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수출국에서 '제한송전' 체험
    [에정칼럼]갑자기 전기가 나간 라오스의 어느 날
        2014년 07월 10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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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발주 탈핵연구기금 조성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를 마치고 다음 날로 라오스로 왔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된 7월 라오스의 대기는 수도 위양짠(Vientiane)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다.

    투명한 만큼 태양빛은 거침없이 쏟아져 활주로는 지글지글 끓으면서 열뿐만 아니라 또 다른 빛까지 복사해내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공항 동선을 따라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고 행선지를 말하고 공항택시를 배정 받았다.

    택시 기사를 따라 공항 건물을 빠져나왔다. 다시 열기가 훅 끼쳐온다. 그런데 그 강도가 사뭇 다르다? 근방 몇 백 미터 안으로 나무 한 그루 없이 오로지 아스팔트로 덮인 건물 저편과 같이 아스팔트로 덮였지만 길 사이사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선 이편이 달랐다.

    제일 큰 덕은 공항 주차장 지붕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태양광전지판인 것 같았다. 빼곡히 들어찬 철판의 자동차들이 그대로 태양을 흡수하고 그 빛과 열을 토해냈다면 이편이 저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그 지붕 아래 있었던 것이라 막 에어컨을 켰어도 견딜만한 택시를 타고 늘 묵는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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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공항의 태양광 전지판

    나의 라오스 위양짠에서 집과 같은 숙소는 우리나라 이태원과 홍대와 강남과 세종로의 기능을 합친 역할을 하는 남푸(분수라는 뜻)라는 구역 가까이 있다. 우리 남대문과 시청, 청와대를 잇는 세종로와 똑같은 라오스 수도의 중심 도로에서 불과 네 블록 정도 떨어져 있다.

    침대 하나로 꽉 차버릴 만큼 방이 좁고 내부로 난 창문이 있는 방도 있어 갑갑하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 깨끗하고 무엇보다 서비스가 편리하고 관리가 철저해 늘 찾는 곳이다.

    다음 날 한국보다 두 시간 늦은 시차 덕분에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주 까다로운 ‘을’인 썬라봅(Sunlabob,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설치 회사)과 주문내역을 조정해야하는 부담스런 월요일 업무를 앞두고 억지로라도 일요일의 여유를 즐길 요량으로 아주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어갈 무렵 전기가 나갔다. 천장의 형광등과 선풍기 바람, 에어컨 소음이 순간 멈춰 섰다. 손님들의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고 함께 비상 조명등이 켜졌다. 그리고 긴 정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직 냉기를 가두고 있는 곳에서 시간을 버틸 생각으로 남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인터넷은 안 돼도 충전지로 몇 시간 노트북 컴퓨터를 쓰는 것이야 문제가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충전량이 아니라 노트북이 내뿜는 열기였다. 그게 밀폐된 공간에서 내가 내뿜는 숨과 발산하는 체온, 햇볕에 달궈지고 있는 건물의 전도열보다 훨씬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한 시간을 지나지 않아 아무리 바깥 기온이 높아도 창문과 문을 열어 방안 공기를 순환시킬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방충망이 방해하는 양도 아쉬워 그것까지 열어젖혔다.

    다행히 내 방은 5층 중에 3층. 남쪽으로 창이 나있지만 팔 뻗으면 닿는 간격으로, 충분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똑같은 5층 높이의 옆집 숙소가 바짝 붙어있다. 좁고 깊은 건물 틈 그늘 사이로 부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난로와 다름없는 노트북을 켤 수도 없고, 그 더위에 책을 읽기엔 내 집중력이 따르질 못하고, 한국선 그렇게 고프던 잠도 안 오고. 혹시나 내 방의 숨구멍 같은 창밖을 내다봤다. 시원한 초록색 담벼락에 작은 창문 하나,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나, 두 개의 5층 건물 틈새의 그늘과 바람으로 4시간을 함께 버텼다. 그리고 내가 먼저 포기. 언제 전기가 들어오는 지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1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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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고양이 두 마리

    앗, 그런데 여긴 전기가 들어온다! 비상용 조명만이 아니었다. 1층 절반 정도의 형광등과 선풍기, 업무용 컴퓨터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객실 층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에어컨까지 돌아가는 건 아니었으나 불도 없이 숨만 쉬어도 열이 올라왔던 내 방과는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당장 숙소 관리자에게 물었다. 여기 비상용발전기가 있어요? 태양광은 아니죠? 전지판이 없던데? 기름으로 돌려요? 관리자가 대답할 틈도 없이 물었다.

    “비상용발전기는 없어요. 지금도 전기가 들어오고 있어요. 다만 평소보다 적을 뿐이죠. 오후 4시에 정상적으로 들어올 거예요.”

    그는 요즘 매 일요일마다 제한 송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과 같은 날이 아주 특별한 경우는 아니라고 했다. 또 우리 숙소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1층에 선풍기가 돌아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방안에서 헐떡거리며 더위를 버텼던 게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현장 확인을 위해 바로 숙소를 나섰다. 낮 시간이어도 영업용 조명들로 내부가 밝게 들여다보였던 매장들이 모두 어두침침하다. 그러나 우리 숙소처럼 최소한의 조명과 선풍기 몇 대가 돌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전력수요가 큰 타이계 프랜차이즈 일식집은 정전으로 영업을 잠시 쉰다는 안내지를 붙이고 아예 문을 닫았다. 반면 필요한 얼음은 보온 상자에 담아 쓰는 길거리 식당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영업을 하고 있다. 오히려 나처럼 에어컨으로 냉방하던 밀폐된 공간보다 확 트여 시원한 곳을 찾아온 손님들이 많아 보였다.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중심가의 상가들이 이 황금 같은 일요일 낮 6시간을 최소한의 전기만으로 버티고 있는데 손님들도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묻혀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이상했다.

    사실 더 이상한 게 있었다. 라오스는 전력수출국이다.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서도 전력이 1, 2위를 다툰다. 그런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를 지원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싸이냐부리 지역은 읍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송전선이 들어와도 요금을 낼 화폐가 없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라오스 중부, 남부를 여행하다 보면 타이를 향해 달리고 있는 고압송전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대로 북부 국경지역은 타이로부터 전기를 수입한다. 전기가 주로 생산되는 대수력 댐으로부터 거리가 멀어 고압송전탑을 설치할 기술과 돈이 부족해 가까운 타이로부터 가져다 쓸 수밖에 없어 벌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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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지어 서 있는 고압송전탑

    그런데 더 황당한 이야기는 그 수출용 대수력 댐이 가까운 지역에서도 종종 전력이 부족해 타이로부터 훨씬 더 비싼 값에 역으로 전기를 수입해 쓰기도 한다는 거다.

    공공재로서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전기를 그렇게 하지 못하니 라오스 사람들이 이에 잘 적응하는 것일까? 아님 라오스 사람들이 워낙 불평불만이 없어 정부가 이에 적응한 것일까? 오늘 이 라오스의 제한송전은 라오스 정부의 지혜로운 전력 관리 방안인가?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상가 주인과 종업원, 여행자들의 성정이 평화롭고 너그러운 것인가?

    라오스 수도의 국제공항은 일본의 원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3년 전 공항 주차장 전체를 덮는 태양광전지판이 설치되었다. 공항 전력수용의 50%를 충당한단다. 이 정도면 특별하지 않은 제한송전이 아니라 완전한 단전에도 공항은 제 기능을 아무 문제없이 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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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원조로 설치된 공항의 태양광전지판 설명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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