길이 있을 거라는 수만 명의 피난민들도 진주성에 몰려 있었고.

이때 경상감사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던 의병장 곽재우에게 진주성 입성을 권한다. 당신도 들어가 주시오. 그런데 곽재우는 이 말을 딱 잘라 거절해. “오직 임기응변하는 자만이 군사를 부릴 수 있고, 지혜로운 자만이 적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적병의 성대한 세력을 보건대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기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3리밖에 안 되는 성으로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소이까. 나는 차라리 밖에서 응원을 할지언정, 성 안에 들어가지는 않겠소.”

이 말을 들은 경상 우감사 김륵이 벌컥 화를 낸다. “장수가 대장의 명령을 거역하다니 이래가지고 군율이 서겠는가.” 그 자리에는 순변사 이빈도 같이 있었지. 즉 경상도 지역에 남은 관군의 최고사령관들이었다. 10만 대군이 몰려오고 성은 바람 앞에 등불 같은데 그나마 싸울 줄 아는 장수라는 자가 자기는 밖에서 응원이나 하겠다니, 이런 빌어먹을 일이 어디 있냐 싶었겠지. 지금 진주성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들끓고 있는데….. 다른 도에서 넘어온 장수들이 진주성을 지키겠다고 일치단결 성 안에 들어가 있는데….. 경상도 의병장이 꽁무니를 빼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곽재우는 한 수 더 떠.

“나 하나가 죽든 살든 문제가 안되지만, 그 수많은 전투를 벌이며 경험을 쌓은 금쪽같은 병사들을 어떻게 승산 없는 싸움에 몰아넣는단 말입니까. 그냥 여기서 자결을 할지언정 진주성엔 못 들어가겠소.”

곽재우는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충청병사 황진을 만나. 조선군 최고의 용장으로 일본에 조선 통신사가 갈 때 호위무관으로 따라갔다가 일본도를 사 와서 이 칼로 왜놈들을 베어 주리라 다짐했고 권율을 도와 이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함으로써 전라도를 방위하는데 대공을 세웠던 사람이지. 진주성에 들어갈 결심을 굳히고 있던 그에게 곽재우가 말한다.

“장군은 충청도 병마절도사요.(즉 진주성을 위해 싸울 의무가 없소) 당신 같은 중요한 사람이 왜 조정의 특별한 명령도 없는데 뻔히 죽을 곳으로 가겠다는 거요? 나랑 같이 밖에서 싸웁시다.” 하지만 황진 역시 단호했다. “이미 김천일 등과 약속을 했소. 어찌 외로운 처지에 이르러 약속을 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지요.”

곽재우는 결국 이별의 술잔을 나누며 한탄한다. 그때 나온 말은 곽재우가 얼마나 비정할만큼의 현실주의자였던가를 재삼 느끼게 해. “진주성의 다른 장수들은 다시 구할 수 있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잃는 건 정말 두렵소.” 즉 다른 사람들이야 죽든 말든 관계없지만 당신은 참 아깝다는 얘기, 김천일이 이 말을 들었으면 곽재우 이 고이연 놈 하면서 수염을 떨었겠지만.

마침내 제2차 진주성 혈전이 시작돼. 1593년 7월 20일이었지. 일본군은 거의 10만 대군. 진주성을 겹겹이 에워싸고도 남았지. 하지만 조선군은 잘 싸운다. 그 정점에는 황진이 있었어. 그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성벽을 뛰어다니며 전투를 지휘했고 불사신같이 보이는 듬직한 용장이 문루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우렁찬 호령이 울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가도 이를 악물고 돌을 던지고 사다리를 밀쳐 냈어.

진주성 전투

진주성 전투를 다룬 방송 드라마의 한 장면

그렇게 싸우던 어느 날 새벽 진주성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룻밤 사이에 성 밖에 토산이 쌓여져 일본군이 그 위에서 성을 내려다보며 총을 쏘는 거야. 10만 대군의 힘은 그렇게 무서웠지. 수십 명이 픽픽 쓰러지는 가운데 황진이 우리도 토산을 쌓으라고 명령해. 당시 진주성에 들어 있었던 수만 명의 남녀노소가 흙을 지고 몰려 나왔지. 공사를 감독하던 군관의 눈에 한 걸출한 장사가 잡힌다. 그야말로 몸짱에다가 남의 두 배 되는 흙을 지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지. 군관이 그 장사를 불렀어, 어디 사는 누구냐. 그런데 대답이 없어서 말이 들리지 않느냐 곱지 않은 소리가 나갔겠지. 그러자 돌아보는 얼굴은 다름아닌 충청병사 황진이었어.

병사 영감이 웃통을 벗고 바윗돌 나르며 백성들 틈에 끼어 토산을 쌓았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감동하고 죽을 힘을 다해 토산을 쌓았고 황진은 그 정상에 포를 설치하고 일본군의 토산 위를 맹타할 수 있었어. 그때만 해도 진주성은 일본군 보기에 불가사리 같았을 거야. 하지만 불가사리라고 믿고 포기하기에는 성은 너무 외롭고 작았고 자신들의 수는 너무 많았어. 어떻게든 수를 내야 했겠지.

또 한 차례의 격전이 지나간 후 성 밖에 널부러진 일본군의 시체들을 굽어보던 황진이 갑자기 적탄에 맞아 쓰러진다. 시체 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이 쏜 총이었어. 일본군 낙오병이 쏜 총이라기보다는 시체 더미 속에 작심하고 숨어 있던 일본군 저격수가 쏜 총이 아닐까 해. 당시 조총을 쏘는 건 오늘날 탄창이 장전된 소총을 쏘는 것하고는 달리 준비가 많이 필요했으니까.

어쨌든 황진은 그 총탄 한 방에 세상을 뜨고 말아. 진주성으로서는 기둥이 꺾인 셈이었지. 서 있는 자체만으로 의지가 되던 사람이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 곽재우가 “다른 사람은 다시 구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장재(將材)가 아니었으니. 황진의 죽음 후 진주성은 급격히 허물어지고 9일만에 진주성은 일본군에게 떨어지고 말아.

곽재우는 현명했고 황진은 용감했어. 둘이 어느 쪽이 옳았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 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성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고립된 성 밖에서 응원한 것은 곽재우 부대였고, 황진은 외로운 성에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 하지만 굳이 양자택일을 하라면 나는 곽재우를 고를 것 같아. 이유는 희소성이야.

우리 역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사람은 참 많고, ‘목숨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사람도 그렇게 귀하지 않으나, 당연해 보이지만 위태로운 대의명분 앞에서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질 싸움을 왜 하냐?”고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현실주의자 (비겁자가 아니다), 방어전의 지휘관이 되기로 한 군인에게 “너는 여기가 관할도 아닌데 네가 왜 죽으려고 거길 가냐? 그건 직무유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냉정한 전략가는 드물었기 때문이지.

행여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그래서 황진을 낮추는 게 아니야. 황진은 그걸 알면서도 진주성으로 들어갔어. 어쩔 수 없지만 해야 하는 싸움도 있는 법이고 누군가는 그걸 감당해야 하는 법이니까. 황진은 충분히 존경받고 추앙받아 마땅한 무장이야. 그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곽재우같은 이들이 현저하게 적은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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