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난 지역정치, 미안하다~
    [서평] 『진보평론 60호』(서영표 외/ 진보평론)
        2014년 07월 06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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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에 한번 찾아오는 지방선거는 ‘지역’에도 ‘정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국회 청문회가 아닌 지방정치 선거에서 오랜만에 유행어가 탄생했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왔던 고승덕 후보가 양육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유세에서 딸에게 ‘못난 아비라서, 미안하다~’라고 말한 것인데, 유권자가 보기에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상이 정말 딸인지 아니면 당선될 줄 알았던 자신한테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기만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이를 풍자하는 표현들이 인터넷과 개그프로그램에 연일 나오고 있다. 중앙정치인의 교육감 출마와 흥망 그리고 지방선거 중 몇몇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언행이 이번 선거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6·4지방선거는 알쏭달쏭한 결과를 남긴 채 끝이 났다. ‘알쏭달쏭’이라고 말한 이유는 여느 언론에서 말하듯 광역단체장 승패에 따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무승부에 가까운 결과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유권자로서 일반시민은 많게는 7개의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던졌지만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의 당락 여부만을 주로 알리는 언론과 간간히 보이는 기초단체장의 당선사례 현수막을 통해 3개의 투표용지의 결과만이 쉽게 인지될 뿐, 나머지 4개의 투표용지의 행방은 인터넷 저 구석에 발품을 팔아야 알 수 있다.

    부지런한 시민들이라면 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중앙정당과 전국 단위 언론’이 주도하는 ‘지방 선거’에는 ‘지방’은 없고 ‘중앙’만 남아 ‘지방선거’의 결과는 알쏭달쏭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역의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방의회 무용론’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지역정치는 중앙정치보다 오히려 지역민들에게 더욱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역정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며 오랫동안 많은 시도가 있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지역정치는 그 이름이 무색해져가고 있다.

    국민에 의한 지배로서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해 끝없는 향수를 가지고 있지만, 거대해져가는 생활·정치공간은 그것을 요원하게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직접적 삶의 공간에 대한 민주적 참여이고 이것이 지역정치이다.

    그러나 지역정치는 여러 가지 내외부적 효과로 인해 난관에 봉착해 있다. 지방선거에서조차 지역정치가 외면 받는 현실은 지역의 위기이기도 하고 정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당초 거대정당들의 무공천 공약이 무색하게 당선증은 그들의 독차지가 되었고, 진보정당과 무소속 지역정치인들의 자리는 상당히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진보평론> 2014년 여름호는 이러한 지역정치의 위기 앞에 ‘지역과 정치’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이번 특집의 제목은 ‘지역을 말하다 : 지역과 진보정치’이다. 특집에는 지역정치의 현황과 문제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하는 5개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들은 6·4지방선거 직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지역정치의 문제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jb60표지

    특집에 실린 글들은 그 누구도 지역정치의 위기를 지역민들의 무관심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언급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지역정치에 대한 지역민의 무관심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관심보다 냉대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5개의 글은 모두 ‘지역정치’에 대한 위기감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나 각자가 주목하는 부분에 집중하여 그 원인을 다양하게 해석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 문제가 있으면 어른들은 동회(주민센터의 옛이름)나 시경(지방경찰청의 옛이름)에 아는 사람을 먼저 찾았다. <범죄와의 전쟁> 같은 영화에서 많이 풍자된 장면이었지만 이는 실제로 옛 보수적 지역공동체가 현안을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이었다.

    서영표는 ‘당연한 것을 낯설게 하는 실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 : 참여와 실천의 공간인 지역정치’에서 지역정치 위기의 원인을 크게 중앙권력의 토착화, 잔뿌리로 만족하는 지역정치, 보수적 생활 관계망으로 꼽는다.

    그는 한국에서 중앙의 기득권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을 지역이 제공하고 중앙정치는 지역의 양분을 받고 지지를 받는 큰 뿌리와 줄기로 작용한다고 한다. 지역은 중앙정치에 권력과 부를 제공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따라서 지역정치는 중앙이라는 큰 뿌리가 던져주는 적선에 만족하는 잔뿌리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정착된 보수적 생활 관계망에서 기인하는데 지역의 현안을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한 유력자를 통해 해결해왔던 옛 생활망들이 기득권을 더욱 공고화시키고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영표는 중앙정치 그리고 그것을 향한 지방기득권의 결합이 지역정치에 대한 침탈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광역, 기초의원은 국회의원의 아랫사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의회의 의원들 목표가 국회를 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보수적 생활망에서는 지역의 현안을 중앙을 바라보는 지역 유력자에게 로비로서 해결하려는 상황은 지역과 지역민의 바람을 중앙의 당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고 지역을 중앙에 종속시켜왔다.

    문상빈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정치의 위기를 논한다. 그는 ‘제주의 개발주의와 환경정치 그리고 괸당’에서 지역토호와 중앙이 결합되어 지역정치가 괴사하는 현실적 모습을 제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괸당이라는 낯선 용어는 ‘돌보는 무리’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이다. 괸당은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한 혈연, 지연관계의 결합체로 제주의 지역정치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서영표의 말대로 중앙권력이 깊게 뿌리내린 지방권력(제주에서는 괸당)은 지역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의지를 지역에 관철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상빈은 제주가 특별자치도가 되고 특별법에 의해 막강한 권한을 보장 받은 도지사가 진행하는 개발이 사실상 지역정치를 해체하고 중앙과 자본의 수직적이고 효율적인 지역개발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서영표와 문상빈의 진단을 종합하면 중앙의 권력과 보수적 생활공동체의 결합으로 인해 ‘지역의 정치’는 실종되고 자치의 공간은 갈수록 협소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강상구와 김희송은 지역정치 내부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는 편인데 그들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평가’와 ‘광주지역 시민사회운동의 현황과 과제 : 성찰적 연대와 혁신의 모색’에서 지역의 쟁점을 분석한다.

    강상구는 지역정치가 시스템자체에 대한 균열내기에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주변적 운동에 머물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같은 대항적 공동체와 결합하여 지역문제에 대한, 그리고 나아가 그 문제의 정점에 있는 중앙과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김희송은 광주지역의 지방선거 진보단일후보 추대의 실패를 예로 들면서 지역정치에서 지역 진보단체간의 갈등으로 인한 지역정치의 위기를 말한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간의 갈등은 민주화 이후 오래된 과제이지만 이는 단순히 헤게모니 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강상구의 글에서 미처 제기되지 못한, 그러나 그의 주장이 관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문제를 김희송은 제기한다. 바로 지역정치에서의 ‘반정치주의’이다.

    실제로 지역 정치현장에서 의외로 꺼내기 힘든 말이 ‘정치’이다. 지역정치는 환경, 여성, 육아, 소비생활, 교육, 의료 등 기능별로 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지역활동가는 ‘정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호소하여 지역의 자치활동을 구성해간다.

    초기에는 사회인이 된 소위 운동권들의 동창회적 성격이 강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조직이 커질수록 정치가 아닌 지역자치의 기능에 매료된 사람들이 결합한다. 이미 사회적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형성된 반운동권심리, 탈정치적 심리는 지역활동가 사이에서 ‘정치’에 대해 뻘줌한 자세를 취하게 한다.

    지역의 시민단체는 보수세력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혹은 외연확장은 효율을 위해 그 스스로 ‘정치’를 버린다. 그리고 중립을 말한다. 하지만 방향이 없는 운동이 있을 수 없듯이 정치 없는 단체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시민단체의 정치중립주의는 지역에서는 정치를 실종시킨다. 이는 상대적으로 덜하기는 하지만 요즘 청년단체, 마을모임 등으로 운영되는 민중운동 진영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중앙에 의한 지역정치의 잠식과 지역 스스로 정치를 포기하는 형국이 바로 지금 지역정치의 위기이자 현주소이다. 물론 많은 지역활동가들이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역에서의 정치의 어려운 점과 난관들이 현상적으로 나타나고 그 실례가 많아진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지역자치와 지역정치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역정치의 문제는 항상 추상적인 듯했지만 지역정치의 문제를 제기한 5개의 글에서처럼 현재의 문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87년 이후 사라졌던 전선이 아직 희미하지만 슬쩍슬쩍 보이기도 한다.

    서영표는 ‘국가의 민주화, 시장의 사회화’를, 강상구는 지역과 대항조직의 결합을, 김희송은 지역단체들의 결합을, 문상빈은 토착적 관계망의 해소를, 그리고 이창언은 로컬매니페스토운동의 세력화를 말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행으로 우리 지역 공동체는 생활과 생산활동의 분절을 겪으면서 옆집과 우리 집은 남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이 침투해오는 생활공간과 초국가적으로 그 활동 공간이 너무나 커져버린 생산활동은 다시금 우리를 옆집과 우리집 사이를 주목하게하고 있다.

    마치 헤겔의 변증법적 부엉이가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듯이, 다시 주목받는 지역은 지역 사회에 갇혀있던 농경사회의 지역이 아니라 중앙의 문제를 담고 있는 그래서 지역에 집중함으로써 중앙까지 변혁할 수 있는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역은 정치의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정말 누구처럼 ‘미안’하지 않으려면 그 앞에 놓인 과제와 문제를 민주주의답게 ‘비효율적’으로 논의하고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목차>

    ‘4·16’과 망각의 정치학, 진보정치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편집자의 글

    ◇ 특집: 지역을 말하다: 지역과 진보정치

    * 당연한 것을 낯설게 하는 실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 참여와 실천의 공간인 지역정치/ 서영표

    *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평가/ 강상구

    * 광주지역 시민사회운동의 현황과 과제: 성찰적 연대와 혁신의 모색/ 김희송

    * 제주의 개발주의와 환경정치, 그리고 괸당/ 문상빈

    * 개혁적 시민사회와 제4의 선택: 로컬 매니페스토 운동의 현황과 과제/ 이창언

    ◇ 발언대

    밀양을 말하다: 옴니버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들>, 그리고 구술사 책 “밀양을 살다” 박은선

    ◇ 정세

    * 진보정치는 ‘현상’의 공범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윤현식

    * 통일대박론의 좌초, 구조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창준

    ◇ 국제

    미 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 어떻게 볼 것인가?/ 신희영

    ◇ 일반논문

    ‘기후변화’에 관한 쟁점들/ 김민정

    ◇ 현대정치경제학 비판

    캔커피의 진정한 가격은 얼마인가?: 내재적 가치와 경제적 거품/ 김정주

    ◇ 소수자이야기

    군대와 동성애: 로맨스, 폭력, 범죄화, 그리고 시민권/ 한가람

    ◇ 다시읽기

    “증여론”과 “세계사의 구조” 순수증여의 존재론/ 이승철

    ◇ 서평

    비판과 운동의 맑스주의 형성사(“탈정치의 정치학”/ 김동원

    필자소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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