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건물 못 들어가는 변호사
[타인의 삶] 열한번째, 민변 노동담당 변호사 류하경
    2014년 07월 14일 0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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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른바 ‘사’자 붙는 직업, 변호사. 전문직업 중에서도 그 공부의 양이 어마무시해서 괜히 기죽게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의사가 알 수 없는 꼬부랑 글씨체로 처방전에 무언가를 휘갈겨 쓸 때 드는 경외감을, 도대체 언제 마침표가 나오는지 모르겠는 판결문을 보고 ‘흠 그렇군’ 하고 여유롭게 읽는 변호사에게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변호사가 어려운 법률 용어로 상대의 기를 죽이기는커녕, 1년 내내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바닥에서 노동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대한문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만으로 서른 둘. 한창 대리니 과장 진급에 팔팔한 젊은 시절을 한숨 돌릴 새 없이 보내는 나이에,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됐다고 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에서 권영국 변호사와 더불어 노동인권을 위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 타인의 삶 열한번째 주인공, 류하경 변호사이다.

확고한 눈빛으로 학생운동 했을 때와 비교해 아무것도 달리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악화된 상황에서 여전히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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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 하려고 로스쿨 입학, 변호사 시험 보자마자 권영국 변호사에 붙잡혀

장여진: 자기소개 부탁한다.

류하경: 지난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바로 민변 노동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장여진: 변호사는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류하경: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생운동을 계속했다. 원래도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학생운동 시절에도 노학연대(노동자학생연대)도 많이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집중을 잘 못해서 실패했다. 그러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곧바로 시험을 봤고 2010년에 전남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노무사도 그렇고 로스쿨을 간 것도 그렇고 노동운동에 계속 뜻이 있어서 한 거긴 하지만 이렇게 변호사가 되자마자 처음부터 노동사건을 많이 담당하는 곳에서 일하게 될지는 나도 몰랐다.

장여진: 학생운동은 어쩌다가 하게 됐나?

류하경: 누구나 다 그랬듯이 1학년 때 등록금 투쟁한다고 해서 선배 손잡고 나갔다 나중에 농활도 가고 그러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처음 만났던 선배들은 특정 정파쪽이었는데 정서적으로 좀 맞지 않았다. 어떤 행사에 따라갔었는데 이건 도저히 21세기에 목도할 장면은 아니었다. 민주주의도 아닌 것이 사회주의도 아닌 것이, 문화 자체가 너무 종교적 느낌이 강하다고 싶어 외곽에서 혼자 배회만 했다.(웃음) 그러다 정치경제학회에 들어갔다가 2004년 풍동 철거촌에가서 6개월간 연대하다가 군대를 가게 됐다.

제대는 2006년에 했다. 그러다 2007년 학내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선거에 출마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특별한 정파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당시 학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문제가 있어서 이들 청소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연대하겠다는 것을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그리고 당시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공약을 내건 게 아니라 군대 제대 직후인 2006년부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통해서 청소노동자들을 꾸준히 만나왔고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민노당 학생위 활동 중 중앙에서 내려온 일정은 다 무시하고 학내 활동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뜻 맞는 친구들도 만나면서 ‘살맛’이라는 조직도 만들고 나중에는 다른 정파 학생운동 친구들도 다같이 참여하면서 2008년에 결국 노조를 출범시켰다. 이후에도 계속 노학연대를 함께 했다.

장여진: 그런데 고향이 대구인 것으로 아는데 왜 하필 전남대 로스쿨을 간 건가?

 류하경: 사실 경북대에도 전액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학생운동 친구들이 그랬듯 광주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전남대로 갔다. (웃음)

장여진: 원래부터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노동운동을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인가?

류하경: 내가 청소노동자들을 만날 때 어떤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집회 현장에 있을 때 제일 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랑 만날 때 그 분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역시 진심으로 교감이 잘되는 것 같다. 또래 운동권들과 대화할 때에는 오히려 이런 저런 입장차이 때문에 불편했는데 현장을 가면 편하니깐 자꾸 가게 됐다.

현장 조합원들 만났다가 집에 가면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또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좋았고. 노동운동을 계속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거구나, 자기 적성에 맞기 때문인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로스쿨 합격했을 때 정말 기뻤다.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서 노동인권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내가 종교가 없는데, 할머니께서 불교신자이시다. 큰 일 앞두고 꼭 부처님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속는 셈치고 수능 전날에 기도했는데 왠지 잘 본 느낌이었다.(웃음) 그래서 변호사 자격 시험 전날에도 기도했다. ‘꼭 합격하게 해주시고, 노동변호사로 많이 쓰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데 정말 제일 많이 쓰이는 사무실로 오게 됐다.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많은데 지금 앉아있는 곳(기자가 앉은 쇼파)이 그런 날 잠드는 곳이다. 밤새면서 일해도 정말 좋다.

장여진: 로스쿨 졸업 이후 노동변호사 이외에 다른 역할 생각해본 건 없나?

류하경: 전혀 생각 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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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변호사(사진=장여진)

장여진: 학생운동을 할 때의 노동운동과 변호사로서 느끼는 노동운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류하경: 학교 다닐 때에는 다소 가볍고 자유로웠는데 지금은 조금 답답하다. 학교 다닐 때는 돈벌이와 직결되는 게 아니고 알바만 해도 생계는 유지되다보니 경제적 부담 없이 자유롭게 집회도 다니고 발언도 하고 이상만 좆아 했었는데, 지금은 당장 내 생계와 직결되니 노후문제도 그렇고 복잡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이 제일 재밌다. 노동사건은 돈 한 푼 안 받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노동사건을 수임 받을 때 에너지가 마구 발산되고 집중력도 고도화되는 걸 스스로 느낀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젊었을 때 신나게 하고 싶은 거 하자고 생각했다.

학생운동과 또 다른 측면은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운동의 주인공은 노동자이긴 하지만, 소송에서는 변호사가 주인공이니깐. 이 소송이라는 것이 그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책임감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장여진: 민변 노동위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됐나?

류하경: 지난해 1월 변호사 시험을 쳤다. 합격자 발표는 3달 뒤에나 나기 때문에 보통은 그 기간 동안 노는데 나는 민변에 아는 선배에게 나중에 합격하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했더니 지금 당장 갈 때가 있다면서 권영국 변호사 연락처를 알려주더라. 그래서 번호만 저장해두고 아직 전화를 못하고 있던 찰나에 그날 저녁 권 변호사가 먼저 전화를 하더니 당장 내일 아침에 나와달라고 하셨다. 다음 날 나갔더니 이마트의 부당노동행위를 고소고발하고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마트 공동대책위에 붙잡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부터 하드코어로 들어간 셈이다. (웃음)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의 핵심인 권 변호사 옆에 있다 보니깐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됐다.

민변 신입 회원 중 10명 중 9명이 로스쿨 출신
로스쿨 제도 취지대로 상대평가제 폐지하고 자격시험제도로 운영해야

장여진: 로스쿨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변호사로 양성하자는 취지였고, 실제로 학부 때 사회학을 전공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변호사가 됐으니 분명히 좋은 제도는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제도의 효용성 문제는 여전히 제기된다. 처음에는 다양한 인권변호사들이 대거 배출될 거라는 개인적 희망도 있었는데 정작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류하경: 동기들 중에서 일반 대기업 인사팀이나 법무팀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기업도 가고 다양하게 들어갔다. 나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수하게 권영국 변호사와 인연이 닿아 노동인권 변호사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사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가기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사회초년생들이기 때문에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하고, 송무를 다양하게 배울 필요도 있는데 워낙 취업 자체가 어렵다. 나처럼 노동인권변호사를 하고 싶어도 갈 때가 없다. 하려면 개업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부담도 된다. 실력과 경험,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안되니깐.

그래서 주변 친구들 보면 처음 로스쿨을 갔을 때의 마음과 달리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깐 다들 답답해 한다. 그 친구들이 마음이 변한 게 아니다. 언젠간 노동인권변호사로 다 같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10년차 이상의 중견 변호사들 중에서도 이제서야 민변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자리 잡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장여진: 전문직종이라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가 참 쉽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로스쿨 출신으로 현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류하경: 일단 나 같은 사람도 변호사가 됐으니 제도 자체는 매우 찬성한다. 사법고시를 보지 않아도 실무교육만 잘 받으면 변호사를 할 수 있으니깐.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나도 전액 학자금 대출로 다녀서 여전히 갚아야 할 빚으로 쌓여있다. 입학과정이 불투명하고 장학금이 확충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만 잘 받으면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인데 변호사 자격 시험을 사실상 상대평가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합격자 수를 제한하니깐 응시생들의 누적인원이 매해 커지고 있고 합격률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원래 제도 취지대로 상대평가제는 폐지하고 자격시험제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도 다양한 전공자들이 배출된다는 좋은 점은 분명하다. 민변 구성원들도 보면 로스쿨생들이 아주 많다. 신입 회원의 10명 중 9명이 로스쿨생이다 보니 민변 전체 회원 숫자 자체가 뛰었다. 이런 건 분명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장여진: 현재 한국 사회에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변호사는 몇 명이나 되나?

류하경: 사실 노동사건은 변호사들이 많이 안 하는 영역이다. 지금 제가 있는 사무실이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법률원 등 몇몇 분들이 도드라지는 특수한 케이스 말고 아주 극소수인 것 같다. 그래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장여진: 법률용어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가 정말 용이하지 않다. 판결문 하나 보더라도 한 문장이 너무 길어서 나중에는 주어가 뭔지 까먹게 된다. 변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류하경: 나도 정말 어렵다. 공부할 때에도 법전이 다 한자로 되어있으니깐. 이제 한글화도 추진하고 있지만 정말 예전 판결문들은 다 한자로 되어있는 데다가 굉장히 길다. 한 문장이 몇 페이지가 될 때도 있다.

나는 이런 게 법률전문가 집단이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권위를 세우는 것 같다. 일종의 구별짓기라고 해야 하나. 나 역시 아직까지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마치 의사들이 처방전에 라틴어를 쓰는 것과 같은 것 같다. 환자들이 못 알아봐야 권위가 사니깐. 변호사들의 일이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에 대해 답해주는 것이 일인데 일반인이 알아서 이해할 수 있다면 변호사를 안 찾아갈 거 아닌가. 그래서 이런 부분은 나 역시 좀 고쳐져야 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투쟁, 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영광
삼성전자측, ‘변호사님은 못들어갑니다’ 화장실 못가게 3번 막아

장여진: 1년 간 참 많은 사건을 담당했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류하경: 처음 이마트 투쟁에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 불법파견 사실이 적발되고 이마트 스스로도 2면여 명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했던 건 가치있는 성과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삼성전자서비스 투쟁과정이었다. 드라마틱하게 노조가 만들어졌고, 투쟁 과정 중에 몇 분의 노동자가 돌아가시는 등 슬픈 일도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고 삼성 공화국에서 노조를 인정받았으니 말이다. 그 투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진 못했지만 근거리에서 연대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장여진: 아무래도 정말 삼성전자서비스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류하경: 노조 출범식 날이었다. 노조가 무엇인지도 투쟁가가 뭔지도 잘 모르는 분들이 어색한 팔뚝질을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다.

최종범 열사와 염호석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정말 슬퍼서 펑펑 울기도 했다. 특히 염호석 열사 시신 탈취 때는 나도 장례식장에서 있었는데, 법률적 해석과 판단을 다 떠나 도의적으로도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굉장히 분노했다.

그날 이후로 노조가 무기한 파업농성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천여 명의 조합원이 이탈 없이, 오히려 그 수를 점점 늘려가면서 비바람을 비날천막 하나로 버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끝내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노조를 인정받은 다음 날 염호석 열사 추모제를 했는데, 뒤에 앉아서 정말 많이 울었다.

장여진: 삼성전자서비스 투쟁 이외에도 삼성과 관련된 사건도 하고 있나?

류하경: 일단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경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 중인데 아마 3년 정도 걸릴 것이다. 이외에 삼성일반노조, 에버랜드노조, 삼성의 노조 파괴 문건 관련한 고소고발 등 맡고 있다. 그러다보니 삼성과는 완전히 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에 결합하려고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 가야할 일이 있었다. 서초사옥과 강남역이 지하상가로 연결되어있어서 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르려고 했는데 거기 경비가 ‘변호사님은 못 들어갑니다’라면서 막더라. 그래서 ‘내가 변호사인지는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냥 안다고 하더라도.

지하철과 연결된 곳이고 법적으로도 거기 화장실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화장실인데 그동안 3번 정도 잡혀서 화장실을 이용 못했다. 내가 변호사인 걸 알고 있다는 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역시 집회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한다는 생각이 드니깐.

노동인권변호사라면 현장에서 직접 조합원들과 함께해야

장여진: 매번 집회나 투쟁현장에 직접 나가다보면 정체성 혼란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활동가와 변호사의 구분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류하경: 집회를 많이 참석하는 편인데 내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거의 잊어버린다. 그저 연대하러 간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래도 나중에 경찰과 충돌이 있을 때에는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경찰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역할도 한다. 오히려 혼란이기보다는 권영국 변호사를 보면서 ‘아 이렇게 변호사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라는 걸 본다.

권영국 변호사와 함께 다니면서 사무실에서 글만 쓰고 재판장 나가는 것만이 변호사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역할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노동인권 변호사라면 현장에 나갈 때와 안 나갈 때랑 사건 진행할 때 느낌 자체가 다르다. 서면만 봐서는 잘 모르는데 현장 나가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도 하고 느낌도 공유하면 동기부여도 더 잘 되고 사건의 쟁점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장여진: 그러면, 학생운동을 할 때 집회 나갈 때와 변호사가 되고 집회 나갈 때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

류하경: 경찰이 막아설 때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 길을 열어주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경찰병력이 뒤에 다른 집회 참가자들이 고립되어있는 경우 내가 저 사람들의 변호인을 하려 한다, 변호인 접견권을 행사할 테니 길을 터달라고 하면 길을 터주더라. 그 때 좀 좋았다. (웃음)

아무래도 변호사는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신뢰도가 높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잘 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만큼 책임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 로스쿨 다닐 때보다 더 많이 공부하게 된다. 내가 아무 말이나 했을 때 굉장히 위험해질 수 있으니깐. 그래서 계속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웃음)

드라마는 공판중심주의, 현실은 서면중심…첫 변론 때 핀잔만 받아

장여진: 처음 변호사 하면서 실수해서 진땀 흘린 적은 있나?

류하경: 드라마나 영화 보면 재판장에서 변호사들이 멋있게 일어나서 굉장히 길게 변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서면 중심이다.

그런데 난 처음 재판장에서 섰을 때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서면 내용을 달달 외워서 설득력 있어 보이려고 판사와 아이컨택하면서 열심히 말했더니 판사가 ‘요지만 하세요 요지만 변호사!’라고 했다. 다음 사건도 밀려있는데 언제까지 다 읽을 꺼냐고. 그래서 ‘네’ 하고 앉았다. (웃음) 나중에 다른 분들 재판 보니깐 다들 서면으로 제출하고 기일만 잡더라.

장여진: 재판과정에서 재밌었던 공방은?

류하경: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재판장에서 공방하기 보다는 서면으로 공방을 많이 하는데 이게 잘 읽다보면 문장에서 톡톡 쏘는 게 있다.

상대방이 ‘원고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으면 나도 막 욱해서 ‘피고는 아전인수격의 주장을 펼치면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만 하고 있다’고 막 분노의 타자질을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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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에서 연행, 40시간 동안 유치장에 갇히기도
누가 울면 같이 우는 변호사 “나도 연대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

장여진: 노동인권변호사다 보니 다른 변호사는 겪기 어려운 일들도 있었을 것 같다.

류하경: 작년에 유치장에 다녀왔다. (웃음) 대한문 앞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분향소 설치한 거를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에서 불법적으로 철거하고 화단 만들었지 않나. 그래서 민변에서 그 화단 앞에서 집회를 해보자고 해서 집회 신고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화단 앞이 정말 좁은 공간이었는데, 경찰측이 그 화단 말고 대한문 옆 길에서 하라는 ‘집회제한 통보’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취소 소송을 내서 행정법원으로부터 집회제한 통보의 이유가 없다는 판결까지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고한 대로 집회를 하고 있는데 그 좁디좁은 공간에 경찰이 3줄로 서서 막으니깐 우리가 도저히 거기서 집회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왜 막냐고 하니깐 ‘화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더라. 우리는 집회의 자유가 중요하냐, 화단 보호가 중요하냐고 따지고, 경찰측은 화단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답하면서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경찰의 그러한 행위는 집시법상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이고 경찰력 남용을 하고 있는 현행범이니깐, 우리가 경찰을 밀어내도 공무집행방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경찰을 막 일어냈는데, 그때 권영국 변호사랑 같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유치장에 가게 됐다.

당시 나는 40시간 채우다가 나왔고 권 변호사는 구속영장까지 청구됐지만 법원에서 기각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나는 기소유예 처리됐는데 권 변호사는 이번 달에 기소됐다.

장여진: 사건 수임 전에 상담도 많이 할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이 무엇인가?

류하경: 나이가 좀 어리고 얼굴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인상도 아니다 보니깐 상담하러 오신 분이 나한테 변호사 어딨냐고 찾는 일이 종종 있다.(웃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이다.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옷을 입고 오셔서 당연히 삼성전자 정직원인 줄 알았는데 다 협력업체고 불법파견이고 근로환경도 너무 안 좋아서 놀랬다. 어떤 조합원분은 본인 이야기 하다가 울기도 하고.

장여진: 나 역시 취재하다가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같이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하는데, 본인도 그럴 때가 있나?

류하경: 나는 옆에서 누가 울면 무조건 같이 운다.(웃음) 기자회견이나 집회 때 누가 발언을 정말 감동적으로 잘할 때도 운다. 워낙 눈물이 많다. 나도 집회에서 발언할 때에는 거의 감정적으로 한다. 변호사가 재판장도 아니고 굳이 집회까지 가서 냉정하게 말할 필요 없으니깐. 나도 집회에 참여하는 건 연대의 마음으로 하는 거니깐 같이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그런다. 어떻게 보면 사무실에서 앉아서 답답하게 일하다가 집회 가서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 다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재판장에서는 그렇게 못하니깐.

노동문제, 소수만의 문제인 것으로 인식되는 게 가장 큰 문제

장여진: 노동인권변호사로서 한국의 노동문제에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류하경: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노동문제라는 것이 길거리에 머리띠 두르고 나오는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인식되는 점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이미 중등학교 과정에서부터 노사를 나누어 단체교섭 실무교육도 하고, 노조가 거리에 나와 투쟁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운다. 자기들도 대부분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거친 사람들, 좌파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정작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인식도 하지 못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기가 작동하고 있다.

다수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데 소수만의 문제처럼 인식되어지니깐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노조를 만든다거나 근로계약서를 잘 쓴다거나 하는 등의 예방조치 없이 지내다가 막상 문제가 터지면 어디 도움 청할 때가 없다는 거다. 노동친화적 입법도 잘 안되고, 판결은 기업친화적인 것도 문제다.

학생운동때와 달라지지 않은 현실, 여전히 운동하는 게 당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결같이 사는 게 좋다”

장여진: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도 졸업 후에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자기 발전을 꾀하면서 활동을 이어간다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류하경: 뭐든지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약속한 것은 꼭 해야 하다는 거 말이다.

생각해보면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의 힘은 정말로 세다. 학생운동했던 친구들이 졸업 후에 평범하게 살면 그 친구를 보는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 이 친구를 보는 다른 친구들도 ‘다 저렇게 사는구나’ 하며 동조하게 된다. 그러니깐, 생각보다 자기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훌륭하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대충 살 때에도 말이다.

학교 다닐 때 어떤 의식을 갖고 사회 나가서 뭘 하겠다고 했던 친구들은 정말로 뭐라도 꼭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상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상적이지 않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주변에서 나보고 의회주의자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학내 비정규직 노조 만든다고 할 때에는 또 나보고 조합주의라고 비판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뭐 그렇게 ‘주의’가 많아. (웃음)

개량주의네 나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냥 다같이 낮은 수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걸 하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스쿨 갈 때에도 안 좋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현장에 안 가니깐. 그렇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직업을 찾아서 내가 하고자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깐 일단 생계전선에 뛰어들게 됐고 그러다보니 정치나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 안하고 살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들이나 해왔던 말들이 별게 아닌 게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요새 친구들 만나면 깜짝 놀랄 때가 모든 가치를 상대방에게 둔다.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각자 사정이 있겠지, 이러면서.

학생운동 열심히 하다가 극우언론에 가있거나 대기업 인사팀에 가서 아주 충실하게 일을 해낸다거나 할 때 충분히 우리가 애정을 담아 비판도 할 수 있는 건데 요새는 그냥 현실이라는 조건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비판했던 386이랑 무엇이 다르겠냐.

각자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건데도 서로의 삶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우리가 예전에 해왔던 말과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니깐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좋은 영향을 주고 살았으면 한다. 자기 위치에서 작은 것이라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한결같이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장여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작은 일이라도 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

류하경: 당장 현장에 가거나 활동가가 되라는 게 아니니깐. 대기업 다니더라도 주말에 집회 한 번 참석할 수 있는 거고, 어디 후원 주점이 열리면 티켓이라도 사줄 수 있는 거니깐.

그리고 우리 때도 그랬지만 사실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뭘 알고 하는 건 아니지 않냐. 다 책보고, 선배가 하는 말 듣고 마치 내 생각인 것인냥 이야기한 거 아니지 않나. 그런데 마치 자기 운동인 것처럼 굉장히 급진적이었던 친구들일수록 자기 이상과 현실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 금방 떠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이상을 현실에 맞게 조금씩 수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

예전에 로스쿨 준비하던 후배가 나한테 ‘선배는 어떻게 로스쿨까지 나와서 노동운동을 할 수 있냐. 대단하다’고 했는데 그때 내가 말한 게 이런 거였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투쟁했던 상황과 조금도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더 악화됐는데, 그때랑 똑같이 살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나는 아직 바뀐 게 없으니깐 그때랑 똑같이 사는 거다.

 가장 존경하는 변호사는 권영국 변호사 “아이처럼 순수하고 착해”

장여진: 가장 존경하는 변호사는 누구인가?

류하경: 권영국 변호사를 가장 많이 존경한다. 깐깐하고 일처리에 빈틈이 없다. 원칙주의자고 실천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권 변호사는 복잡하게 생각을 안 한다. 보통 우리가 어릴 때 엄마, 아빠로부터 배우는 약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단순한 것들을 행동으로 실천해낸다. 정말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러한 규칙들을 정말 잘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른이 그런 거 지켜내면서 살기 정말 힘들지 않나. 권 변호사가 그런 점에서 아이처럼 순수하고 착하신 분 같다.

장여진: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권영국 변호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류하경: 인간적으로 매우 친절하신 분이다. 날 많이 좋아해주시기도 한다. 그런데 업무적인 배려가 부족하시다. (웃음) 너무 철저하고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따라가기 매우 힘들다. 제가 많이 힘들다는 것만 좀 알아주셨으면 한다. (웃음)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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