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집단자위권 허용
    나치 '수권법'과 일본 '해석개헌'
    일본 평화헌법 무력화를 막기 위한 기회는 아직 남았다
        2014년 07월 14일 04: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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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9일, 국가기본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한 강연.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세계대전 이전 나치 시절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독일 바이마르헌법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했다.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

    그 말은 일본이 1933년 독일 나치가 제정한 수권법(전권위임법이라고도 부른다)을 모델도 삼자는 셈이었다.

    독일 수권법의 정식 명칭은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로 그 내용은 이러했다. “독일의 법률은 행정부에 의해서도 제정될 수 있다”, “행정부는 헌법에서 정한 것과 다른 내용의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 입법 기관과의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등. 즉 기존 헌법을 개정하지 않되 행정부가 전권을 행사하여 헌법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소의 구상은 개헌을 당당히 내세워 국민의사를 묻는 정식 절차를 밟지 말고, 슬그머니 헌법의 핵심을 바꿔버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소 다로의 말은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일본 우익의 단순한 ‘망언’ 해프닝이 아니었다. 2014년 7월 1일 일본 각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결정문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아베 정부가 취한 수법과 과거 나치의 행보가 실제로 많이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2020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다. 독일 나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했다. 나치는 올림픽 기간 동안 유태인 박해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세계가 품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를 만회하고자 시도했다. 아베 정부도 2020년까지 비슷한 시도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본 국민에게 숨기고자 할 것이다.

    아베 집단자위권

    일본 현대사는 곧 평화헌법 해석개헌의 역사

    하지만 일본의 ‘해석개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현대사는 곧 평화헌법 해석개헌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1946년에 수립된 일본 평화헌법은 9조에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위대 보유, 미일동맹과 미군주둔은 현실과 헌법의 괴리를 낳았다. 그 괴리는 끊임없는 해석개헌의 원천이 되었다.

    자위대는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의 초법적인 명령에 의해 1950년에 창설되었다. 처음에 자위대는 경찰예비대로 규정되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후방지역이라도 적의 침략이나 내전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진압하기 위한 무력이 필요하다는 근거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육상, 해상, 항공자위대는 군비로 따져볼 때 세계 2위의 정규군이 되었다. 따라서 자위대는 존재 시점부터 전력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쟁점을 낳았다.

    결코 제거될 수 없는 논란 속에서 일본 내각과 의회는 일련의 입장을 발표했다. 1954년 참의원은 자위대의 설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위대는 해외출동을 하지 않는다’고 결의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해외파병 금지는 정부와 의회가 자위대를 인정받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한편 1955년부터 1957년에 걸쳐서 도쿄 북쪽의 수나가와 지역에서 다치가와 미군기지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농민과 학생이 강력한 연대 투쟁을 전개해, 실제로 기지 확장을 저지했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1959년 도쿄 지방법원은 일본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너무나도 당황한 일본 정부는 즉각 상고했고, 최고법원은 미군 주둔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부의 판단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그 결정을 번복했다. 그 이후로 미군주둔 문제는 평화헌법에 관한 논의 영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아가 1970년대 일본은 모든 국가가 가지고 있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위권’에 직접 근거해 자위능력을 보유하며, 평화헌법조차 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새로운 논리가 고안되었다. 이 역시 헌법의 재해석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상의 헌법 수정, 즉 해석개헌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72년 다나카 키쿠에이 내각은 “타국에 가해진 무력공격을 저지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고, 1981년 스즈키 젠코 내각도 같은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 금지 역시 자위권 행사로 나아가기 위한 겉치레였다.

    집단적 자위권 해체를 촉진한 미일 방위지침

    이미 1978년에 체결된 미일 방위지침(미일 가이드라인)에 따라 악명 높은 매파 정치인 나카소네를 수반으로 하는 일본 정부는 해상자위대가 서태평양에서 해상통로를 수비하기 위해 미국의 항모전단 제7함대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즉 소련 함대를 봉쇄하기 위해 세 군데의 해협을 일본이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1970년대에 고안된 자위권 개념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방위지침의 법적 지위 문제가 실로 심각한 쟁점이었다. 방위지침이란 1960년 이래 활동하고 있던 미일 안보자문위원회의 하나의 실행위원회인 ‘방위협력을 위한 부속위원회’에 의해 수행되는 낮은 수준의 실행문서였다.

    정식 국제조약이 아니므로 정부 대표에 의해 서명되지도 않았고 의회에서 비준을 거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발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즉 행정부 위원회끼리 합의한 지침이 헌법을 능가하게 된 것이다.

    냉전 해체 이후 한층 강화된 해석개헌 행보

    나아가 일본은 냉전이 끝나자마자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모든 겉치레를 내던져버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정부는 국제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해외파병 금지라는 선을 넘어섰다.

    또한 1996년 7월, 클린턴 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미일안전보장공동선언’(신안보선언)을 발표했고, 이는 1997년 미일 방위지침 개정으로 이어졌다. 개정된 방위지침의 핵심 쟁점은 ‘주변사태’에 미국과 일본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일본에서 병참을 동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주변사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주변은 어디이고 사태란 무엇인가, 주변에서 사태가 벌어졌다고 누가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 이에 대해 지침은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다만 ‘주변사태는 일본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그 개념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적인 것이다’고 말할 뿐이었다.

    따라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는 말의 진의는 곧 북한, 대만해협뿐 아니라 미국이 요구한다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일본의 군사개입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모호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일본 의회는 주변사태법 제정안, 자위대법 개정안, 일미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ACSA) 개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이제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시적으로 허용한다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자위대에 대한 모든 제약이 사라진다. 게다가 비핵 3원칙(핵무기 소유, 제조, 반입 금지)마저 사실상 껍데기일 뿐이지 않은가.

    지금 당장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미국이 허용하지 않겠지만, 언제라도 핵무장이 가능한 상태에 있지 않으면 일본의 세계전략을 전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우익의 확고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 정말 우려하고 있나?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7월 1일 한국 외교부는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요청 및 동의가 없는 한 용인될 수 없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후 7월 4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국과 중국 정상이 “일본 정부가 자국민의 지지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정책을 지양하고 평화헌법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투명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실제로 얼마나 ‘우려’하고 있을까? 한중 정상회담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가의 논평이 흥미롭다. 크리스토퍼 존슨이라는 분석가는 “한국 정부가 일본 집단적 자위권 이슈를 키우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유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우려 표명이 공식문서인 공동성명이 아니라 외교안보수석의 브리핑을 통해 언급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국 정부가 뭔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계가 어디인지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우려 표명을 할 필요까지 없었다고 생각하고 한국정부에 어느 정도 불쾌감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한국이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고 이해하기도 한다”고 평했다.

    요약하자면, 한국이 어느 정도 제스처를 취하는 것까지는 미국도 이해할 것이지만, 그 이상 뭘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한국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평화헌법 해체를 승인한 한국정부

    게다가 1990년대 김영삼/김대중 정부 당시부터 본격화된 한일 군사협력은 공동의 적국에 대처하는 공동의 전략을 수립하고 정형화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군사협조의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고, 준 군사동맹 직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필자의 글 <눈앞에 다가온 한일군사동맹 무력화된 일본 평화헌법>(2012.7.6. http://www.redian.org/archive/8065을 참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2014년 7월 11일 미국 7함대 소속 핵추진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이 부산기지에 입항했다. 그런데 이는 7월 21~22일 제주 남방해역에서 열리는 한·미·일 수색구조훈련(SAREX)에 참가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그러나 무슨 수색구조훈련이기에 항공모함에 미사일요격능력을 갖춘 이지스 구축함까지 동원되나? 합참은 7월 16~21일 한미 양국 해군이 해상기동과 항공모함 호송, 대공 요격 훈련을 먼저 실시한 후, 21~22일 한미일 삼국이 ‘인도주의적’ 공동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향후 본격적인 한미일 공동훈련을 위한 사전포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2013년 3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한미일 삼국은 이미 2012년 여름,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퍼시픽 드래곤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삼국은 적국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 추적 능력 향상에 중점을 두어 훈련을 진행했고, 훈련 결과에 만족한 미국이 2013년에도 비슷한 훈련을 추진하고 정례화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또한 2013년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 문서를 통해 이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2013년 6월 11일 대정부 질문 중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후 “MD와 관련해 합동훈련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 장관은 추궁이 계속되자 “훈련에 참가한다고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계획에 참가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결국 한미일 삼국은 ‘인도주의적’ 훈련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재촉하는 것처럼 정보협정이 체결된다면 한일 양국의 군사관계는 군사협조의 완성 또는 준 군사동맹으로 돌입 단계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이제 일본은 한국의 명실상부한 두 번째 군사우방국가가 된다.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이명박 정부 말기에 체결이 좌절되었으나, 다시금 한미일 국방장관은 2014년 5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에서 군사정보 공유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실무적으로 제도화 방안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가동하기로 했다.

    일본 평화헌법 무력화를 막기 위한 기회는 아직 남았다

    최근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하자는 한국 측 논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일본의 군사력 지원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일본의 미사일방어망 능력의 지원뿐만 아니라 소해(기뢰제거) 능력, 잠수함 탐지능력 등 한국에 비해 월등한 자위대의 군사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계속 ‘발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앞장서서 일본 평화헌법 체제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본 평화헌법 체제의 해체를 재촉하는 한국 측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정부는 그 역사적 과오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관련법 (자위대법과 무력공격사태법, 국민보호법, 주변사태법,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 등) 10여 개를 2014년 상반기에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저지하고, 평화헌법의 무력화를 막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끝>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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